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에게로 내려가기

볕드는 심리상담실

by 하계의 이난나



영혼은 별들(stars)로부터 오고
별의 지역(stellar region)으로 돌아간다.

칼 구스타프 융


작년 가을 한 학기, 신화와 상징을 배웠습니다.

분석심리학을 공부하려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매주 두 시간씩 신화와 그림 속 상징을 배우면서 크게 두 가지를 느꼈습니다.

하나는 고대의 사람들이 인간의 내면에 대해 가졌던 지혜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고, 그 지혜 덕에 현재의 심리학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경외감이 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어느 세월에 구슬을 꿰나... 이러다 도낏자루 썩지'하는 마음이었어요.^^;


그만큼 지식은 방대하고, 지혜는 흘러넘치건만 그것을 흡수하려면 기역 자부터 배워 두꺼운 책과 글, 그리고 그림의 깊은 의미를 읽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겁을 집어먹어도, 한 학기 시간은 오롯이 귀해서 반복, 반복된 의미를 읽어가다 보니 어느덧 저도 신화 속 이야기와 고태적 그림 속 상징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어요.


그리고, 준비된 만큼 맞춤 맞게, 저의 지금 내면의 모습과 만나는 분의 무의식을 이해할 기회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바로 <여신으로 내려가기>라는 작은 책을 선물로 받은 거예요.



신화는 남녀 모두에게 있는 심리적 패턴을 기술한 것이다. 신화는 건강한 영혼의 육화-상승의 주기적 율동과 치유를 증진하는 과정에 모형을 제시한다.

- 신화의 네 가지 측면에서



이 책은, 기원전 2000년까지 번성했던 수메르 문명에서 전래되는 히브리 신화 속 '이난나-이슈타르'와 '에레쉬키갈'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이 가부장제 안에서 단단하게 굳혀야만 했던 내면을 이해하고, 여성으로서의 삶에서 각자가 걸려있는 측면을 직면하여 풀어내는데 필요한 지혜를 가질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합니다.




1. 내려가기 그리고 돌아오기


이야기는 여신 '이난나'가 하계(underworld)로 내려가기로 결심하면서 하계의 신 '에레쉬키갈'을 만나 충돌하며 이루어지는 변형과 거듭남이 아름답게 묘사됩니다.


이난나의 내려감과 되돌아옴을 통해 여신으로 표현되는 한 여성의 내면 의식이 어떤 과정을 통해 고립되고, 굳어지고, 바닥으로 떨어지고, 파괴되었다가, 이윽고 다시 서게 되며 성장하는가를 보여줌으로써 여성의 심리에 있는 원형적 패턴을 이해하고, 여성의 심리적-영적 여행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신 이난나는 단순한 어머니상을 넘어 여성성의 여러 측면을 가지는 상징적인 상과 전체성의 패턴을 제공한다.

여신 이난나



2. 여성성의 위와 아래



풍요와 수확의 신, 성적인 사랑의 에너지, 판결과 전쟁의 신이면서도 방랑자이며,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여신 이난나는 지하로 내려가야 할 피치 못할 선택을 통해 비참한 운명과 마주합니다.


그녀가 마주한 지하의 신 에레쉬키갈은 그녀와 상반된듯하면서도, 온전함을 더하는 대극적인 면모의 냉담함으로 가차 없이 이난나를 죽여, 막대기에 내걸고 말지요.


나는 막대기에 걸린 이난나의 모습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보다 더, 어떤 면에서는 실제적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런 내 마음에 자동으로 "감히!" 하고 따라오는 목소리를 들었어요.

에레쉬키갈은 어떤 면에서 드라마 <선덕여왕> 속 주인공이었던 '미실'을 떠올리게도 했어요.


그만큼 나도, 대부분의 여성들도 우로보로스적인 양육, 즉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고 세상 무엇보다 아까면서도 양육하는 방식은 거칠고, 경쟁적이고, 일방적이 되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메갈'이라고 폄하되고 비난받을만큼큼 극단적으로 여성성을 주장하게 되는 반동 심리를 헤아릴듯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또한, 상담실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기가 힘들어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도, 더 애틋하게 느껴졌어요.


