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카 Sukha May 26. 2020

한 밤의 순교자 체험 _ 1

신천지 뉴스를 보고 기억 난 그 밤의 분노


저녁을 먹으며 TV를 멍하니 보고 있던 저녁이었다. TV에는 신천지 때문에 코로나 확진자가 엄청나게 늘어난 후로 자주 볼 수 있는 신천지의 행태 고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천지 신앙 캠프에서 일어나는 폭력 행위에 관한 내용이었다. 쪼그려 뛰기를 하며 강당을 도는 얼차려 장면에 이어 땅에 무덤을 파놓고 그 속에 들어가게 하는 장면이 나왔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중학교 3학년의 나는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길을 걷고 있었다. 유아 세례를 받긴 했지만 신앙심도 없고 성당도 명절에만 가던 내가 청소년 도보 성지순례를 가게 된 이유는 같이 가자는 친구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따라나섰는데, 땡볕 더위 속 침낭이 들어있는 배낭을 짊어지고 하루 종일 걷는 건 생각보다 지치고 험난한 일이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쉬라며 가끔씩 배낭을 들어주는 언니 오빠들과 성스러운 지역 성당의 분위기에 나는 성지순례도 한 번 정도는 해볼 만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뜻밖의 일이 벌어진 건 셋째 날 밤이었다. 자정이 넘어간 시각, 성당 선생님들은 야산의 초입에 우리들을 모아 놓고 탄압에도 신념을 지켰던 순교자들의 마음을 체험하고 신앙심을 기르기 위해 기획된 특별 프로그램을 진행할 거라고 말했다. 산을 오르며 계획된 시험들을 통과해야 하고, 각 조에서 시험을 못 견디고 포기하는 사람이 나올 경우 그 조는 신앙의 길에서 탈락하게 된다고 말했다. 의외의 일정에 당황할 새도 없이, 친구와 다른 조에 배정된 데다 자칫 내가 조를 탈락시키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어 손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천천히 한 조씩 출발하고, 어느새 우리 조 차례가 되었다. 해가 지고서도 한참 지난 후의 깜깜한 길을 나눠준 손전등으로 밝히며 산으로 들어갔다. 늑대인지 개인지 멀리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무서워하며 산을 오르는데, 오르막 끝자락에 학교 책상이 놓여있었다. 당황하는 우리 앞으로 성당 선생님이 나타나 책상 위에 한 명씩 뒤가 내리막을 향하도록 올라가라고 했다. 진정한 신앙의 길은 같은 신도를 믿는 것이기 때문에, 뒤로 뛰어내리는 자신을 조원들이 받아 줄거라 믿는지 보는 시험이라고 했다.


첫 번째 시험인데 벌써 못 하는 거냐며 윽박지르는 선생님에 조원들은 눈치를 보다 한 명씩 책상 위에 올라갔다. 그리고 어느새 내 차례가 다가왔다. 덜덜 떨리는 다리로 겨우 책상 위에 올라, 눈을 질끈 감고 뒤로 몸을 떨어뜨렸다. 다행히 조원들은 나를 잘 받아주었고 그렇게 우리 조는 첫 번째 시험을 통과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번째 시험이 연이어 시작됐다. 쪼그려 앉았다 일어나기를 선생님이 통과라고 외칠 때까지 반복해야 했다. 헉헉대며 몇 백 번을 하다가 힘들어 따라가기 벅찰 때면 선생님은 신앙심이 그거밖에 안되냐고 물었다. 그렇게 얼마나 얼차려를 했는지 가물가물 할 때쯤 선생님은 두 번째 시험을 통과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시험 이후 산을 한참을 올라 다다른 평지에는 커다란 십자가들이 세워져 있었다. 멀리서 봐도 내 키를 한참 넘는 큰 십자가에 웅성거리는 우리들에게 다른 선생님이 다가왔다. 선생님은 순교자들이 겪은 고통을 간접 체험해야 한다며 검은 액체가 든 종이컵을 나누어주었다. 사약이라며 죽음을 넘어선 순교자들을 존중한다면 마시라고 했다. 안 먹을 수 없는 분위기와 설마 진짜 사약이겠냐는 생각에 한 입에 털어 넣은 액체는 떫고 텁텁한 맛이 났다. 별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으로 통과된 것이라면 두 번째 시험보다 낫다고 생각할 무렵, 내 생각을 비웃는 듯 선생님은 우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그곳에 기다란 나무 막대 두 개와 의자가 있었다. 순교자들이 당했던 고문 중 하나인 주리 틀기가 진짜 세 번째 시험이었다. 떨면서 나는 의자에 앉았고 선생님 두 명이 막대를 내 정강이 사이에 끼우고 비틀었다. 다리를 비틀며 이래도 하느님을 계속 믿을 거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뒤에서 바라보고 있는 조원들 때문에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여기서 아니라고 대답하면 깜깜한 밤에 혼자 산을 내려가야 하는 건 아닐지 걱정도 됐다.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건지 조원들은 아픔에 소리 지르면서도 주리 틀기를 견뎠고 우리 조는 세 번째 시험을 통과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평지에 세워져 있던 커다란 십자가를 가리키며 이제부터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8명이 함께 머리 위로 십자가를 들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 "한 밤의 순교자 체험 _ 2"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sukhalife/14




매거진의 이전글 한 밤의 순교자 체험 _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