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nyside, Hvar

by SUKAVIA


스플릿에 떠 있는 페리와 요트, 보트만큼이나 다양한 섬들을 보유한 크로아티아. 아시아 여행자가 아닌 유럽인에게 크로아티아를 찾는 이유를 물어본다면, 십중팔구 ‘Island Hopping’이라 할지 모르겠다. 다수의 섬과 긴 해안선을 가진 나라에서만 가능한 선택이다.


그런데 난 무얼 하고 있는 것인지. 리바 거리의 커피 향과 스플릿 항의 풍경에 취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며칠 전, 다녀온 마리나를 다시 찾았다. 당장에라도 떠날 수 있는 섬을 찾기 위함인데 한적한 갱어웨이에는 세일러들과 요트맨들이 분주하게 항해를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어디로 들 가는 것인가. 클럽 하우스에 들러 정보를 얻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무인도에서부터, 알려지지 않은 비밀 섬, 평상시의 10배가 넘는 비싼 물가를 치러야 하는 인기 휴양섬까지. 누가 뱃 사람 아니랄까. 경쟁하듯 심해지는 섬 사랑에 백기 투항. 결국 나의 발길은 스플릿에서 43Km 떨어진 흐바르 섬(Hvar Island)으로 연결됐다. 주저할 것도 없이 인근 페리 터미널에서 다음날 출발할 클리오 제트(Krilo Jet) 흐바르행 카타마란 여객선표를 구입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어귀의 작은 슈퍼마켓에 들러 장을 본다. 얇은 스파게티 면, 토마토소스, 햇반(봉지채 넣어 끓이면 밥이 되는 크로아티아 표 햇반), 음료, 맥주, 아이스크림, 우유, 계란 등을 골라 계산한다. 내가 지내고 있는 집은 전통 방식으로 건조된 석조 골조 주택이지만 꼭대기 층을 나무를 이용해 개조한 형태다. 여행자를 위한 숙소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옥탑의 장점은 추울 때 춥고 뜨거울 때 뜨겁다는 것. 가끔 햇살이 들어오는 시간에는 그나마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온풍기를 틀어놓은 채 밤을 보내야 할 만큼 추웠다. 끓는 물에 면을 삼고 토마토 스파게티와 치즈를 올려 저녁을 준비했다. 보통은 인근 레스토랑에서 먹는 편인데, 비가 오는 바람에 집에서 먹기로 했다. 느긋하게 디저트까지 즐긴 뒤, 맥주 한 잔으로 마무리. 늦은 밤, 고양이 울음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졌다. 고양이는 성대가 끊어질 만큼 울고 또 울었다. 그 날밤, 고양이가 잠들 때까지 괴로움에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흐바르. ⓒ Photo by SUKAVIA


흐바르 타운행 페리는 스타리 그리드 행보다 저렴하고 빨라 좋지만, 체크 아웃 시간이 지나는 관계로 두어 시간을 리바 거리에서 보내야만 한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스플릿의 풍경을 두 눈과 마음에 담는다. 오후 4시, 스플릿 항을 출발한 390톤급 크리오 제트 여객선은 시속 30노트를 넘나들며 아드리아 해를 내 달린다. 속도가 높아질수록 뱃머리도 따라 심하게 올라간다. 흐바르 섬은 수십억을 호가하는 고급 요트와 보트, 이국적인 별장에 일조량(연간 2774시간)까지 높아 주말과 휴일에 이곳에서 휴가를 보내는 현지인들과 노후를 만끽하는 유럽인들이 많은 전형적인 휴양 섬이다.


흐바르 섬까지 이동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페리다. 페리라 함은 차량까지 실을 수 있는 카 페리(Car Ferry)와 사람들만을 싣고 떠나는 카타마란 페리(Catamaran Ferry)를 의미한다. 흐바르 타운(Hvar Town) 행 카타마란 페리를 탈 수 있다면, 조금 저렴한 가격에 섬까지 멋진 항해를 즐기며 여행을 이어갈 수 있지만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기상 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에는 운행을 하지 않는다. 이럴 경우, 목적지가 흐바르 타운이 아닌 스타리 그리드(Stari Grad) 행 페리를 이용해야 하는데 오전에 자드로리니자 페리(Jadrolinija Ferry)를 타고 스타리 그리드로 입항, 현지 버스로 갈아타고 흐바르 도심으로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내가 이용한 카타마란 페리는 현지인들이 주로 애용하는 것으로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다. 기존의 유람선이나 여객선과 비교하면 좌석 배치가 훌륭한데, 마주 보는 좌석 사이 테이블을 두어 한 시간가량의 항해 시간을 편하고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해준다. 물론, 운항 중간중간, 위협적이고 예상치 못한 배의 흔들림과 쏠림 현상(Rolling)을 경험할 수 있지만 멀미약을 준비한다면 큰 걱정은 없다. 스플릿-흐바르행은 해협을 넘나드는 바다 항해라 특히나 기상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img.jpg 흐바르. ⓒ Photo by SUKAVIA


바다가 익숙한 백발의 노부부와 혈기 왕성한 젊은 크로아티아 청년들은 평온하게 트럼프 카드를 치거나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멀어져 가는 스플릿의 풍경을 감상하는 정도. 페리가 속도를 더할수록 디오크레티아누스 궁전도, 리바 거리도, 바다 갈매기에게 먹이를 주던 여행자의 모습도 서서히 멀어져만 간다. 스플릿 시가지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유난히도 낮게 깔린 구름만이 하늘과 바다를 구분해 준다. 마주하고 있던 크로아티아 현지인이 말동무가 필요했는지 무미건조한 질문들을 던진다.


"미안, 나는 영어를 잘 못해!"


약간의 보디랭귀지를 함께 사용하면, 대개 97%, 대화가 종료된다. 오지랖이 넓은 3%의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흐바르 섬은 성수기에 특수를 맞는 휴양지로 유명한 해변과 질 좋은 와인들을 생산하는 농가들이 전역에 포진되어 있으며 이들의 와인은 2,500년 전 이주한 그리스인들로부터 처음 전파된 것으로 흐바르 섬의 스타리 그리드 지역은 과거 명맥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 포도밭이 지금도 운영되고 있어 최상의 퀄리티를 자랑한다고 한다. 때문에 성수기인 6월~9월에는 스플릿에서 술을 마시다 배를 타고 흐바르 섬으로 넘어와 아침까지 와인을 마시고, 이른 새벽 첫 배를 타고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다반사. 그러나 비수기 시즌에는 유명한 레스토랑이나 관광지조차 문을 열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방문 시 확인은 필수라고 한다. 이러 쿵 저러 쿵 일방적인 태도로 흐바르의 모든 것을 소개한 현지인의 결론은 결국, 자신이 숙소를 운영하고 있으니 싸게 주겠다는 것.


한 시간가량의 항해가 끝나갈 무렵, 흐바르 섬에 당도했다. 성수기 시즌이라면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와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왔겠지만 한적한 겨울에는 텅 빈 거리와 유난히도 빨리 찾아오는 어둠만이 이방인을 반겨준다. 물론 저렴한 숙박비와 한산한 거리는 머무는 시간을 늘릴 좋은 기회가 되어 나 같은 여행자에게는 최고의 시기가 되어 준다. 오지라퍼와 서둘러 짧은 인사를 하고 미리 예약한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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