즉음을 품은 삶
양평에 작은 공간을 마련해서
한주에 이틀이나 사흘 오간지 2년이 되어갑니다.
양평도 어디나처럼 길고양이가 많아요.
제가 사는 집주변에도 아기 고양이 몇 마리와 함께 어딘가에 숨어사는 어미가 새끼들을 단속하는 소리가 수시로 들리고, 밤이면 창가에서, 먹이도 없을 텐데 무얼 가지고 그러는지 냥이들이 싸우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길냥이들을 챙기는 생선요리집 정원에는 열 마리가 넘는 고양이들이 저마다 제법 통통하고 건강하게 깔끔한 자태를 뽐내며 누워있기도 하고,
그런 한편 제가 사는 집 베란다 창밖에는 눈도, 코도 아파 보이고 야옹 소리도 잘 안 나오는 작은 냥이 한 마리가 다른 애들한테 치이다가 주린 배를 하고서, 제가 줄 밥을 기다리며 앉아있어요.
달이 유난히 크고 밝았던 엊그제는, 밤 산책을 하다 보니 밝아서 더 유난히도 많은 냥이들이 이 길목, 저 골목길을 건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중에는 타이거, 고등어, 턱시도, 깜장이, 그리고 희디흰 털이 달빛에 눈부시게 빛나는 아이도 있었지요.
어떤 사람은 고양이를 유난히 무서워하기도 합니다.
샤프한 눈이 자신을 꿰뚫어 보거나 무언가 시커먼 속셈을 숨기고 있다고 여기기도 하지요.
개한테 물린 어린 시절 경험이나, 고양이에게 할퀸 일이 있어 평생 작은 동물을 두려워하며 살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저는 어릴 적 집에서 개와 고양이를 많이 길렀기에 아주 친숙할듯했지만 정작 성인이 되어서는 큰 개도 무서웠고, 한번은 새끼 낳은 길냥이 밥을 주다가 하악 하는 어미 고양이한테 놀라서 한동안 고양이를 피한 적도 있었어요.
동네에도, 저처럼 길냥이 밥을 챙겨주는 사람도 있지만 고양이라면 질색을 하고 왜 밥을 줘서 고양이가 새끼를 치고 정원에 다녀서 똥을 싸게 하느냐고 대놓고 화를 내고 타박하는 사람도 있지요.
반면, 너무 과하게, 길고양이를 찾아다니며 밥을 챙기고, 걱정하느라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하는 사람도 봅니다.
물론, 꽤나 챙기는듯하지만 정작 고양이의 아픔이나 불쌍함에 대해서 말은 많이 하지만 그닥 도움을 주지는 않는 사람도 여럿 보았고요.
집에서 사는 고양이들의 평균수명이 15년인데 비해 길에서 사는 고양이의 평균수명은 3년 남짓이라고 합니다.
고양이들은, 시골에서는 뱀과 쥐를 잡고 도시에서는 시궁창 쥐를 쫓지만, 먹을 게 없어 쓰레기 봉지를 뒤집니다.
어디에서나 사람이 사는 곳 근처에 사는 짐승들은 차에 치이고, 괴롭힘을 당하고, 굶고, 추위에 얼고,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해 탈수가 오기도 하는...
풍요롭기 그지없는 인간 세상에 비해 쩨쩨하고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을 살다 갑니다.
그러니 먹을 게 있고, 물이 있고, 비를 피해 누울 자리가 있고, 살을 에는 추위에 몸을 웅크려앉을 작은 공간이라도 있다면 짧은 삶 3년이 그나마 조금, 살만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살아있는 생명이라고 다 거둘 수도, 다 돌볼 수도 없겠지요.
그저 내 주변, 내 손이 닿는 곳에서 만나지는 존재들을 정성스레 대하는 마음으로 길냥이에게도 밥 한 줌, 물 한 모금 챙기는 것뿐이지만 그것이 그들에게는 절실한 것이고, 그만큼 짧은 삶을 살만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 중요하지 싶습니다.
생명이란 과연 무얼까요?
삶이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삶, 살아있음, 생명 있음, 숨이 붙어있는 것.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풀 나무 하나도 소중하지만 그중 특히 고통을 느끼는 존재들에 대해서는 더 마음을 쓰게 됩니다.
어류도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잡히는 물고기 모습을 보는 것도 마음이 아리곤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지나치게 연민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어요.
언젠가 경주 산속에서, 차가운 창살, 작은 우리에 갇혀있는 셰퍼드를 가엾어하는 저를 보고 함께 계시던 한 분이 "집착을 놓으세요." 했던 게 생각납니다.
맞아요, 생명에 집착하는 것일 테지요.
그러나, 생명은 모든 의식의 원천이니, 집착은 안 하더라도 그 귀함에 천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생각하곤 합니다.
어느 책에선가, 법정 스님께서 환한 달밤 방안에 들어온 귀뚜라미를 보며 어쩐지 서로가 외롭고 또한 정겨웠다고 쓰신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녀석을 조심히 내보내면서,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고 축복하시는 스님의 사랑에 깊이 공명하는 심정이 되었었지요.
시공간 어디에서, 어느 순간 태어난 모든 생명은 지구에서 그 삶을 나름으로 살다가 때가 되면 왔던 자리로 돌아갑니다.
나의 한 달 커피값에도 못 미치는 돈이면 콜롬비아 어딘가에 사는 아이가 매달 제대로 갖춰진 지원을 받고, 때로는 대학까지 마칠 수 있는 거금이 되기도 하건만 우리는, 나의 커피값이 귀한 만큼 얼굴 모르는 누군가의 삶에는 관심 없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이 저의 알량한 자비심을 슬프게 합니다.
쓰고 보니 마치 제가 대단한 박애주의자인 양 내세운 게 되었네요.
좀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내심 있나 보네, 하고 너그러이 읽어주시길.
오늘은 휘영청 달이 밝아 잠 못 드는 참에, 길냥이 울음소리를 배게 삼다 보니 자연스레 든 마음을 글로 옮겨보았습니다.
이 더위 끝에는 가을이 기다릴테지요,
서늘하고도 푸근한 계절이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