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드는 심리상담실
'라캉'을 오랜만에 다시 읽으며 소감을 쓰려고 자료를 뒤적이니, 작년 8월에 현대정신분석연구소의 에크리 강의를 듣고서 적어둔 게 눈에 띄어요.
딱 일 년 만에 나는 라캉을 다시 집어 들었구나, 하며 혼자 피식 웃었어요.
그러고 보니 이 책도, 현대정신분석연구소에서 '개성화 시리즈'를 묶어 판매할 때 사 읽었던 주옥같은 책들 중 하나네요.
개념들은 여전히 어려워요. 단어도, 문장도.
하지만 맥락은 충분히 알 수 있으니 이해한 것만 살살 옮겨보려고요.
"망각은 억압이다"
상담실에서는 삶의 어느 주기, 특정 기간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는 분을 자주 만납니다.
기억나지 않는 것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라캉은 말합니다.
물론 의식적이거나 고의적이라는 의미는 아니고, 어떤 느낌이 감당할 수 없는 거라면, 그래서 느끼지 않아야 했던 순간들이 많았다면 그런 느낌이 어떤 '감정'으로 인식되기도 전에 차단해야 하고, 시간과 함께 그 감정과 연결된 기억들을 없는 것처럼 여기게 되니, 의도적인 건 아닐지라도 우리의 의식이 생존에 최소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서 만들어내는 일종의 조작인 셈입니다.
"고의적 불일치는 자아의 건강한 부분을 강화하게 된다"
심리 상담 시간은 어떤 면에서는 고해성사와도 같을 때가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고해성사이기도 하지요.
남에게 드러내지 못하는 모든 게 잘못이거나 죄가 아니건만, 숨기면 숨길수록 죄같이, 벌받을 일처럼 느껴지고 점점 더 큰 자물쇠가 필요해지니까요.
누군가에게 자기 마음에 든 그것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솔직해지면 질수록, 자기를 드러내 보이면 보일수록 조금씩 자기가 열리고 놓여나게 되지만, 그와 비례해서 그 이야기를 듣는 대상, 곧 상담자가 점점 더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어가기 마련입니다.
이 과정은 매우 자연스럽고,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서로가 중요해질수록 관계에서 보이기 두려워했던 모습들이 더 자연스레 (뜻하지 않게 상담자에게 서운하거나, 감정이 생기는 일로서) 드러나고 바로 여기서! 이전에도 있었을법한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다룰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피분석자가 분석가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분석은 끝이 난다"
"저항에 대한 분석 안에는 분석가에 대한 분석이 있다"
이렇게, 두 사람이 서로에게 느끼는 것에 대해, 일정 기간 동안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주로 기회를 봐가며 드러내던 것을 어느덧 내담자 측에서 자신이 상담자에게 받는 느낌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솔직하게 논의해 볼 수 있으면, 그때는 내담자가 자기 삶에서 마음이 매여있던 것들이 정리되는 경험으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생활하는 동안 일어나는 일뿐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들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상담 관계, 즉 중요한 r관계인 두 사람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들을 이윽고 즉시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과정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상담은 머지않아 종결을 맞이하게 되지요.
"언어는 의미의 모음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기호는 하나의 기표와 기의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고정과 변동이 동시에 가능하다."
라캉은 자아의 현상에 대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타인을 위해 구성한 상상적 포획들(!)'이라고 했습니다.
아이고, 그렇군요. 자아는 그런 거로군요!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나'라는 감각을 느끼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나'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여기니까요.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고 신경 쓰는 데는 외모나 행동도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말, 즉 언어이지요.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사람이 하는 말은 그의 사고방식을 드러낸다', 급기야 '침묵이 금이다'!
수많은 금언들은, 말을 신중하게 하라고 경고합니다.
이처럼 내가 하는 말은 곧 나를 드러내니, 때에 따라서는 말을 골라 하고 격조 있게 하려는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상담실에서 하는 말은 그런 의미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어떤 말이든 하면 되고, 또한 그저 말하면서 내면에 있던 생각들이나 느낌들, 감정들, 정서들, 감각들이 드러나고, 조정되고, 맞추어지고, 결국은 제자리를 찾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단순한 의미의 모음이 아니라 말하는 과정, 태도, 맥락, 결론에 다다르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바로 나의 모든 면을 아우르는 전체적인 모습을 말하면서 드러내고, 정리해가는 거라고 여겨져요.
그러니 또한 어떤 면에서는, 상담자와 어떤 관계를 경험하냐에 따라 하는 말들의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겠습니다.
나지오의 다섯 강의 자끄 라캉에서 느낀 점은 다음에 정리해 보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
책에서, 라캉의 한마디에 어쩐지 안심하며 글을 마칩니다.
"인간은 현실의 한정에도 불구하고 지고선(至高善)을 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