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mare

악몽같았던 새벽

by SUKAVIA


장소는 스플릿 버스 터미널. 때는 흐바르 섬 여행을 마치고 스플릿에서 두브로브니크까지 이동하려고 했던 그날밤 늦은 새벽의 일이다. 흐바르 섬에서 계획된 날에 나올 수 있었다면, 아니 아침에 출항하는 첫 배만 타고 나올 수만 있었다면, 아름다운 윤슬을 감상하며 아드리아 해가 펼쳐진 서남부 해안도로를 달릴 수 있었겠으나, 기상 악화로 인해 마지막 배를 타고 나오는 바람에 새벽 2:30분 발 장거리 야간 버스에 올라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스플릿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야간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샀다.


“목적지인 두브로브니크까지의 소요시간은 약 4시간이지만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밤에는 대략 5시간은 족히 걸릴 거야”


버스 터미널 안 매표소 직원의 투박하고 무덤덤한 한 마디였다. 허기진 배도 채울 겸 톤시세바 Tonciceva 골목 내 위치한 피자리아 갈리자 레스토랑에서 두툼한 도우의 피자와 스파게티, 생맥주를 마시며 스플릿의 마지막 저녁 식사를 즐긴다. 다 비운 맥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는 것으로 스플릿, 흐바르 섬 여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후 새벽 버스를 타기 전까지의 시간은 크로아티아 여행 중 가장 무섭고 두려웠던 순간들의 연속으로 흔한 사진 한 장도 찍을 수 없을 만큼 불안했다. 수첩 속에 마구 갈겨 적어 놓은 메모를 보면 당시 상황은 대충 이랬다.



시계 배터리가 다 닳았는지 수차례 조명 버튼을 눌러도 도통 말을 듣지 않음. 시곗바늘이 11시를 가리키자, 마지막까지 불을 밝히던 카페와 바도 문을 닫기 시작함. 거리에 남은 불빛은 버스 터미널과 24시간 편의점, 공중전화 부스 정도가 전부. 엄습해 오는 오싹한 기분. 정류소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한둘 모여듦. 학창 시절, 동네 노는 형들이 몰려오는 듯한 느낌과 정말 똑같음.

늦은 밤, 거리는 비나 추위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싸움판을 벌이고 있는 건장한 청년들이 점령했음. 버스 정류장의 작은 대합실은 버스를 기다리며 짐 가방을 품 안에 감싸고 있는 여행자, 술에 취해 고성방가하는 취객, 갈 곳을 잃은 노숙자들이 점거했다.

인적이 드문 새벽이 되니, 버스 터미널은 스플릿의 어둠과 추위, 쏟아지는 비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소외당한 사람들의 안식처로 변해가고 있음. 웬만해선 느껴보지 못한 두려움, 무섭다. 행여나 버스를 놓치지는 않을까, 이들의 먹잇감이 되는 것은 아닐까, 순간순간 변하는 주변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졸린 눈을 참으며 버스를 기다린다. 젠장, 출발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도착하지 않는 버스. 예정보다 조금 늦은 새벽 2:45분에 기다리던 두브로브니크행 버스가 도착했다.

– 12월 15일, 공포의 스플릿 버스 대합실에서



버스 안은 빈 좌석이 보이지 않았다. 정류소에 들를 때마다 잠이 깨고 들고를 반복한 모양이다. 혹여 소리라도 날까, 조용조용 자리를 찾아가 잠을 청해 본다. 보스니아 국경을 넘나들며 여권 검사를 위해 잠시 깬 몇 분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안락하다. 어두웠던 차창 밖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 아드리아 해의 동이 터 오르는 것이다. 버스가 도착한 두브로브니크의 버스터미널은 스플릿과 마찬가지로 보슬비가 내린다. 터미널 휴게소에서 따뜻한 음료 자판기를 발견하고 핫 초콜릿 한 잔을 뽑아 마시며 이리저리 뒤척이며 움츠렸던 몸을 푼다.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두브로브니크의 풍경은 어딜 봐도 찾아볼 수 없다.


지도는 압축된 것이 분명했고 지금 서 있는 이곳은 지도의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신시가지 외곽이다. 터미널 앞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현지 버스로 다시 갈아탔다. 출근을 재촉하는 현지인들 사이로 트렁크와 배낭을 내려놓자 시선이 나에게 고정됐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로 달려가는 사이 다행히 비는 잦아들고 있다. 새벽부터 시작된 고단하고 두려웠던 하루가 비로소 끝을 맺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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