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 드는 심리상담실 : 내가 곧 나일수만은 없어서
"무슨 일 하세요?"
"상담합니다."
"무슨 상담이요?"
"심리상담이요."
"아~좋은 일 하시네요."
누군가와 처음 만나서 하는 일에 대해 터놓게 되면 주로 듣는 반응이다.
물론 상담은 좋은 일이다.
우선, 좋은 일 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사실,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죽이는 경우도 있더라만)
어쨌거나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속내의 깊이를 가늠하고, 그 이치를 따라가다 보면 한 사람 내면의 심연이 드러난다.
그럴 때, 상담성과와 상관없이 잠시 뿌듯해지기도 한다. 내가 제대로 보고 있구나, 싶어서.
그러다 정말 내담자가 자기의 길을 찾아간다고 느껴질 때면 말로 할 수 없는 기쁨이 일렁인다.
내가 그의 길에 조력자가 되어주고 있음에 보람과 함께, 내 삶에도 희망이 샘솟는다.
"내가 잘못하고 있지는 않구나." 하는 안도감은 심리상담 과정에서 필수적인 심정이다.
늘 불안하고 불길하다면, 슈퍼비전을 받아야 한다.
슈퍼바이저라고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내가 내담자의 삶의 이야기를 스스로 객관화할 수 있도록 돕듯이 슈퍼바이저도 내담자를 붙들고 끙끙 앓는 나를 객관화할 수 있게 돕는다.
그러나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는 이치는 심리학에도 적용된다.
윌리엄 제임스를 필두로 해서 프로이트와 칼 구스타프융이 맥을 잇고 라캉, 알프레드 비온 등, 철학에 계보를 잇는 학자들이 인간내면의 깊이와 넓이를 측량하는 기술에 진정을 더해가며 많은 심리학이론이 끊임없이 발전해 왔어도, 결국 도달하는 곳은 "모른다."라는 막다른 길이다.
사실, 알 수가 없다.
이론은 이론일 뿐, 그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나름대로 살아온, 그래서 자기만의 길을 걸어온 세상 유일한 독자이다.
그와 나는 대화하면서, 내담자 자신의 길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가며 발에 묻은 똥과, 진흙을 털어내고 어떤 건 바람에 말리며, '그랬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 하면서 그저 있는 그대로, 그 길에서 느낀 감상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상담자라는 직업이 정말이지 멋진 일 같다.
멋진 순간도 이렇게 많구나.
그러나, 그 순간은 상대적으로 짧고 정작 내담자에게 마음의 공간을 내어주는 일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아서 많은 순간을 긴장해야 하거나, 견뎌야 하거나, 힘들어하는 상대를 돌보느라 열심히 에너지를 써야 한다.
어떤 수동공격 앞에서는 숨을 참으며 다음 순간을 기다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뜻밖에 떠나버리는 내담자를 잡을 길이 없어 망연자실하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는 나의 한정적인 지식과 그의 독특한 모습이 서로 연결되지 않는 한계 앞에서 내담자를 이해하기 어려워 막막해지니 끙끙 앓기도 한다.
이렇듯 사례가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슈퍼비전은 스트레스를 날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까다로운 보고서양식을 채우고, 녹취를 푸는 일이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그래도 슈퍼비전을 받고 나서 내담자에 대해서 하나라도 이해가 더 되면 들인 돈과 시간과 공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느끼는 상담자들은 어쩌면 참 소박한 사람들이다.
딸이 상담실 데스크일을 도와주고 있을 때는, 하루일과가 끝나고 내가 운전해서 집에 가는 동안 딸의 이런저런 수다를 받아줄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퉁명하게 반응하고, 심하면 꽥, 속없는 소리 한다고 면박을 주며 착하고 순한 딸 기를 죽이곤 했다.
내담자를 돌보는 일은 나의 직업이고, 열거한 어떤 어려움도 뚫고 그의 세계에 다가가야 한다.
그래야 그도 살고, 나도 산다.
상담자로서 내가 너무 치열했던 탓일까.
나는 건강을 잃고, 딸의 마음도 어느덧 잃은 게 아닐까 두려울 때가 있다.
페르소나.
사회적 역할로서 심리상담자라는 역할을 기꺼이 맡아 일해온지 어느덧 18년 차.
나는 너무 오랫동안, 상담 (을 꽤) 하는 내 모습에 취해 진짜 나, 실은 외롭고 쓸쓸하고 적적한 나, 간절하게 돌봄을 받고 싶고 더 이상 돌보는 게 버겁고 아무것도 아니더라도 그저 존재하고 싶은 '나'를 외면해 왔다는 걸 이제는 받아들인다.
어쩌면 내담자가 도달할 곳을 내가 모르듯이, 나의 막다른 곳을 나도 모르면서 오만하게도 안다고 여겼던 거다.
그러나 모든 걸 되돌릴 수 없고, 그만큼 모든 게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건 안다.
그저 지금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질문,
"너는 누구냐."
나는 누구인가.에 성실하게 답을 찾아볼 시간,
이제는 하나씩, 페르소나를 벗은 '나'를 차근히 돌보고 회복시킬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