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쩌다 우리 집에 와서

죽음을 품은 삶

by 하계의 이난나


'나무'는 우리 집 두 마리 고양이중 큰아이입니다.

희디흰 몸에, 코리안 숏헤어의 시그니처라는 V자를 머리에 이고 나타났어요.

우리 집에 오게 된 기묘한 사연은 이렇습니다.


큰딸이 고양이를 기르고 싶다고 하기에 주변에 수소문하던 차에 어떤 사람이 빌라 1층마당에서 오고 가는 길냥이를 돌보다가 한 마리가 새끼를 낳아서, 식구가 너무 불었다는 말을 들었어요.

새끼가 두 달은 되어야 젖도 떼고 데려오겠다 싶어서 기다렸다가 드디어 어느 날, 한 마리를 데리러 출발했지요.


출발한 지 십 분쯤 되었나, 냥이 돌보던 사람이 다급하게 전화를 했어요.

"어미가 새끼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어요!"라고요.

에고.... 뭘 느꼈나 보구나. 애처롭고 기특하고.


여하튼 우리는 아쉽게 발길을 돌리는데, 막내가 이런 사연을 친구들 단톡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나 봐요.

친구 중 한 명이 우리 집 냥이가 새끼를 한 마리 낳았는데 아빠가 두 마리는 안된다고 하도 성화를 해서

4개월 된 새끼를 어째야 하나, 속상하던 참이라고요.

얼씨구나! 당장 데리러 가야지!

막내가 집 근처 역사에서 아기냥이를 받아서 이동장에 넣어 십여분 걸어오는 내내 작은 소리로 우는 아이가 많이 애처로웠다고요.

어미를 떠나, 갑자기 낯선 손을 타고 낯선 집에 온 아기냥이는 소파밑에 들어가서 반나절을 안 나왔어요.


그러다 제 운명을 받아들였는지 해가 지자 살살 나와서 집 구석구석, 위험한 건 없는지 살피고, 물도 마시고, 밥도 냄새를 세네 번은 더 맡아보다가 먹기 시작했지요.

다행히도, 그렇게 탐색을 마친 뒤에, 온 가족이 자기편이라는 걸 느낀 뒤부터는 우리 집 대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나무가 청소년기에 접어들 무렵, 검은 고양이 '후추'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지요.

강원도 홍천 산과 들을 누비던 어미에게서 태어나 여섯 마리 새끼 중 대장노릇을 하던 아이를 온 가족이 가서 차에 태워오던 날, 어미와, 비비며 뒹굴며 놀던 형제들과 떨어진 게 놀랍고 서러워서 세 시간 내내 울며 차 안을 헤매어서 안쓰러웠지요.


후추는 사실 혼자 사는 조카딸이 키우고 싶다 해서 데려온 건데, 마침 그 무렵 이사한 딸의 집이 너무 좁고, 후추가 너무나 활발한 아이여서 조카가 감당을 못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그 바람에 우리 집에 한 달에 한 번꼴로 놀러 오곤 했던 후추는 결국 같이 살게 되었답니다.


나무에게는 비극이 시작되었어요.

겁 많은 성격을 타고나서 늘 조심스러웠지만, 우리 집에 오고 나서는 마음을 푹 놓고 작은 성의 대장이 되어 넘치게 사랑을 받으며 잘 지내고 있었는데 어디서 시커먼 막무가내가 나타난 거예요.

한두 번 왔다 갔다 할 때는 작아서 봐줄 만했는데 어느 날 보니 엄청 커져서 집에 들어오더니 눌러앉아 안 가는 거죠.

놀자고 갑자기 달려와 입질 하는 것도 짜증 나고, 내 밥, 내 물, 자기 화장실 있는데 굳이 내 화장실에 쳐들어와 오줌을 싸고 가는 것도 너무너무 싫어했어요.

게다가 후추는 놀기를 좋아하는지라, 온 가족이 틈만 나면 후추한테 뭘 흔들고 놀아주는 통에 나무는 점점 속상하고 위축되고, 때로는 소외감을 느꼈을지도...


나무는 어느 날부터, 놀지 않기 시작했어요.

식구들이 나무를 가여워하며 뭘 내밀어보아도, 나무는 시큰둥했어요.

그저 후추가 다가오면 하악! 하고 가버리고, 후추의 발길이 안 닿는 곳을 찾아 가만히 누워있거나 껌딱지처럼 애착하는 큰언니를 쫓아다니다가 언니가 놀아주면 좀 반응하는 게 일과의 전부가 되었어요.

그렇다고 나무가 졸개가 되었다는 뜻은 아니에요.

후추도 나무 눈치를 보며 사니까 여전히 나무는 우리 집 대장이지요.



그렇게 7년, 나무는 8살이 되었고 어느 날부터 밥을 안 먹어 계속 살이 빠지기에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만성 신부전증이라고, 피가 섞인 조상의 유전병이라고 해요.

초음파에 찍힌 신장의 상태가 너덜너덜해서 의사는 얼마 못 살 거라고 했어요.

나무의 삶을 생각할 때, 가여워서 마른 몸을 쓰다듬으며 울음이 났어요.


그러나 나무는 병원에 갇혀서 검사받으면서 식구들을 잠시 떠났어야 했던 시간에 놀랐던 건지, 집에 와서는 안심하는 기색으로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어요.

약 먹고, 수액 맞고, 전보다 스트레스가 늘었지만 그래도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가 놀라요.

이 정도 상태면 밥은커녕 떠날 준비를 하느라 기력이 없는데 나무는 잘 먹고, 발랄하고, 여전히 큰언니를 쫓아다녀요.

기운은 좀 없지만, 기분도 괜찮아 보이고요.




이쯤 되니, 나무랑 엄마랑 참 비슷한 거죠.

사실 엄마가 우리 집 대장이었는데 나무한테 자리를 빼앗긴 거고 ㅎㅎ

엄마도 폐암 4기이지만, 사실 별 증상은 없어요.


어느 날 아침 앞에 앉은 내담자의 얼굴이 진하게 명암 져 보이는 현상이 있기에, 어째 눈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는 감이 오면서 나이도 있는데 그동안 너무 몸을 안 돌봤지, 싶어 건강검진 제대로 하고 심기일전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병원에 갔다가 의사에게 마치 사형선고 받듯, "6개월을 넘기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라는 말을 들었었지요.


하지만 일 년 반이 지난 지금, 여전히 일 잘하고 밥 잘 먹고 심지어 암이 낫고 있어요.

물론 전과 달리 운동 많이 하고 먹거리의 질을 확 바꾸고 약도, 영양제도 잘 챙기고 남편이나 친구가 산에 가자고 하면 오르막을 왜 올라가, 평지를 걸으란 말이야ㅜ 하던 정신머리가 한주에 한두 번은 기꺼이, 씩씩하게 산에 올라 맨발 걷기까지 쌍피로 해치우는 힘을 낸 덕이지요.



우리 나무도, 더 건강해지겠지요?

모두가 아끼고, 사랑하고, 고마워하는 나무가 지금처럼 먹고, 놀고, 자며 오랫동안 함께 지내다가 어느 날 아프지 않게, 잠들듯 편안하게 떠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그리고 엄마도, 그 어느 날이 오면

힘들었지만 참 좋았다, 모든 경험이 귀했다,

살아보기를 잘했다. 하고 순하게 눈을 감을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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