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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KAVIA Aug 31. 2023

R.I.P

Rest In Peace


인천을 출발해 쿠알라룸푸르와 발리 덴파사르 국제공항을 거쳐, 다시 롬복 마타람으로 향하는 일정은 상당한 인내심과 체력이 요구되는 스케줄이다. 유일한 위안거리는 인천과 쿠알라룸푸르 구간의 기내식이 마음에 들었다는 정도다. 인천에서 출발한 항공편이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발리로 가는 연결 편을 기다리는 동안, 호텔이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딱딱한 철제의자에 몸을 맡긴 채 잠이 들다 깨다를 반복해야 했다. 발리로 가는 보딩패스를 자꾸만 꺼내어 지루하기 흘러가는 시간을 확인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설렘보다는 지루함이 더 커질 무렵, 한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앤디'가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한 때는 우상이라고 생각했던 앤디의 죽음... 짧은 순간이지만 온몸에 힘이 빠져버렸다.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서핑을 하면서 각종 영상을 통해 익숙해진 인물이라 충격이었다. 새벽 무렵, 화장실에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렸다. 공항에서의 지루한 시간들, 하루 사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퇴화하고 있었다. 하루종일 묵언을 행하였으니 이제 이곳을 떠날 시간이다.  


발리에 도착했다. 입국장에서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가장 먼저 지인의 사무실을 찾았다. 앤디를 기억하는 친구들은 그의 소식을 듣고 당황한 기색이다. 어딜 가나 앤디의 이야기 일 뿐이다. 오후 무렵, 그를 위한 추모 행사가 꾸따 해변에서 진행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타람으로 갈 계획을 변경해 당분간 꾸따에 머물기로 했다. 도착의 피로가 풀리기도 전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식어버린 햄버거와 얼음이 녹아 밍숭해진 콜라를 마시고 서핑 보드를 챙겨 꾸따 해변으로 향했다.


슬픔이라는 공통분모 앞에 많은 인파가 해변에 모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롭 마차도와 로컬 서퍼들을 중심으로 그를 추모하기 위한 패들 아웃(paddle out) 세레모니가 진행되었다. 발리의 아이들은 하늘과 바다를 향해 꽃 잎을 뿌리고 우리는 꽃을 입에 물거나 목에 건채 각자의 보드를 들고 바다로 하나 둘 입수하기 시작했다. 유난히도 차갑게만 느껴지는 모래사장을 지나 꾸따의 바다로. 몇 명인지 세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은 서퍼들과 함께 앤디를 추모하기 위해 손과 손을 잡고 거대한 원을 만들어 고인에 대한 추억을 떠 올리며 그를 배웅했다.  




며칠 만에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별일이 없는지… 사실 별일이 생기기를 바란 사람처럼…

그런데 별일이 생겼다. 한때는 서로 땀을 흘리며 울고 웃었던 후배에게 생사를 넘나드는 비극적 사고가 난 것이다.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것처럼 어지럽다. 마음보다 머리가 아프다. 아직 마음까지 전달되지 않은 모양이다. 간단히 통화를 하고 난 며칠 후 또 다른 메시지를 받았다. 이제는 머리가 아닌 마음이 아파왔다. 그 메시지를 받는 순간, 나는 친구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마음과 머리가 제 각각의 길로 나를 끌어가고 있었다.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날 친구와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날 밤 나는 홀로 침대 위에 앉아 후배를 떠올리며 참 많은 눈물을 흘렸다. 해가 뜨기 전 보드를 싣고 부지런히 달려 평소 즐겨 찾는 서핑 포인트에 도착했다. 길가에 떨어진 주푼(Jepun) 꽃을 보드숏 뒷주머니에 욱여넣고 파도가 치지 않는 조용한 지점까지 패들링을 해나갔다. 아무도 없는 망망한 바다 위에서 꽃송이 몇 개에 나의 마음을 실어 보냈다. 비통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지난날 통화 속, 주고받던 메시지 속에서 나는 녀석이 보내는 시그널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혹시 내가 알아챘더라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책들. 외로운 바다 한가운데서 녀석의 이름을 부르며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 내가 더 이상 가지 못하는 이 선을 넘어, 바다 끝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세상. 부디 그 세상에서는 행복하고 편히 지내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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