우리는 자신의 콤플렉스가 건드려질 때 반응하기 마련이니까요.




원하고,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전투적으로 끌어안는 관계 형성이 이난나이다.
순환하여 되돌아 내려오는, 무관심한, 혼자인, 심지어 차가운 그것이 에레쉬키갈이다.

두 자매



3. 고통과 분리-따로 서기



여성에게 있어 상처와 피 흘림은 태어나면서 이미 정해진 어떤 것이지요.

출산의 고통과, 실제로 죽음을 맞는 것.

그 비참함이 심리 안에서도 일어나는데, 어쩌면 그것은 통과해야 하는 입문과정인지도 모르겠어요,


에레쉬키갈의 영역에 들어간 자는 반드시 피를 흘리고 죽음을 맞아야 하니까요.

그만큼 이난나의 내려감은 원형적인 가부장제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과정이 됩니다.


오래전, 이런 태생적인 여성의 몸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 스스로 성전환을 택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그런 방법으로라도 '자기'를 회복하고 싶었던 거였어요.




나는 한 여성의 초기 꿈을 통해 이난나의 내려감의 신화에 처음 다가갔다-
"나는 나의 자매를 찾기 위해 물밑 해저로 내려간다. 그녀는 거기서 고기를 매다는 갈고리에 걸려있다."

두 자매 : 내담자의 꿈에서



4. 대극적 여신: 두 자매



저자는 자신이 만난 내담자의 사례와 꿈을 통해 여신 이난나의 존재와 그의 내려감이 상징하는 여성의 현실적, 심리적 삶과 변화에 대해 조곤히 들려줍니다.


한 여성으로서, 또 다른 많은 여성들을 상담하는 나의 삶에서도 이난나의 내려감이 자주 경험되었지만 그 경험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저항했고, 때로는 고통스러웠어요.


내려가기는 한 삶에서 희생과, 변형을 위한 받아들임이 절실히 필요한 일이고,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는 자연의 법칙이어서, 균형을 잡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상담 과정에서 일어나는 퇴행이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어요.

분석에서 말하는 '기본적 오류'임을 안다면 치료적인 관점으로 퇴행을 함께 견디고 안을 수 있는 것이지요.


상담자로서 직관적으로, 이러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음에 고마울 따름이에요.




무력함을 방어하려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부정하고 화내고 갑옷을 입고 거리를 둔다.

숭배받지 못한 에리쉬키갈의 힘



5. 베일을 벗고 문을 통과하기



자기와 마주하는 것은 발가벗은 것처럼 느껴지는 일일 수 있습니다.


페르소나!


몸에 걸친 옷과 가면, 화장과 장신구.

맡은 역할에 따라,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으로 안전하게 있으려고, 때로는 이득이 있기에 처한 장면에 어울리는 것들을 걸치고 살아갑니다.


그러다 내려간 그곳에서 우리는 에리쉬키갈의 응시하는 눈을 마주하게 됩니다.

지하의 여신 에리쉬키갈은 날것의 욕구, 힘, 그리고 강한 자기입니다.


응시하는 그 눈앞에서, 이난나가 신부처럼 차려입은 옷과 장신구를 하나씩 벗듯이 조금 더 정직하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드러나는 자기의 모습을 보는 것.


여러 겹 쌓인 꺼풀을 벗겨내고 진짜 자기와 만나는 것은 한순간 여리고, 약하고, 무력한 자신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러나 곧 알게 될 거예요,


그 문을 지나면 이난나와 에리쉬키갈이 자웅동체, 한 몸이었음을 목격하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이 신화는 삶을 끌어올리는 순환의 패턴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대극적 여신



6. 목격하기와 지혜 찾기



원형이 무엇이든, 콤플렉스가 무엇이든 그래서 내가 쓴 가면이 무엇이었든 너덜 해진 나를 부여잡고 있노라면 내가 느끼지 않고, 그래서 두려워지지 않고 견디려고 애써왔던 많은 생각들 아래에 진짜 느낌들이 올라옵니다.


