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드는 심리상담실
개인 분석 시간에 내가 오랫동안 수련의 방편으로 도움받았던 코스에 대해 말해달라고 상담샘이 주문하실 때, 나의 경험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래도 선생님은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까 얘기해도 모르실..." 했다가 상담샘께 들은 일갈입니다.
"OO 씨, 그렇게 말하면 내 앞에서 문을 탁, 닫는 것처럼 느껴져요…
얘기해 주어야 이해할 수 있게 되지요."
위에서 소개한 상담샘의 말씀은, 사실 상담 시간에 내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까 봐 걱정스러워 얘기해도 잘 모르실 거라고 말하는 내담자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런 경험을 하노라면, '우리는 서로에게 이해받지 못할 거라고 지레 체념해버리는 바람에 그만 외로워진 건 아닐까', 싶어집니다.
살다 보면 간절히 이해받고 싶지만, 정작 자신을 설명해낼 수 없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때, 그저 '그랬구나, 그럴 수 있겠다, 나도 잘 모르지만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지.' 하고 상대가 받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속상하게도 그런 반응을 얻어내기는 또 어찌 그리 어려운지요!
상대도 나를 이해해 주고 싶고, 받아주고 싶지만 말하는 내가 나의 몫을 해야 상대도 그 몫을 해낼 수 있는 거라 그런 순간에 결국, 내 마음이 굳게 닫혀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곤 합니다.
90세, 정신과 의사로 60여 년 일하고 연구해오신 이호영 선생님의 책을 읽었습니다.
쉬운 말글로 뇌와 신앙, 종교와 영성에 대해 차근히 들려주시는 이야기 같은 책이에요.
선생님은 우리가 공감 능력은 누구나 갖추고 있지만,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대상을 골라 공감하는 '감정이입'에 그친다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 각자가 '자신을 성찰하려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인식할 수 있게' 되면, 보다 창의적인 공감을 할 수 있으며 그것이 곧 수준 높은 공감이라고 말합니다.
p. 89
공감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필수적인 것이 '내적 성찰'로서 우선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이를 인식할 수 있어야 공감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쉬운 일이 아닌듯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이성적인 것,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중시하고 행여 감정적이 될까 봐 오랫동안 '느끼는' 걸 터부시해왔으니까요.
제 생각에, 자신의 감정과 상태를 느끼는 건 감정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은 게 아니라, 오히려 보다 선명하게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고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는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느끼고, 안다는 것은 마치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과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기력이 빠진 몸을 회복시키려면 일정한 영양공급도 필요하고, 어느 정도 기운이 생기면 밖에 나가 조금씩 운동을 해나가야 근력과 지구력이 늘어나게 되지요.
마음도, 자신을 느끼는 것이 처음에는 낯설지만 조금씩 알아차리고, 챙기고, 머물고, 느끼다 보면
차츰 일상에서 자기 마음 상태와 변화 과정을 수월하게 인식하고 조절할 수 있게 됩니다.
p. 245
내가 나에게 솔직한 것이 곧 하나님에게 솔직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하나님의 의로움을 동일시하는 신앙인이 되고 싶다.
그렇습니다.
나 자신이 느끼는 것을 느끼고, 즉 인식하고 (인식이란 그 느낌이 무엇인지 아는 걸 포함합니다), 그 느낌이 불쾌한 것이어도 견디거나 소화할 수 있는 힘은 자기를 들여다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서 나옵니다.
자신의 마음은 스스로 헤아리고, 돌아볼 수도 있지만 나를 맞은편에서 바라봐 주는 적절한 대상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요.
그런 점에서 적절한 때에 솔직하게 일갈해 주신 나의 상담샘께 참 고맙습니다. 그 말씀은 공감받고 이해받지 못할까 봐 깊이 두려워하는 마음을, 정확하게 공감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샘도 가끔 어긋나시지만요… ^^
(이 대목에서 나를 만나주는 내담자들께서 얼마나 많이 견뎌주고 있는지 실감하고 새삼 감사함이 깊이 들곤 합니다.)
p. 427
신에게 솔직하라는 것은 우선 내가 나에게 솔직하라는 말로 시작된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확실치 않으면 애매하다고 분명히 말하고 이치에 맞지 않으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자신의 신앙 안에서 정신과 의사로서 전문성을 더하여 사람살이의 이치를 전해주시는 학자의 가벼우면서도 깊은 말씀들이 많이 와닿았어요.
결국 상담실에서 마음의 이치를 함께 터득해가고자 하는 노력과도 연결된다고 느껴져 큰 '은혜를 받은 듯' 고마웠습니다.
자신의 느낌을 느끼고, 자신에게 솔직하고, 그 힘으로 다른 사람을 공감하면서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