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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KAVIA Jul 27. 2023

패닉에 빠지다

Panic


 빠르게 하강하고 있었다. 보드의 끝은 파도의 밑 부분을 통과하고 있었고 본능적으로 나의 왼손은 파도의 면 안에서 빨려 들어갔다. 왼손으로 파도를 긁으며 속도를 제어하고 있었다. 파도는 머리 위로 아치를 그리며 쏟아지고 있었다. 꿈에서만 그리던 *배럴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두려움이 황홀감으로 바뀌려는 찰나, 파도 면을 가르던 물체, 두 발아래 있어야 했던 서핑 보드가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파도의 면과 수면에 강하게 부딪치며 '풍덩~' 


 내 몸은 얇은 종잇장처럼 펴지고 구겨지기를 반복했다. 아무런 생각도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둔탁한 충격 후, 몸은 수면 안으로 말려 들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마치 드럼통 세탁기 속에서 힘차게 돌아가는 빨랫감 마냥, 파도의 힘이 만들어낸 소용돌이에 휩쓸려 나는 강제로 회전 중이다. 떨어지기 직전, 들이마신 한 모금의 들숨이 내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수심조차 확인할 수 없는 어두운 물 속이다. 숨을 쉬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환한 햇빛이 비치는 수면을 향해 두 팔과 두 다리를 힘껏 저었다. 숨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 다행스럽게도 수면 위로 떠 올랐다. 


푸아~아~ 


폭발할 것처럼 가빠왔던 숨을 고르자마자, 난 또다시 파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바닷속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몸은 다시 엉키고 설키기를 수차례, 파도는 나를 다시 물 밖으로 튕겨 내 버렸다. 한 번의 큰 심호흡과 함께 또다시 바닷속으로 처박혔다. 얼마동안이었을까? 얼마나 되는 높이에서 떨어진 것일까? 


 나는 세 번째 파도에 걸려 아찔한 피크에서 그대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3~4차례의 *론드리 끝에 나는 수면 밖으로 튕겨졌다. 온몸이 전율했고 눈물과 콧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짜디짠 콧물과 눈물을 마시며 생애 첫 론드리를 경험했다. 몇 개의 세트 파도가 지나간 뒤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하고 잔잔해져 있었다. 안도의 한숨도 잠시, 서퍼들이 서핑을 즐기던 스폿에서 아주 많이 떠내려온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다시금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홀로 바다에 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몸이 급하게 경직되고 차가워졌다. 입술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서핑을 하던 곳으로 안간힘을 다해 패들링을 해보았지만 강한 물살과 조류 때문에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안간힘을 쓰는 사이, 해가 빠르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어둠이 찾아오면 과연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다시 육지로 돌아갈 수는 있는 것인가?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얼마나 떠내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보드의 방향을 돌려 해안가로 나가는 것이 안전해 보였다. 하지만 해안가 쪽은 날카로운 *리프들이 가득하다. 리프 슈즈도 아닌 맨발이다. 혹시라도 잘 못 디디면 그대로 베일 수 있다. 서핑 보드에 올라타, 조심스럽게 물의 흐름대로 손을 뻗어 최대한 조류를 피해 멀리 저어나갔다.


 점점 어두워지는 바다. 어렴풋이 보이는 해안가의 불빛을 나침판 삼아 조금씩 두 팔을 저어 나갔다. 물살을 따라 해안가로 떠내려 가던 중, 해안가로 돌아가던 낚싯배를 발견했다. 


헬프(Help)!, 톨롱(Tolong)! 


혼신의 힘을 다해 소리쳐 구조를 요청했다. 오후 5시 40분, 이름 모른 녀석을 따라 바다에 들어온 지 정확히 4시간 만에 해변에 도착했다. 따뜻한 모래사장에 두 발이 닿자,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리며 털퍼덕 주저앉았다. 놀란 마음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떨리는 몸으로 바이크를 몰고 돌아가기가 무서워 해안가에 있던 로컬에게 부탁해 숙소까지 돌아왔다.  


 패닉은 한동안 지속됐다. 침대에 누어 잠을 청해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코와 귀에서는 바닷물이 멈추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내려 베개를 적셨다. 늦은 저녁 바에서 만난 서퍼 친구들은 식사 도중 스파게티 위로 흐르는 콧물의 의미를 이해하듯, 패닉에 빠진 나를 따뜻한 말로 위로해 주며 다독여 주었다.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로부터 ‘서퍼’라고 불렸던 날이자,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나의 배럴 스토리를 들려준 순간이었다. 비로소 서퍼가 되었던 그날, 나는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배럴(Barrel) : 파도가 통 모양으로 말린 상태, 터널 또는 튜브라고도 함. 

런드리(Laundry) :세탁기 속 빨래처럼 물속에서 파도에 말리는 모습을 의미.

리프(Reef) :  바닷속 암초, 산호초, 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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