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드는 상담실 이야기
한 사람의 인생에서 고단한 삶의 무게에 지친 나를 품어주고 다시 살아갈 힘을 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박노해
겨울이 온 게 무색하게 춥지 않아요.
가을에 공기 맑고 하늘 높은 걸 위로 삼았는데,뜻밖에 며칠째 사방이 뿌옇게 보일 정도로 공기가 탁해져 안타깝더니 어제부터는 비오는 날이네요.
마음도 이럴때가 있지요?
맑은줄 알았는데 불현듯 먹구름끼더니 천둥치고 비오는 날!
어쩌다 있는 이런날은 다행히 맛난것 먹고, 쉬고, 수다 떨고, 푹자면 지나갑니다.
어떤 분이 한참 전에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가, 일정을 정하지 않고 다음에 오시겠다고 한 후 1년여 후에 찾아오셨어요.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제가 어째서 이제 오셨냐고 물으니,
"괜찮은 날도 있으니까요...
이렇게 견디며 사는 거 아닌가, 다른 사람도 다 이렇게 살고 있을 텐데 나만 유난 떠는 거 아닐까 싶어져서 그냥 있어보자, 하다가 1년이 지난지도 몰랐어요."
그때 저는 "그럼 괜찮은 날도 있어야지 매일 이러면 어떻게 살아요" 하고 말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상담실에 처음 오신 분 중에는
"이 정도 일가지고 상담을 받아야 하나?"
"나의 문제가 상담실에서 이야기해서 해결될 일인가?"
하고 망설였다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통을 느끼고 견디는 역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흔히 우리는 자신이 느끼는 고통이 정당(?)한지 의심하곤 합니다.
'다른 사람도 다 이러고 사는 건 아닐까?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을 텐데 내가 유난히 못 견뎌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면서 자신이 느끼는 힘겨움을 돌보기보다는 깎아내리기 바빠서, 도움이 필요한 자신을 방치합니다.
그분도 그런 생각으로 자신의 마음을 뒤로 물린 채 오랫동안 참고, 또 참아왔다고 해요.
그러는 동안 몸이 여기저기 아파지고 급기야 출근도 힘들 정도가 되어 병원에 갔지만 아무 문제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남들도 다 그럴 테지, 나만 이렇게 힘들건 아닐 거라는 생각은 어떤 여지를 느끼게 하고 그렇다면 나도 견디고 넘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위로하려던 마음이 오히려 '남들은 더 힘든 것도 견디는데 나만 왜 이럴까, 남들은 이 정도 상황에선 잘만 버티던데 나는 왜 이렇게 약할까'하고 자신을 다그치고 깎아내리게 되어 이른바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상담실에 오시는 많은 분들이 힘든 마음을 끌어안고 견디는 긴 시간 동안, 몸도 더불어 지쳐서 무력감으로 인한 피로나 근육 뭉침 같은 일상적인 증상뿐 아니라 결국 장기적인 몸의 질환까지 생기고 마는 것은 어쩌면 '오래 참는 것'을 덕목으로 삼고, 마음이 힘든 건 잠시의 힐링타임을 갖는 걸로 회복될 거라(또는 회복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관련이 있지 싶어요.
그런 점에서, 흔히 힘듦을 위로하는 '힐링' 또한 일상을 잘 지내다가 갑자기 압도된 힘든 상황이나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도록 돕는 좋은 방법일 뿐, 아파서 곪은 마음을 치료하기엔 부적절할 수도 있습니다.
쉼, 여행, 맛집 탐방, 취미활동 등 짬을 내어 하는 이런 휴식의 시간들은 사실 힘듦이 쌓이기 전, 어쩌다 먹구름 끼거나 비오는날, 건강할 때 계속 건강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또는 가끔 가져줘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흔히 몸에 무리된 신호가 오거나 마음을 더는 어쩌지 못할 때까지 열심히만 살다가, 자신이 괜찮아지는 이런저런 방법을 SNS와 유튜브를 통해 찾아보고 남들의 방법을 쫓아보거나(대개는 자기개발을 독려하는 내용이거나 일반론인 경우가 많은듯 하지만요), 그도 아니면 그제야 나만의 '힐링' 코드를 찾아 시도해 봅니다.
그러나 스스로 일어나기 힘들다고 느끼게 된 마음은 그런 저런 방법들이 아니라 이제는 곪아 터진 상태, 곧 '치료'가 필요한 상태이거나 심리 전문가와 대화해 볼 일인 것일 수 있습니다.
저는 잔나비의 노래를 들으면, 어떻게 그 마음을 알았을까? 싶은 순간이 많습니다.
모든 걸 가진듯한 이 청년도 누구나처럼, 깊이 외로운 밤이 많았구나! 싶어지지요.
특히 이 노래는 어쩐지 제게도 위로를 주어서, 함께 들었으면 하고 올려둡니다.
혼자 견디는 건 그만해도 됩니다.
속으로 끙끙 앓기만 하는 것도, 그만하면 충분합니다.
더는 자신을 혼자 내버려 두지 말고 상담실에 오셔서 그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게 되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