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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카 Sukha Jun 16. 2020

무심한 용기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잡 구하기


용기.


흔히 이 단어는 타인을 위해 나서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한 단어로 사용된다. 나 또한 용기라는 말을 들으면 "불 속에 있던 아이를 구한 용감한 소방관"과 같은 문장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렇게 용기라는 단어가 타인이란 단어랑 어울리는 이유는 어쩌면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 바로 용기의 가장 높은 차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나는 이와는 다른 성격의 용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타인에게는 무심한, 오직 나만을 생각해서 나올 수 있는 용기에 대해서.  




나는 평소 다른 사람들을 많이 신경 쓰는 편이다. 가끔은 너무 신경 쓰는 탓에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할 때도 많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글을 올리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가 걱정된다. 어떤 주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그 말을 꺼냈다가 다른 사람이 혹시 나를 나쁘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신경이 쓰여 한참을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원하는 일의 공고가 나서 지원을 하고 싶은데 내가 너무 부족해 보여서 지원하기에 겁이 났다. 혹시라도 됐을 때를 상상해도 내가 그 일을 한다고 하면 '네가?' 하는 식의 반응이 돌아올 것만 같은 상상이 자꾸 들었다. 왜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지, 스스로가 또 한심해지고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복잡한 머리를 식히려 집 앞 강가를 열심히 걷고 있는데 문득 내가 정반대로 행동했던 적이 있었다는 게 생각났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7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해서 어학원 세 달, 아르바이트 세 달 그리고 여행 한 달이라는 당찬 계획을 세웠었다. 워킹 홀리데이를 가는 주요 목적인 영어, 돈, 여행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7개월 만에 모두 잡겠다는 생각이었다. 유창하지 않은 회화도 어학원 세 달이면 잡을 구하기는 충분하겠지, 어쩌면 어학원에서 알게 된 사람을 통해서 소개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와 같은 계산도 있었다.


하지만 어학원에서의 마지막 한 달을 앞둔 순간에 나는 내 계산이 계산이 아니라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낙관적인 희망사항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두 달이라는 시간은 호주에 적응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고 내 영어는 귀가 조금 트였을 뿐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어학원에서 만난 친구들은 본인들의 일을 구하기에도 바빴고, 설사 일하고 있더라도 누군가를 소개해줄 만큼 일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없었다. 영어실력이 크게 필요 없는 공장이나 농장으로 가는 사람들도 꽤 많았지만 나는 카페나 음식점에서 서빙 일을 하고 싶었다.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 공부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한국에서 즐겁게 일했던 경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는 동안 나는 레주메(이력서)와 커버레터(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Gumtree와 같은 온라인 구직사이트에 레주메를 올려도 보았지만 보잘것없는 내 레주메와 커버레터로는 연락을 기다리다가 세 달이 다 지나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떠올린 방법이 레주메를 직접 돌리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찾아본 많은 인터넷 포스팅에는 호주에서 레주메를 직접 돌리는 것이 흔한 일처럼 묘사되어있었다. 그런데 주변 어학원 친구들 중 레주메를 직접 돌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무도 안 하는 것 같은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어학원 선생님한테 첨삭받은 레주메와 커버레터를 각각 50장씩 인쇄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들어가서 말해야 할 영어 표현들을 검색해서 외웠다. 밝게 인사하고 일자리 구하고 있는데 자리 있는지 물어보고 레주메를 건네주기. 그렇게 나는 짧은 표현들을 중얼거리며 레주메와 커버레터가 가득 든 가방을 메고 길을 나섰다.





처음은 쉽지 않았다. 어학원 주변의 좋아하는 카페는 전부 호주인들만 일하고 있었고 말을 하다가 실수할까 봐 걱정도 됐다. 비웃으면 어떡하지? 싶기도 했지만 순간 내 머릿속에 '에이 뭐 어때. 어차피 다시는 안 볼 사람들일 텐데.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도 아니고.'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 크게 인사했다.


Hello! How are you?


첫 발은 내디뎠지만 당연하게도 일자리는 금세 구해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빈 일자리가 없다고 이력서를 줄 수 없었고 기껏 건네줘봤자 연락이 오지 않을 거라는 게 뻔하게 보였다. 그런데 차라리 그게 나은 경우였다. 한 인도 음식점의 사장은 나에게 대놓고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고? 네 영어실력은 일할 수 있을 만큼 좋진 않잖아?"라고 말했다. 당황해서 말을 얼버무리고 나온 후의 내 얼굴은 시뻘게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왠지 모르게 금방 괜찮아졌다. 나는 바로 옆 가게로 가서 또 인사를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삼일 이력서를 돌리다가 나는 한 레스토랑에 일을 구하게 되었다. 한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곳이었어서 그 덕을 봤다. 하지만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었던 그곳의 손님은 호주 현지인들이 대부분이었고, 일하는 직원들도 전부 호주인에 딱 한 명 있던 한국인도 그곳에서 살고 있는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사장에게는 영어를 잘한다고 큰소리쳤지만 나도 내 영어가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나는 첫 출근 전 '레스토랑에서 쓰이는 영어' 등을 검색하며 회화 연습을 계속했다.


하지만 짧은 벼락치기는 역부족이었을까? 손님의 주문을 나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고 결국 그날 저녁 왔던 손님 중 한 명이 왜 저런 애를 쓰냐고 컴플레인을 걸었다. 그리고 며칠 뒤 사장에게서 호주인인 레스토랑 매니저가 여기는 학교가 아니라며 나를 잘라야 한다고 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여기는 학교가 아니다.'라는 말이 계속 귀를 맴돌았다. 너무 창피했다. 그런데 또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써줄 곳이 어딘가에는 있겠지. 그 레스토랑 매니저? 나랑 이제 평생 스치지도 않을 사람인데 뭐 어때. 그래서 나는 다시 레주메랑 커버레터를 잔뜩 인쇄했다. 그리고 다시 또 아직 레주메를 전달하지 않은 곳을 찾아가며 나를 써달라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결국 센트럴 마켓에 있는 한 스낵바에서 같이 일해보자고 전화를 받았고, 애초 계획했던 대로 세 달 동안 굉장히 행복하게 일할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렇게 거절당하고 또 거절당하면서도 다시 레주메를 전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왠지 모르게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신경 쓰던 아무 상관없다는 생각에서 나왔다. 어차피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그 생각 말이다.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생각은 다시 말해,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은 나라는 생각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쓴다. 그리고 그럴 때면 호주에서 타인들에게 무심해짐으로써 마음껏 행동할 수 있게 되었던 그때를 기억한다. 우리는 모두 타인에게 조금은 무심해져야 한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누구도 아닌 나이기 때문에. 그러니 설령 이기적일지라도 가끔은 나만을 생각하자. 그 마음이 하고 싶은 일에 도전 할 수 있는 용기를 져다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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