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드는 심리상담실
유일한 천국은 천국이 없는 것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몇 해 전 겨울, 서울에서 내려온 긴 퇴근길에 집 근처 지하도를 막 올라왔을 때였어요.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늘씬하고, 우아한 여성이 갑자기 저의 팔을 잡으며 선생님, 영이 참 맑으시네요" 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마주 오던 그녀의 미모에 탄복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저를 잡은 그녀의 손과 지나치게 깊은 눈빛이 당혹스러워서 "아 깜짝이야, 놀랐어요!"하고 조금 호들갑스럽게 그녀를 밀어내는 눈길로 쳐다보았습니다.
그녀는 곧 놀랐냐고 하며, 내가 '너무 영이 맑아 보여 좋은 소식을 전해주려고' 말을 걸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곧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이 되어 "수고하세요" 하고는 그녀 곁을 떠났지요.
집에 오는 버스를 타서도, 한참 젊고, 우아한 그녀의 모습이 어른거렸습니다.
이후에도 그녀를 한 번 더 만난 적이 있는데, 비 오는 날 이번에는 동료와 둘이서 우산을 쓰고 또 나에게 다가와서 "영이 맑다"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저는 이번에는 "맞아요, 제가 맑아요" 하고 가볍게 웃으며 응하면서도 전해 주겠다는 말에 관심이 없다고 하자 "자기를 안다고 여기지만 선생님은 정작 한 치 앞도 모르지요,"라고 하는 그녀의 말에 뭔지 모를 압도감을 느끼며 언짢아졌습니다.
정곡을 찔린 느낌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ㅎㅎ
여하튼 저는 그녀에게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그래서 댁은 아세요? 감히 누가 누굴 안다만다 할 수 있겠어요!"
그러자 그녀는 그 깊은 눈으로, 그러나 바로 앞에 있는 제가 아니라 저와 그녀 사이의 공간을 보는 듯 공허한 눈으로 "알아요! 적어도 무지해서 한 치 앞도 못 보는 건 알지요."
이후에도 가끔 길에서 팔목을 끄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그녀가 생각났고, "추운데 수고 많으시네요!"라고 위로를 건네게 되었지요.
스물셋, 뭐가 뭔지 모른 채 하루하루 살아남기에 급급했던 저는 목욕탕에서 만난 어떤 아주머니가 말을 걸며 다음에 꼭 한번 와보라고 준 주소를 찾아간 적이 있어요.
아마도 외롭고 공허한 젊음을 더는 견딜 수 없다고 여긴 어느 날이었지요.
예상대로 그곳은 점집이었는데, 아주머니는 저를 앞에 앉혀놓고 철철 우시면서 "아 왜 아침부터 울리고 그러냐"라며 당신의 신(?)에게 짜증을 내셨어요.
한 시간여 앉아 있는 동안 저는 저의 이야기를 줄줄 하며 울고 웃었고 그분도 함께 울고 웃어주셨어요.
그러고는 아프게 떠난 가족들을 위해 '싸게 해줄 테니' 천도재와 씻김굿을 하자고 했어요.
씻김굿!
저는 그 의미를 난생처음 그분께 듣고서 '그래 그러면 되겠다, 씻김굿을 하면 내 많은 고통들도, 지나간 회한들도 흘려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었어요.
그렇지만 가진 돈이 얼마 없어서 망설이니까, 그분은 저에게 대략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우리는 저마다 자기가 나름대로는 뭘 좀 안다고 생각하고 살지만, 사실은 무지가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다. 돈은 벌면 되지만, 눈을 시퍼렇게 뜨고도 자기가 뭐에 휘둘리고 사는지도 모르고 살다 보면 꿈속에서 헤매는 거나 다름없이 아무렇게나 살게 된다. 그러니 있는 힘껏 깨어나야 한다."
이렇게 해서 스물셋에 통장에 남은 잔고를 박박 긁어 눈이 허리만큼 쌓인 오대산에서 굿을 하게 되었는데, 영민한 저는 그만 알아버렸지 뭐예요!
그 굿이 정말 돌아간 나의 가족이 와서 나와 해후한다기 보다, 나의 서러움을 달래기 위한 퍼포먼스라는 것을요.
그로부터 10년 후, '삶이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갯속 같다'고 하소연하는 저에게 저의 상담자께서, "무지함이 우리를 스스로 어리석다고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라고 하셨습니다.
현재의 무지함!
그 말을 듣고 저는 "무지함"의 깊이나 차원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살면서 보니, 한 차원에서 무지함을 깨워 새롭게 배웠다 해도 삶의 다른 차원에서, 또는 다른 영역에서 무지함은 계속 일깨워나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집으로...
상담실엔 신앙을 가진 여러분들이 오십니다.
저의 내담자 중에는 기독교, 불교, 천주교 등 대표적인 종교뿐 아니라 대순 진리교, 신천지교, 여호와의 증인, 사랑의 교회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분, 무속인의 자녀도 여러명 계셨지요.
무엇을 믿든, 어떤 것을 신앙하든 우리의 마음을 굳건하게 하고 살만한 삶으로 경험하게 하며 이웃에게 친절하게 하는 신앙은 언제나 옳은 일일 겁니다.
또한 그런 기쁨을 이웃에 나누려는 선의로 오늘도 애쓰는 많은 분들을 축복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신앙공동체 안에서도 관계는 현실이어서 각자의 심리에 따라, 정서와 반응에 따라 어려움도 있고 꼬이기도 하기 마련이지요.
또한 자신이 받아들여 지복을 누리게 되었다고 믿는 신념을, 함께 누리자고 타인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무시로 상처에 노출되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해 있기도 합니다.
그런 상태를 이해하고, 불편함을 해소하려고 종교 안에서도 유연한 선택을 하여 상담실에 오신 것은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어떤 세계관을 가졌든, 현실은 정돈되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어떤 관점에서는 우리는 마음보다 큰 존재로, 신앙이 없어도 종교적일 수 있고 그 또한 좋은 일이라고 저는 여깁니다.
오늘은 문득 우리가 살면서 깨쳐가게 되는 '무지함'과 마치 그 너머 있는 듯 여기저기서 외쳐대는 애꿎은 '도'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첨부한 것은 저의 '무지한 순간'들에 함께 있어주어 도가 트지는 못해도 관점을 보다 넓혀주었던 고마운 책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