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품은 삶
돌아가 두려움 없이 네 삶을 살아라
새로운 눈, 새로운 삶
▶ 에피소드 하나.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제 몸보다 훨씬 큰 어떤 기계가 신기해서 기웃거리다가 손이 빨려 들어가 크게 다친 일이 있습니다.
그 상처는 지금도 손등 위에 남아있어요.
그런데 그날 그때, 기계 앞에서 얼쩡대던 제게 갑자기 등 뒤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주희야!"
아버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돌아가신 터라 분명히 들은 그 목소리가 의아했지만 저는 돌아보지 않았고, 곧이어 손은 기계에 딸려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살면서 가끔 생각하곤 해요.
그 목소리는 정말 아버지였을까?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를 구하려고 부른 것일까.
내가 생각할 때 깨어 있는 의식 상태가 되기 위한 첫걸음은, 자연은 모든 것이 그저 존재하기만을 바란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몸과 주변 환경을 바꾸려 하는 대신 그저 그것들을 알아차리고 그 본질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자기 자신도 포함된다.
우리는 우주가 우리를 바꾸려 하는 대신 그저 존재하기만을 바란다는 장엄함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완벽하기를 바라는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춰 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비참하게 실패했을 경우라도 자신이 부적합한 존재라고 느낄 필요도 없다.
삶이 나에게 그저 존재하기를 바라는 대로 나 자신을 맡길 때 나는 가장 강한 존재가 된다.
삶에 '맞서' 저항할 때가 아니라 삶과 '함께' 나아갈 때 가장 강한 존재인 것이다.
p. 226~227
▶ 에피소드 둘.
스물둘, 우울했고 동시에 발랄했고 총기 넘치던 저는 어느 날 친구 집에서 자고 있었어요.
소변이 마려워 자다 깨었고, 일어나 화장실 쪽으로 한걸음 디딘 찰나에 누워있던 바로 그 자리에 닥종이풀로 장식한 무거운 벽 거울이 떨어져, 이불 위인데도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저도, 친구도 놀라 소스라쳤고, 친구는 그날부터 저더러 '귀신이 챙기는 아이'라고 자주 말하곤 했어요.
우리는 진실이 저기 바깥에, 손에 잡히지 않은 채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더 길을 잃고 헤맬 뿐이다.
진정한 자신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기 때문이다.
온 우주가 우리 안에 있다.
내 답은 내 안에 있고, 당신의 답 역시 당신 안에 있다.
바깥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은 내 안의 무엇인가를 일깨우기 위하여, 일깨워서 나를 확장시키고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가게 만들기 위하여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p. 238
▶ 에피소드 셋.
올해 1월, 언니의 장례를 치르고 집에 오니 책상 선반 안쪽에 늘 놓여있던 액자가 떨어져 깨져 있었습니다.
그 자리는 고양이도 못 들어가고, 평소 손길도 거의 닿지 않아 늘 거기 놓은 액자에 쌓인 먼지를 제가 가끔 닦을 뿐이었어요.
사진의 주인공은 엄마와 동생으로, 언니보다 먼저 떠난 가족들이지요.
언니를 보내고 온 길에 그 액자가 깨져 사진이 바닥에 있는 걸 보며 엄마와 동생이 언니를 잘 만났다는 징표인 건가, 싶었습니다.
세상에서 보이는 문제들은 우리가 다른 이들을 판단하거나 증오하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판단하고 증오하는 데서 나온다.
내가 암에서 나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두려움을 깨끗이 씻어내 버린 무조건적인 자기 사랑에 있었듯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핵심 또한 모두가 자기의 참된 가치를 깨닫고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데에 있다.
자신에 대한 판단을 멈춘다면 자동으로 다른 사람을 비난할 일도 줄어들 것이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진정한 완벽함을 알아보기 시작할 것이다.
우주는 우리 안에 들어 있고, 우리가 밖에서 경험하는 것은 오직 우리 내면의 반영일 뿐이다.
p. 245
어떤 길도 다른 길보다 더 영적이거나 덜 영적이지 않다.
p. 255
올봄, 저의 마음속 날씨는 다소 칙칙했습니다.
지난겨울 혼란했던 여파도 있었지만 봄이 올듯 말듯 다시 추워지곤 했던 날씨처럼 마음속에 남은 잔불 같은 여파로 한동안 침잠했습니다.
책에서, 저자는 이러한 상태를 창고에 비유하고 있어요.
살다가 누구나 이런 상태를 한 번쯤은 경험하지만, 실은 삶 자체를 창고 속에 갇힌 듯 사는 사람도 많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캄캄한 창고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생각할 때, 고대의 철학자 플라톤의 비유처럼 어쩌면 우리는 동굴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캄캄한 동굴 속에서 실눈을 뜨고서 겨우 보이는 형체들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실체라고 믿으며, 동굴 밖에서 역광으로 인해 비치는 어른 한 그림자를 존재하는 모든 현상이라 여기며···
우리는 창고 안, 동굴 속, 우물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삶이 우리의 기도이다.
