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평지에 세워져 있던 커다란 십자가를 가리키며 이제부터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8명이 함께 머리 위로 십자가를 들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려간 곳에 건장한 남자 선생님이 곤장을 들고 서있었다. 주리 틀기에서 이미 충격받았던 우리는 더욱 놀라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선생님은 한 명씩 우리를 호명했다. 처음으로 불린 고등학생 언니가 나무 판 위에 엎드리자 남자 선생님은 팔을 힘껏 휘둘려 언니를 내려쳤다. 퍽-하는 소리에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다음!’ 소리에 다른 조원이 나가고, 돌아온 언니는 울고 있었다. 언니의 눈물에 더 무서워진 나도 울기 시작하자, 선생님이 앞선 조들은 다 통과했는데 이조는 이대로 포기할 거냐고 말했다. 차마 못하겠다고 말하지 못하고 나는 곤장을 맞았다. 너무 아팠지만 아팠기 때문에 더욱 이제 와서 포기할 수 없었고, 계속 믿음을 지키겠냐는 물음에 네라고 대답했다.
모든 조원이 다 곤장을 맞은 후, 또다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려간 곳에는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좁은 산길에 쪼그려 앉은 우리 조에게 그곳에 있던 선생님은 이제 너희는 진짜 죽음을 경험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부모님께 손톱, 발톱, 머리카락을 남기라며 손톱깎이와 조그만 비닐 팩을 건넸다. 손톱을 깎는데 커다란 나무 위에 이상한 게 눈에 띄었다. 어느덧 먼동이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했기에 약간의 빛에 의지해 그게 무엇인지 계속 쳐다보다가 깨달았다. 나무줄기에 동그랗게 매듭이 묶여있었다. 놀란 마음에 숨을 헉 들이쉬는데 선생님이 나무를 가리켰다. 조원 중 한 명이 대표로 목을 매달라고 했다.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은 채로 한참이 지났다. 조장이었던 오빠가 책임감 때문이었는지 일어섰고, 나무를 향해 주저하며 걸어갔다. 조장 오빠는 의자 위에 올라섰고 동그란 구멍으로 목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다가와 의자를 뺐다. 다행히 줄은 고정되어 있지 않았고, 조장 오빠는 땅으로 떨어졌다.
아무리 조장 오빠가 멀쩡하다고 해도 나무에 목을 매다는 것을 본 우리는 아무 말도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우리 조에게 어느새 선생님이 다가와 드디어 모든 시련을 통과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목을 매달았기 때문에 우리는 순교한 거라며 산의 구석진 곳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네모난 모양으로 깊게 파놓은 우리의 무덤이 있었다. 선생님의 지시에 우리는 땅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그 속에 누워서 본 어스름한 새벽하늘이 절대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다음 날 도보 성지순례는 이어졌고, 아무도 그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기에 어쩐지 그 밤이 거짓말 같이 느껴졌다. 다시 순례 길을 걷는 동안 전날 밤의 무서움도 충격도 옅어졌다.
그렇게 성지순례에서 이런 경험은 자연스러운 건가 보다 생각하게 되었다.
그 후로 십 년도 넘는 시간이 흘렀고 때때로 나는 이때의 경험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어느새 그 밤의 공포는 이런 이상한 일도 있었어-정도의 무게로만 남았고, 심지어 때때로 재미있는 에피소드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뉴스에서 신천지 교인들이 땅 속 무덤에 몸을 누이는 걸 본 그 순간 갑자기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났다. 종종 곤장을 맞았던 순간, 조장 오빠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순간이 떠올랐지만 단 한 번도 화나지 않았던 나였다. 그런데 산을 오르기 시작할 때 들렸던 동물의 울음소리부터 손톱을 깎던 순간까지 모든 순간이 다시 생생하게 기억나며 미친 듯이 화가 치밀었다.
같이 TV를 보던 엄마에게 흥분해서 똑같은 일을 당했었다고 말하자, 엄마는 놀라며 왜 그때 말하지 않았냐고 했다. 정말이었다. 왜 그 당시에는 도움을 청할 생각조차 못했지? 왜 이제야 화가 치미는 거지? 스스로에게 던진 의문에 찾은 대답은 의외였다.
나는 그 일이 잘못된 일이라는 객관적 지표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그다음 날 사람들의 표정이 이런 시험이 종교에서 자연스러운 것이라 여기게 했고 그게 그 밤의 모든 감정들을 덮어버렸다. 두려웠고, 충격받았고, 무서웠고, 화가 났지만, 화를 내도 되는 일인지 몰랐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여기는 일이라면 화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허락받지 못한 감정들은 그렇게 나도 모른 채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해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TV에서 잘못된 일이라 보도하는 뉴스를 본 후에야, 해결되지 않고 묻혀 버린 그 밤의 감정들이 되살아났다.
다른 사람들에게 분노를 표출할 때는 객관적 잘못을 따지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감정을 인정하고 알아차리는 것에는 그 어떤 허락도 필요 없다는 걸, 십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 TV 뉴스를 보던 그 날 저녁에서야 알았다. 나는 이제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