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떠나도 별은 그 자리에
올해 9월은 작년보다는 덜 더웠고,
몸도 그동안 노력한 덕에 많이 회복되었다.
몸이 좀 좋아졌다 싶으니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들을 해야 할 때가 된듯했다.
상담실 동네에 있는 노인문화센터에서 요청한 노인집단,
암을 회복하는 과정을 나누고 서로 위로와 힘을 받으면 좋겠다고 여겨 꾸린 암환우집단,
게슈탈트 기법을 적용하여 상담한 지 꽤 되었지만
정작 자격은 달리 없어서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여긴 지도자과정,
그리고 사례 슈퍼비전들.
뭐든 미루는 것도 버릇이고
발등에 불 떨어지면 한꺼번에 해치우는 것도 습관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얼추 중간은 따라잡았고
사실 미뤘다 후다닥 해치우는 것치고는 꽤 해내는 편이라
내 버릇이 과히 싫지만도 않았었다.
여하튼, 제버릇 남 못주고서
9월 첫 주부터 무진장 바쁘게 움직였다.
월요일 오전 암환우집단을 시작으로
오후에 노인집단,
수요일 오후 노인집단 한차례 더 하고
나선 김에 평일 개인상담
금요일에 정해진 개인상담 미치고 집에 와서
8시부터 집단 슈퍼비전,
토, 일에 다시 정해진 개인상담들.
엎친데 덮치려고, 새로 일을 시작한 남편에게
차를 양보하고 출퇴근하는 길이
3분 걸어 전철 타면 되는 코앞이고, 내리면 십분 걸어 다시 집이라 괜찮을 거라 여겼는데
아침엔 택시 잡으랴,
저녁엔 곤한 몸을 이끌고 걷기가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암진단을 받은 다음 달부터
일주일에 4일 쉬고 3일 일하기를 1년 반,
예전에 주 6일 일하던걸 생각하면
다시 옛날로 돌아간 건 아니고, 그저 조금 많아진 일을
다시 시작해 보는 것뿐이야, 하고 여기며
9월 첫 주를 보낸 일요일 밤이 되자
아차. 싶었다.
이게 아닌데.
내일, 월요일에 암환우집단을 진행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몸살감기가 코끝에 감지되는 미열과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의 기력 없음으로 느껴졌다.
당장 월요일 암환우집단 한 주 쉬자고 양해를 구하고
오후 노인집단도 죄송하다고 연락을 해서 주중엔 일을 쉬었지만,
주말에 정해진 개인상담 일정을 충분히 해내기에도
에너지는 바닥에 가깝다고 느꼈다.
그런 와중이었다.
상담실 옆에는 좀 특이한 여자가 한 명 사는데,
이를테면 눈 오는 날 이웃끼리 눈을 쓸면 인사하고 서로 돕게 되기 마련인데,
그는 인사는커녕 눈을 쓸어 상담실 쪽으로 휙휙 넘기고는
내가 쳐다보면 아래위를 훑듯 노려보곤 들어간다.
어느 초여름엔 남편이 에어컨 실외기를 점검하려고 상담실 뒤편에 서 있자니
뒤에 다가와 툭툭 치더니, "아저씨 서있는 여기 사유지인 거 아시죠?"
하더라나.
그런 사람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
이곳에 터를 잡은 지 3년이 넘도록
동네에서 큰소리 안 내고 지내는 게 고마운 일이었건만.
오전 상담을 마치고 죽 한 그릇 시켜 먹고 오후 상담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에
하필이면 그가 쓰레기를 자기 집 쪽에서 쓱쓱 쓸어다가
상담실 앞에다 휙휙, 모으고 떠나는 참인 게 눈에 띄는 것이었다.
상태가 좋을 때는 한숨 한번 쉬고
조용히 나가 쓰레기봉투에 쓸어 담았을 터인데
발끈해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나름대로는 기술을 쓴다고 한말이
"여기 앞은 굳이 안 쓰셔도 돼요, 저희가 할게요."였다.