우리의 삶은 이 우주에게 주는 우리의 선물이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남겨두고 가는 기억들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는 우리의 유산이 될 것이다.
행복하게 사는 것, 그 기쁨을 주변에 퍼뜨리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또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갚아야 할 빚이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깨달음과 유머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게임에서 이긴 것이다.
거기에 맛있는 초콜릿 한 상자를 더한다면 승리는 따놓은 당상이다!
기쁨 가운데, 당신의 장엄함을 깨닫고 또 이 세상 속에서 두려움 없이 당신을 표현하기를.
p. 305
요즘, <천국보다 아름다운>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보고 있습니다.
오래전 같은 제목의 영화를 본 적이 있어요.
그 영화의 주인공인 '로빈 윌리엄스'는 아는 사람은 다 알듯 참 좋은 영화들의 주인공을 맡았었지요.
<죽은 시인의 사회>, <굿모닝 베트남>, <굿 윌 헌팅> 등, 주옥같은 영화 속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한결같이 든든한 인간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노년에 치매에 걸렸고, 잇달아 우울증으로 고생하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어요.
그는 천국에 갔을까요?
저는 수많은 사람들을 힘나게 하고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돕고 즐거움과 기쁨을 준 그가 (만약 있다면) 천국에 가있으리라 여깁니다.
적어도, 자신의 힘과 사랑 안에서 영원토록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천국은 정말이지 장소가 아니라 상태라는 것을 이해하고 돌아왔어요.
그래서 그 지복이 여기 지구까지 나를 따라왔다는 것을 알았지요.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진짜 집(true home)' 역시 장소가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라고 느껴요.
바로 지금, 나는 내가 집에 있다고 느낍니다. 다른 어디로도 가고 싶다는 마음이 없어요. 내게는 이제 여기 있든 다른 세계에 있든 다를 게 전혀 없어요.
모든 건 우리의 더 크고 확장된, 무한하며 장엄한 자아가 경험하는 것의 서로 다른 부분들일 뿐이에요.
우리의 진짜 집은 각자 안의 있고, 어디를 가든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p. 271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는 평소 좋아하는 선생님께서 후기로 올리신 글을 보고 만났어요.
그리고 단숨에 읽으며, 저의 영혼이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살다가 다시 동굴 속을 기웃거리게 될 때면 다시 꺼내 읽어야겠다, 마음먹게 되어요.
나는 죽어서야 나 자신이 되는 법,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열정을 따르는 법, 내가 진정 누구이며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법을 배웠다.
죽어서야 나는 내가 내 기쁨과 장엄함, 자기 존중을 철저히 외면했음을 깨달았다.
p. 330
읽는 내내, "그저 하루하루 일상을 잘 살아가는 것이 영적인 것이다"라고 했던 어느 노학자의 말씀이 생각나곤 했어요.
그러나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 어떤 사람에게는 잘, 조차도 무겁게 받아들여질 수 있단 걸 알기에 일상을 보다 편안하게 살수 있는 힘을 회복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시도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그러나 어떤 좋은 것도 잘 안될 때가 있으면 그 또한 그럴 때이려니 싶습니다.
기도도, 명상도, 모닝페이지, 미라클 모닝, 글쓰기, 긍정적인 생각하기, 요가 등 소매틱요법, 다 좋은 방법들이지만, 이것들을 꾸준히, 열심히, 제대로 안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나 무엇이든 강박적으로 해야만 하는 것은 지나치게 애쓰는 것이고 그것은 다시 나의 영혼을 지치게 하는 일일 듯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것을 끌어온다"와 같은 말을 포괄적이긴 하지만 늘 타당한 것 같지는 않다.
이런 말을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이들한테는 더욱 힘든 말이 될 수도 있고,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부정적인 것들을 더 많이 끌어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면, 힘든 시기에 처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자기가 뭔가를 잘못해서 그런 일을 끌어들였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이 그런 좋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믿기 시작하면, 우리는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혹 부정적인 것을 낳을지도 모른다는 피해 망상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부정적인 결과는 우리의 생각보다 감정에 더 관련이 있다.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스스로에게 진실한 것이 긍정적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스스로를 친절하게 대하는 행위가 거짓으로 긍정적인 척하는 것보다 삶을 훨씬 더 즐겁게 해준다.
p. 258~259
두려움 없이, 자신에게 친절하기.
올봄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처럼 다시 깨어난 제가 스스로에게 다짐하게 된 경구입니다.
참 좋은 책이 더 널리 읽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