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상담과 시(詩)

볕드는 심리상담실

by 하계의 이난나



상담실에서 내담자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담자가 경험한 긴 삶의 서사가 한 줄 시처럼, 요약되는 순간을 만나곤 합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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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에는 엉킨 실타래 같은 마음을 말로 꺼내는 내담자가 있습니다.


상담자는,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그런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집중하여 들어도 어느 때는 잊어버리기도 하고 어느 때는 이야기 사이의 연결점을 놓치기도 하지만, 놓친 부분을 다시 물어보고 이해하려고 마음을 내노라면 듣게 된 낱낱한 이야기들을 잇고 이으며 그 마음을 헤아려가게 됩니다.


내담자는 스스로, 그렇게 해나가는 소중한 이야기들을 맥락으로 연결하여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 때로는 의미를 전과는 다르게 보거나 느끼기도 하며 말을 이어갑니다.


그런데, 상담자는 내담자의 이야기의 맥락을 따라가다가 요약하여 다시 말로 돌려주기도 하고, 내포되었다가 드디어 드러내어 보게 된 말의 의미를 헤아려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잘 기억하여 두는 것도 참 중요한 일이라 여겨져요.


기억해두는 것은 언제든 지우고, 다시 바뀌게 될 의미일 수 있지만, 내담자께서 스스로 하실 때까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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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 보면, 어떤 글은 일기처럼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 줄줄이 나오고, 때로는 쓰다 보니 나의 어떤 적나라한 모습이 공책에 가득 차 있는 걸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느 날은 그저 경험한 것과 느낌을 담담하게 적어내려가, 남의 이야기 같으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글이 나오기도 하지요. 마치 수필처럼요.


그런데 어느 때에는, 마음속에 있는 긴 이야기들이 한 줄 문장으로 요약하여 드러나기도 합니다.


긴 설명이 없어도 그저 바로 그 경험, 그 순간, 그 느낌, 그리고 그 의미인 그것.


그렇게 한 줄 시가 탄생하기도 하니,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글로 꺼내볼 수 있는 건 참 좋은 일이에요.

아마 그래서 글쓰기가 치유 작업에서 중요한 일부로 자리매김하게 된 걸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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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삶을 한편 글쓰기와 비유하기에는 너무 단순화하는 면이 없지 않지만, 저는 '좋은 심리 상담'은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어 나열하여 조금씩 퍼즐 맞추듯 낱말과 문장을 다듬어가다가, 한 편의 시처럼 담백한 문장으로 정리하게 되는, '좋은 글쓰기'와 비슷한 게 아닌가, 생각하곤 합니다.


마치 문득 떠오른 어떤 글감을 그냥 되는대로 쓰고 써 내려간 뒤에 다시 읽어보며 조금씩 다듬고, 지우고, 보태어서 한 편의 시를 만들어 내듯이.


심리 상담이 시와 같으면서도 다른 점은, 시는 상징이나 의미로 쌓여있는 경우가 많지만 상담에서 나누는 말은 설사 어떤 의미나 상징으로 덮여있는 마음이라 해도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드러내어 스스로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할 때, 자신의 경험에서 결론 내린 의미와 상징성을 다시 현실적으로 헤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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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어떤 경험으로 인해 생긴 아프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이야기하면서 다시 생각해 보고, 지금까지 믿었던 것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아픈 감정에 지그시 머물러 견뎌보고, 그것을 다시 느껴보게 되면, 그때는 그 경험이 지금까지와 같은 느낌으로, 무턱대고 피해야 하거나, 두려워해야 할 대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럴 수 있다면, 그때는 그 일을 비롯한 다른 나의 경험에서 생겨난 수많은 감정과 오해들이 더 이상 길고도 오랜 이야기로 떠돌지 않아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순간이 모여 상담실에서 이야기하는 내 삶의 서사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담백하게 제자리를 찾게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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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폭염이에요.

뜨거운날이 왔지만, 또 지나가는 날입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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