사실, 웬만하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지만
말이란 게 또 기술을 요하는 거라, 이 정도 하면 안 통하기도 어렵지만
그는 다르다.
"맨날 쓸어줬는데 고맙다고는 못할 망정 이제 와서 뭘 하라 마라예요"
하는 말이 돌아왔다.
그게 시작이었다.
각설하고,
결국 오후 첫 시간 내담자가 막 도착하여 둘이 실랑이하는 모습을 보게 되기까지
말도, 무엇도 안 통하는 그와의 대치 전은 허탈하고, 피곤한 것이었다.
장기상담으로 오랜 연을 맺어가고 있는 내담자에게
민망한 마음으로 "어디까지 본거예요?" 하고
짐짓 물으니, "선생님이 그 사람 달래려고 조곤조곤 말하시는 것 까지요." 한다.
사실 달래다 소리도 질렀으니 그는 못 볼 꼴 다 본 건데,
그 일이 제발 제발 자기감정을 제때에 정당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내 내담자의 상담이력에
꼭 필요한 경험과정이 되어주기를 빌 뿐이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다음 날인가? 오래전 종결한 내담자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는 편집증적 경향을 보이는 사람인데,
상담과정에서 불안을 꽤 많이 다루었고
취업과 연애 등, 자신이 바라는 것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상담을 마무리한, 나름대로는 잘된 사례라고 여겼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정확하게 일 년 만에,
자신이 예전에 실시한 심리검사결과를 달라기에 무슨 일이냐 물으니
병원에 갈 거라며, 지난 상담의 성과를 모조리 부인하는 듯한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다.
무너지는 느낌.
이럴 때 마음이 무너진다.
이 년여 전, 몸이 무너진 걸 알았을 때,
그제야 비로소 내가 너무 많이, 너무 자주
마음이 무너진걸 대강 다독이고는
그저 앞으로, 앞으로 어딘가로 쉼 없이 가며
다른 사람을 돌보며 살면 언젠가는 모든 게 나아질 거라 여기며
반쪽으로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었다.
그런데 그런 몸과 마음을 추스르려는 노력으로
사는 방식도, 하는 일도, 사람 만나는 것도, 먹는 것도 모두
전과 다르게 해 왔고, 그래서 많이 나아졌다고 여긴 이 좋은 9월에
터진 일복과 함께, 사달이 난 거였다.
거기서 끝을 냈으면 좋았으련만.
상담동료로 만나, 이십여 년 친구로 서로 돌봐온 벗(이라 여긴 이에게)
힘들다며, 위로를 구하는 문자를 했더니
돌아온 답은 묵묵부답이었다.
하루 지나고 친구이니 해볼 만한 소리라 여겨
"넌 친구가 힘들다는데 아무 소리가 없냐? 섭섭하게"
했더니 돌아온 장문의 문자.
"너는 내가 너를 그냥 환자라고 여기고 사사건건 받아주면 좋겠냐,
나는 그런 스타일 아니"라는, 요약하기 곤란한 마음이었다.
결국 "-그러니까 너는 쿨한 성격이라 나같이 징징대는 꼴을 못 봐주겠다는 소리네, 너 잘났다!"
하고 역시나 친구니까 볼멘 소리나 한마디 하는 걸로 대화는 끝났는데
받을 수 있으려나 기대했던 위로는 고사하고, 깨장창 우정까지 금이 가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 난 그 밤에, 급기야
남편과 한판 붙고야 말았다.
사실,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거랄까.
평소에도 눈치라곤 없는 남편이
나의 상태를 무시하고 한마디 했다가
나한테 딱 걸린 거라고 봐야 하는,
그래서 큰딸이 "환상의 궁합"이라고 놀리는
30년 함께 살면서 자주 반복했던 레퍼토리가 터졌다.
나는 남편에게 "당신까지 대체 왜 그래? 내 꼴 안 보여?!"
