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와 데이트를 시작 한지 한 달이 채 안 됐을 때였다. 우리는 저녁을 함께 먹은 후 헤어지고 싶지 않아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도시를 거닐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를 알게 되고 만나기 시작하면 으레 이상형이 뭐냐고 묻고는 했는데 그 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장난스럽게 이상형이 뭐냐고 물었고, 그건 큰 의미 없이 던졌던 질문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그 질문을 물었을 때 들어왔던 대답들도 웃는 게 예쁜 사람, 예의 바르고 착한 사람 등 뻔하고 조금은 상투적인 대답들이었기에, 나는 이번에도 비슷한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다. 듣는 순간에는 기분 좋지만 금세 흩어져 나중에는 정확한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런 대답을. 그리고 돌아온 그의 대답은 생각보다는 강렬했지만, 역시나 비슷했다.
"내 이상형은 너야."
돌아온 그의 대답에 나는 웃었다. 기분 좋으라고 던지는 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저런 간지러운 말을 표정 하나 안 변하고 뻔뻔하게도 하네 싶어서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냐며 고맙다고 가볍게 대답하는 나를 그가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진짜야."
갑자기 진지해진 그의 얼굴에 나는 순간 당황했다. '나를 안 지 얼마나 됐다고 내가 진짜 이상형이라는 거지'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 내 마음이 표정에 드러난 건지 그가 말했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도 아니고, 내가 나타나서 자기 이상형이 나로 바뀐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가 원래부터 갖고 있던 이상형의 조건들에 보면 볼수록 내가 딱들어맞아서, 자기의 이상형이 나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구체적인 이상형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이성적인 끌림이 있는 사람. 그리고 대화할 때 재밌는 사람. 그게 나의 단 두 가지 조건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상형의 조건들'이라는 그의 말이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당황한 나를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그는 천천히 그의 조건들을 말해주었다. 얕고 넓게 친구를 사귀는 것보다는 소수의 친구들과 깊은 관계를 선호하는 인간관계에서부터 식당 같은 곳에 가서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 쉬는 날 클럽으로 놀러가기보다는 책을 보며 편하게 보내길 선호하는 성향까지. 그의 조건들을 정말, 길고도 자세했다. 나는 열개를 훌쩍 넘기는 그의 조건들을 들으며 충격받았다.
사람을 사귈 때 이렇게 다양하고 길게 기준을 갖고 있을 수 있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는 그가 한 말 중에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평소에 이렇다 저렇다 나를 판단하는 사람들을 굉장히 싫어하는 내가 그의 말이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던 이유였다. 매일 만나기는 했지만 우리는 짧은 시간을 알았고, 대화를 많이 하기는 했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알려준 적은 없었다. 그 사이에 그가 내 모든 것을 유심히 지켜보고 나라는 사람을 알아봐 주었다는 게 놀라웠다. 그가 말했다.
" 사실, 무조건 다 이래야 한다는 건 아니야. 난 그냥 이런 부분들이 그 사람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내 생각에 넌 정말 따뜻한 사람 같아."
연애에는 잊히지 않는 반짝거리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분명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그중 하나다. 내가 남자 친구와 사랑에 빠진 순간을 하나로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분명 나는 그를 처음 봤을 때부터 끌렸고, 만나면 만날 수록 계속해서 빠져들었으니까. 하지만 단 한순간을 꼽자면 분명 교회 앞을 걸으며 그의 이상형을 들었던 그 밤이었다.
나는 살면서 다른 사람들이 바라본 나에 대한 말들을 많이 들어왔다. 어떤 사람은 나를 정말 맑은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내 안의 힘든 부분들을 보고 어두워 보인 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정도는 틀린 그 말들을 들으며 나는 '내가 생각하는 진짜 나'에 대해 종종 생각하곤 했었다.
그래서 그가 남들은 보지 못했던 내 사소한 행동들로부터 내가 봐줬으면 했던 나의 진짜 성격을 봐줬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