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of Dubrovnic

두브로브니크 산책

by SUKAVIA


12월 두브로브니크의 일상은 지극히 단조롭다. 해가 짧아져 밤이 일찍 찾아오다 보니 제아무리 노력해도 자정을 넘기기 힘들다. 스플릿과 흐바르 섬을 거쳐 두브로브니크까지 내려오는 동안 크로아티아의 날씨는 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해가 뜨고 지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겨울에 접어든 요 며칠은 새벽 내내 비가 내리고 체감 온도까지 떨어져 여간 고생이 아니다. 그 때문에 이른 아침 마시는 뜨거운 커피나 차 한 잔은 여행 중 생긴 새로운 습관이 되었고, 혹시 몰라 준비한 수면 양말을 신고 자야 하는 날도 역시나 늘어만 가고 있었다. 손에 쥔 커피를 들고 방안과 거실을 오가며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면 그나마 체온이 조금 올라가곤 했다.


해가 떠오르는 시각은 조금씩 늦어지고 있는 겨울, 해가 뜨기 전까지 딱히 할 일이 없다. 낡은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거나 침대 위에 시내 지도를 펼쳐 놓고 하루 일정을 고민하는 정도. 내가 묶고 있는 이곳은 구시가지 성곽 안, 두라 발레비 골목 중턱 즈음에 위치한 여행자 숙소로 300년의 세월을 버텨 낸 오래된 석조 주택이다. 다시 말해 운치는 있으나 무척 춥다는 뜻이며 지난번 묶었던 스플릿의 숙소보다 햇볕도 덜 들어 훨씬 더 추운 느낌이다. 낡은 청동 열쇠로 아파트 문을 잠그고 거리로 나와 크로아티아 최남단에 위치한 두브로브니크를 마주한다. 마치 미로 속에서 출구를 찾 듯 좁고 가파른 계단과 골목길을 이리저리 휘집고 다닌다.


비슷비슷 보이던 골목길이 차즘 익숙해진다면, 그것은 꽤나 오래 머물렀단 뜻일 테고, 다른 말로는 아쉽게도 떠날 날이 다가왔다는 증거다. 언제나처럼 귀에 꽂은 이어폰을 따라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발걸음을 맞춰 구시가지의 작은 골목길로 외유를 나선다.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과 따뜻한 햇볕은 오후 무렵에나 성안을 비추는데, 이때가 하루 중 가장 따뜻한 순간이다. 낯설고 차갑게만 느껴졌던 구시가지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 Photo by SUKAVIA

성곽 안에 보일 듯 말 듯, 자리한 작은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따뜻함을 마셔본다. 카페는 흔한 가정집을 개조한 것으로 화사한 실내 장식과 밝은 조명, 지나간 잡지들이 테이블 위에 수북하게 쌓여있다. 여름이었으면 길게 늘어선 줄을 서다 하루가 갔을지 모르겠지만 한적한 초겨울에는 어디를 가든 기다림 없이 편하게 둘러보고 즐길 수 있다.여행자 정보 센터를 찾아 두브로브니크 카드를 구입한다. 카드 하나면 지역을 오가는 시내버스는 물론 지역 내 대표 관광지를 무료로 둘러볼 수 있어 여행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하고 유용하다. 가장 먼저 성벽을 올라가 보기도 했다. 구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는 길이 1940m, 높이 25m의 성벽은 유럽에서 가장 견고한 건축물로 손꼽힌다. 성벽은 3개의 중요 요새와 16개의 성탑, 2의 피신용 성채, 모퉁이 방어 시설 등을 갖추고 있으며 이중 민세타(Mincenta)는 전략적인 방어를 목적으로 세워진 가장 높고 단단한 요새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성벽 입구 가파른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시작은 아드리아 해를 마주하고 있는 성곽 보이는 로브리예나츠 요새에서부터. 좁다란 성벽 길은 아찔함이 느껴질 정도로 높다. 성벽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평지에서 본 것과는 달리 색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어떻게 걸었을지 모를 세탁물과 아슬아슬한 담벼락을 의자 삼아 앉아 있는 이름 모를 고양이, 주황색 지붕과 파스텔 색조의 창틀은 중세 시대, 아니 요즘 시대와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매칭이다. 성벽을 따라 구시가지를 둘러보다, 윤슬의 아드리아 해를 마주하고 있는 아주 특이한 카페테리아를 발견했다. 부자 카페(Buza Bar & Café)라 불리는 곳인데 성벽의 북쪽 자연 절벽 위에 있는 카페 겸 바로 석회색 자연암과 하얀 파라솔이 달린 야외 테이블이 푸르고 짙은 바다와 묘하게 잘 어울린다. 여름에는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일광욕을 즐기고, 겨울에는 일몰을 감상하며 느긋한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두브로브니크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카페다.


두브로브니크 카페. ⓒ Photo by SUKAVIA


카페를 뒤로하고 해양 박물관 도착했다. 이제야 딱 절반을 돌아온 셈이다. 박물관에는 이탈이라의 무역항으로, 베네치아 군주(1205~1358)의 땅으로, 라구사(Ragusa) 공화국의 도시국가로, 지중해 최고의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던 당시의 생생했던 기록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찬란했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마치고 나니, 슬슬 배가 고파온다. 큰 지폐를 바꾸기 위해 산 바게트 빵을 꺼내 허기를 달랜다. 요새 내 탑에서 내려다보는 구시가지의 모습은 아드리아 해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주황색 지붕과 드높은 하늘, 좁은 골목들과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애니메이션 ‘마녀의 우편배달부 키키(魔女の宅急便 )’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만화 영화의 실제 모티브가 되었던 곳이 바로 이곳 두브로브니크다. 빗자루를 타고 집을 떠난 주인공 키키와 검은 고양이 지지, 우연히 도착한 마을에서 지내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만화 영화 속 시계탑과 빵집, 바닷가, 이웃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사진기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좋은 풍경을 담기 위해 노력해 보지만 불가능하다.


미네타 요새에서 바라본 구시가지는 중세 시대의 정취가 흐른다. 구 항구와 연결되는 루자 광장(Luza Square)에는 스폰자 궁전(1667 대지진에도 파괴되지 않음)과 자유도시의 상징인 롤랑의 기둥(Orlando Column),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 성당(Church of St. Blaise), 민족운동가이자 시인으로 활약했던 군들리치를 기리는 (Gunduliceva Poljan) 광장, 귀족들의 행사에만 사용되던 렉터스 궁전(1453년 건축) 등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군들리치 광장은 이른 아침과 일요일에는 현지인들을 위한 소소한 시장이 열리기도 하는데 아파트와 멀지 않아 한 두 번가량 신선한 과일이나 갓 잡아 올린 해산물을 사 와 요리해 먹기도 했다.


두브로브니크. ⓒ Photo by SUKAVIA


로브리예나츠 요새가 보이는 성벽의 입구인 필레 게이트(Pile Gate)에서 성벽 관람을 끝이 난다. 성벽을 한 바퀴 돌았을 뿐인데, 어느덧 4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성벽 너머로 보이는 필레 게이트 주변은 신시가지를 비롯해 인근 타운으로 이동하는 버스들이 오가며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두브로브니크 여행을 시작하는 곳이다. 인접한 여행자 정보 센터에서는 두브로브니크 카드를 비롯해 다양한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베이커리, 잡화점, 액세서리 가게 등도 자리하고 있어 언제나 분주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볼만한 풍경은 따로 있다. 이곳에서 가장 행복한 두 영혼은 다름 아닌 게이트 입구에서 낭만적인 바이올린 음악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와 눈부신 햇살을 덮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길 고양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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