하고, 남한테는 못할 소리와 못 보여줄 험악한 표정을 보여가며
울고 불며 실컷 퍼부어대었다.
그렇게 2주를 보내고 나니,
몸살감기는 그럭저럭 회복이 되어갔지만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어디부터 잘못된 건가, 싶고
희생자,
온몸과 마음이 희생당한 피해자의 그것에 사로잡혀서
기력이라고는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벌써 9월이 다 가고 한주를 남기고 있는데
어느새 나는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이 생각, 저 상념에 잠을 못 이루면서
평소 우울해서 불면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에게 가르치고,
연습하고, 그래서 좋아지도록 도왔던 수많은 기법들을
스스로 적용해도 소용이 없다고 여겨지기까지,
여러 날 잠을 못 들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다, 일찍 눈을 뜬 어느 아침 문득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배워 자주 써왔던 마음 다루기 방법 중 하나로,
이 좌절을 다뤄보기로 마음먹었다.
관계에서 숱하게 아파졌으니
관계에서 좋은 걸 찾아 회복하면 될일.
그래서 오랫동안 소원했던 사람들에게 안부를 물었다.
고마웠고, 한때는 서로가 반가운 사이였으나
세월과 함께 멀어져 이제는
서로 어떻게 사는지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안부와 함께, 인사를 보냈다.
미안했던걸 사과하고,
그리운 마음을 전하고, 그리고
어찌 살든, 건강하고 편안하기를 바라는 축복을 보냈다.
그랬더니, 오래전 동료가 밥 사주고 싶으니 당장 날을 잡자고 했다.
그리고, 얼굴은 못 보고 톡만 주고받은 지도 몇 해가 된 동료는
직업이 목사인데, 강력한 기도빨로 기도를 해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멀리 부산에 사는 언니는 추석에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묻기에
꿀한단지 보내달랬더니
당장 다음날, 꿀단지와 함께 로열젤리를 보내왔다.
그리고 친구로 지내온 <치유공간 느낌>의 뛰어난 상담자 선영은
시월에 둘이 데이트를 하자며 양평으로 오겠다고 시간까지 정해둔다.
가까이 사는 30년 지기 친구는
매일 몸이 좀 어떠냐고 물어온다.
그러더니 급기야 몸에 좋다는 걸 싸들고 상담실에 찾아왔다.
또 한 친구는
추석에 먹으라고 떡을 보내며,
네가 좋아하는 토란국을 해놓을 테니
연휴에 꼭 들리라고 당부를 한다.
마지막 주에 함께한 노인집단의 어르신들은
한분, 한분마다 꼭 필요했었구나, 싶었던 애도와, 성찰과,
즐거움을 집단에서 얻어가신다.
그리고는 "선생님 아니면 어디 가서 이런 걸 해봤겠어요." 하고
진행자인 나에게 고마움을 돌리신다.
암환우집단의 구성원들은
진솔하고 깊은 마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나눠주며
서로 지지하여, 진행자인 나의 수고를 덜어주는 동시에
위로와 힘을 준다.
그리고 가족들.
남편은 울고 불며 원망하는 나를 두고 잠시 밖에 나갔다 들어와서
그날은 조용히 자고 다음날 출근하더니
몸이 좀 어떠냐고 전화를 했다.
어젯밤의 난리통이 마치 흔적도 없이
아니 원래 없었던 일인 양
미안한 마음을 그렇게 보여주었다.
큰딸은 일을 마치고 집에 온 나를
따뜻한 품으로 포옥 안아주며, "수고하셨슈." 한다.
그리고, 시월이 되었다.
'하늘이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은
가차 없는 진리인 듯하다.
모든 건 나에게서 비롯된다.
그리고 나에게 돌아온다.
그러니, 희생자도, 피해자도 없다.
결국 내가 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그저 내 할 바를 해나가는 것.
다만 스스로 기쁘고, 감당할만한 무게의 짐을 지고
두 다리에 힘이 솟을 정도로만 해나갈 것.
가을이 임박한 9월에,
내가 다시 새기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