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드는 심리상담실
*사례의 예는 내담자 경험 이해를 돕기 위해 각색된 글입니다.
얼마 전 상담한 남자분은 천상남자였어요.
크고 듬직한 체격, 씩씩한 인상, 과묵하지만 어쩌다 한두 마디 툭, 던지는 말투에서도 단단함이 묻어났고, 함께 앉아있으면 어쩐지 든든하지만 한편으론 대리석 벽처럼 단단하고 막막한 느낌을 주는 남자.
처음에는 부부가 함께 왔는데 아내가 매우 우울한 상태였고, 남편 앞에서는 말도 어눌해 보였습니다.
아내를 무척 사랑하고, 아내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릴 수 있다고 여기는 이 남자가, 아내는 어째서 그토록 버거워졌을까요.
두 사람이 따로 상담실에 오기 시작해서 아내가 남편과 따로 있게 되자 너무나 말도 잘하고 무척 영리한 모습을 보여서 저는 깜짝 놀랐어요.
그런 만큼 그 남자도, 상담자와 단둘이 앉게 되자 순하고, 상냥하게 말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서 또 마음이 짠했지요.
그분에게는 말버릇이 있었는데, 아니 버릇이라기보다는 '누울 자리 보고 발을 뻗는다'라고, 그렇게 말할만한 자리라 여겨져 하는 말이 있었는데 그건 이야기를 하다가, 설명이 너무 길어질 것 같으면 상담자의 눈을 보고 "뭔지 아시죠?"라고 하는 거였어요.
그가 말하지 않은 사정, 겪은 이야기, 그 마음을 저는 이야기해 주지 않으면 사실 알 수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제 눈을 보면서 "뭔지 아시지요?"라고,
'당신은 내가 겪은 모든 걸 말하지 않아도 / 내 생각이 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 지금 내가 뭘 느끼는지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고, 옳다고 해줄 거지요?'
하는 걸로 여겨지는 그 마음을 느끼고서 저는,
"아직 얘기를 듣지 못해서 안다고는 못하지만, 제가 알아듣기를 바라는 ㅇㅇ씨 마음이 느껴지네요."
라고 답하곤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상대가 자기의 마음을 알아줄 거라고 기대합니다.
그 상대는 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믿는 사람, 따르는 사람, 아끼는 사람인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가족, 부부, 연인, 기타 중요한 사람인 상대에게 어째서 내 마음을 모르냐고, 왜 몰라주냐고 혼란스러워하고, 때로는 분노하곤 합니다.
그러나 사실 말하지 않은 것은 내 마음에만 있을 뿐, 상대에게 '정확하게 나의 마음정보를 전달'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어쩌다 상대가 받아서 느낀다 하더라도요.
오히려 대부분은 말보다 크고 과장된 감정으로, 때로는 다른 뜻으로 전달되기에 말하지 않고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안타깝게도, 나의 바람과 어긋나기 마련입니다.
한편으로, 의사소통을 하기 원하면서 내가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기를 바라는 것은, 내가 할 바를 안 하고 상대가 알아서 '알아차려'주기를 바라는 '무리한 바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어째서, 사람들은 말하지 않고도 알기를 바라게 될까요?
제 생각에는 그 사람은 중요한 누군가와 '말해봐야 소용없었던' 시절을 오래 보냈거나 반대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는' 순간이 많았던 거라고 짐작합니다.
그런 경험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떤 상대에게 길게 나에 대해 설명해야만 한다면 그건 매우 번거로운 일이라고 여기고 있거나, 또 그런다고 나를 '진짜' 알지는 못하는 거라고 믿게 된 것 같아요.
또한 이렇게 자신이 말로서 전달해야 하는 걸 모르기까지, 이 사람은 어쩌면 중요한 누군가가 정확하게 정보를 주지 않고 갑자기 개입하거나 침해한 일이 번번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누군가의 말 자체만 가지고 자신의 태도를 정했다가는 시시 때때 변하는 상대의 기분 때문에 말대로 한 것이 소용없고, 말 이면(裏面)의 기분을 더 잘 파악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 경험은 상대의 말만 들으면 되거나, 내가 말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말로 전달되지 않는 그 밖의 많은 것을 (곧 나의 진짜 마음을) 의사소통에서 저절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왜곡된 기대(생각)를 갖게 만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모순되게도, 몇 마디 하지 않아도... 때론 눈빛만으로도 내 뜻이 전달되고 통할 것 같은 누군가가 필요한, 그만큼 실은 의사소통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의사소통하는 사람은 대개 자신이 말해주지 않은 것이 있다는 걸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말 안 하면 몰라? 뻔히 보면서'라든지, '내가 일일이 말을 해야 알면, 그때마다 떠먹여줘야 해?' 라고 생각하지요.
이 또한 '비합리적 신념'이랍니다.
사실 사람은 '생각'하고, 그 생각을 말로 드러내는 능력을 가진 덕에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그만큼 생각이 '말로 나오는 순간'이 '의사소통이 완성되는 순간'이기도 하지요.
물론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할 때, 말보다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몸의 언어(Body language)'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 이전에 몸으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정작 해야 할 말을 해주지 않고서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전자는 '말과 함께' 자신의 뜻을 상대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고, 후자는 '말조차 하지 않고' 상대가 알아서 헤아릴 거라고 여기는 혼자만의 기대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관계에서 해야 할 바를 잘 챙기고, 상대에게 기대하는 것이 자신의 몫일 수도 있다는 걸 알 수 있을까요?"
좋은 의사소통, 대화법 교육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 비폭력대화법, 부모역할 훈련, 이마고 대화법 등이 대표적인 기법인 것 같습니다.
이런 좋은 교육들은 지금까지 자신이 해온 화법을 알고, 놓친 것과 챙겨야 할 것을 채워서 연습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하지만 만약 관계에서 너무 많은 엇갈림으로 상처를 입으셨다면, 더 이상 말씨름이나 말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지만 마시고 상담실에 오세요.
상담실에서는, 상담자와 대화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자신의 말 습관이나 무의식적인 기대를 알아차리게 되고, 상담자와 만나는동안 말하는 법과 듣는 법을 자연스레 익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