내가 느끼는 것, 내가 바라는 것.


내가 눌러왔던 욕구들.


느끼고 있으면 공격받고, 취약하게 내던져져 있는듯하지만 그러나 실제로 느끼기는 사람이 가진 기본적인 능력으로, 있는 그대로 느끼기를 다시 시작하면 그것은 곧 인간다움, 그리고 진정한 생명력을 회복하는 길을 찾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책에서는 '엔키'라 불리는 파리만큼 아주 작은 요정들이 이난나를 구하기 위해 에리쉬키갈을 찾아가 그녀의 공감을 자아내는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어요.


강력한 여신에게 순종하는 작은 지혜, 그로 말미암아 에리쉬키갈의 너그러움을 이끌어내게 되는 거지요.




명상, 꿈꾸기, 적극적 명상이 내려가는 방식이다.
우울, 불안의 엄습, 약물복용으로 인한 경험도 내려가는 방식이다.

희생, 변형



7. 돌아오기 그리고 그 대가



위에 인용했듯, 우리는 어떻게 내려갈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명하게 내려가면, 거기에는 더 이상 부당한 희생이 아닌, 기꺼운 헌신을 만나게 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기로 살기 위해, 이전 삶에서 가졌던 불공정한 관계는 더러는 정리되고, 더러는 변화를 가지게 될 테지요.


때로 그것은 이별의 고통을 주고, 익숙한 패턴을 버리는 버거움이 따르겠지만 심연의 실제, 곧 에리쉬키갈을 만난 이난나는 이제 더 이상 이전의 반쪽짜리 자신이 아닙니다.


더는 자신의 힘겨움을 자신이나, 자신의 자녀에게 투사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계로 여행하는 자는 이와 같이 그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과 그가 버려지고 황량한 방랑의 길에 있을지라도 그러한 모성의 물부대로부터 마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 한 번의 용해



8. 균형잡기 : 과정의 수용



이난나는 삶의 원형적 에너지 패턴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가 자신의 진정한 힘을 의식하지 못하고 그저 지금 살아가는 모습만이 '나'라는 인식을 갖고 있을 때 만나게 되는, 어쩌면 반드시 만나야 할 존재입니다.


만나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이난나가 우리 내면에 있기 때문인데, 삶에서 겪는 여러 부침들 앞에서 속수무책 할 때 그래서 우울이 깊어지거나 또는 자기를 이해하려고 고군분투를 하게 될 때 그때가 바로 이난나가 지하로 내려가기를 시작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거짓 친밀함을 포기하고,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여 일상을 꾸려가는 것은 때로 무척이나 외롭고, 뒤를 돌아보게 하는 일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굳게 손을 잡아주는 치료사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한듯합니다.

고통과 상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 삶에는 불가피한 요소들이 두루 놓여있습니다.


우리가 자신 안의 에리쉬키갈을 인정할 때, 이러한 요소들의 의미를 발견하고 영원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고정된 이상적인 결말은 없는, 결코 끝나지 않는 연극이고 균형을 찾는 연극의 막이다.






나의 말로써 이 책을 읽은 소감을 짧게 써보려고 했지만,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낍니다.

무슨 다른 말로 이 아름다운 글을 드러내 보일 수 있을까요?


그저 나 자신과,

여러 여성 내담자와,

이제 서른을 넘긴 딸까지.


우리가 어떤 연유로 지금을 겪고 있는지, 그리하여 어떤 시점에 서있는지 두루 헤아릴 수 있도록 도와준 작지만 거대한 책과 선물해 준 분에게 깊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모쪼록 이 책이 널리 읽히기를 소망합니다.





<여신에게로 내려가기> 실비아 브린튼 페레라, 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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