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1년도 아니고 반년도 아니고 소회를 돌아보기에는 애매한 기간이지만, 5개월간 꾸준히 한 주에 한 글씩 발행했으니(중간에 입원과 이사로 한 달 여를 쉬었을 때를 빼고), 뿌듯한 마음이 들어 '글쓰기'에 대한 글을 써보고자 한다.
내가 브런치에 계정을 만들었던 때는 브런치가 생긴 지 얼마 안 된 무렵이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다음카카오에서 글을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이 생겼다는 말을 보고 계정을 만들었다. 그런데 웬걸, 계정을 만들어 놓고 보니 글을 발행하기 위해서는 작가 신청을 해야 한다는 게 아닌가. 심지어 브런치에서 승인을 받아야 작가가 될 수 있었다. 브런치 특유의 이 선별 시스템에 나는 기가 죽어 '아, 지금은 준비가 안 된 것 같은데... 나중에 글 잘 쓰게 되면 신청해야지.' 하고 브런치 창을 껐다. 그 후 한 한 달 간은 써볼까 말까 고민했던 것 같고, 그 후에는 그마저도 없어져 작년 브런치라는 말을 다시 들었을 때 순간 기억조차 못하고 "그게 뭐야?"라고 대답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 브런치 계정을 만들고 브런치란 존재를 잊는 그 몇 년 동안 글쓰기를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사실 글쓰기는 어렸을 때부터 내게 특별한 행위였다. 언제부터였을까? 글쓰기가 특별하진 건. 초등학교 3학년 때 썼던 시가 선생님의 칭찬을 받고 학급 게시판에 걸리게 되었을 때부터인가? 등수나 경쟁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내가 친구와 같이 나간 백일장에서 나만 떨어졌던 순간은 잊지 못하고 아쉬워하던 무렵이었나. 뚜렷이 짚을 수 없는 어느 순간부터 나는 늘 글에 대한 열망을 마음속에 갖고 있었다. 대학에 원서를 쓸 때 내 성적에 갈 수 있었던 여러 과들 중 별 망설임 없이 국어국문학과를 골랐던 것도, 그렇게 진학한 국어국문학과에서 소설창작론, 시 창작론, 비평론 등 온갖 창작론 수업은 꼬박꼬박 수강한 것도 다 그런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어느새 나는 '언젠가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차마 소리 내어 남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아직 내가 너무 부족하고 준비되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에. 그래서 늘 '좀 더 내가 글을 잘 쓰게 되면 시작해야지.', '공부 좀 하고 아는 게 많아지면 글을 써야지.', '지금은 너무 바쁘니까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해야겠다.' 등등을 중얼거리며 글쓰기를 미루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보니 어느새 내게 글쓰기는 마음의 짐이 되어있었다. 언젠가는 해야 하는 것을 알지만 할 엄두가 안나 미루기만 하다 이제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숙제 같은 짐이.
그리고 올해 초, 나는 그 숙제를 다시 들춰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한없이 미루며 생긴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려서, 지금 시도하지 않는다면 이제는 평생 도전하지 못하게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후, 난 딱 세 가지를 다짐했다.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일단 쓰자.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한 글을 쓰자.
꾸준히 쓰자.
이 글의 가제는 '글 쓰는 용기'였다. 글쓰기에는 나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세 가지 다짐은 모두 '언젠가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생각을 '지금 글 쓰는 사람'이라는 현재의 상태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일단 쓰자.'는 첫 번째 다짐은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준비가 아직 덜 됐다는 변명의 원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못쓴 글이라도 쓰지 않은 글보다는 낫다고 계속 되뇌었다.'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한 글을 쓰자.' 이 또한 글을 쓰지 않을 변명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글을 쓰기 위해서 하루, 이틀, 일주일 씩 공부를 해야 한다면 글 쓰는 게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고, 언제나처럼 금세 포기하게 될 것 같았다. 에세이를 쓰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나에 대한 글, 내 일상에 관한 글이라면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되니까, 계속해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예기치 못한 감정을 느낄 때면 나 자신을 관찰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내 성격도 에세이에 잘 맞을거라 생각했다. '꾸준히 쓰자.' 아무리 부족한 글이라도 꾸준히 쓴다면 점점 나아질 거라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이 숙제 같은 글쓰기가 부담스럽지 않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나는 브런치 작가 신청에 필요한 딱 세 개의 글을 쓰고, 작가 신청을 눌렀다.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이틀여의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다행히도 한 번에 작가 승인을 받았다. 작가님의 소중한 글을기대하겠다는 브런치의 문구에 가슴이 설레었다.
그렇게 올해 5월 13일 "꽃이 되는 순간"이라는 글을 처음 올렸고, 좋아요 알림에 신이 나 다음날 올렸던 "차 한 잔의 의무"라는 글을 빼면 꼬박꼬박 일주일에 하나의 글을 발행했다. 아무리 더 올릴 글이 있어도 일주일에 하나씩, 정해진 요일마다 업로드하겠다는 나만의 원칙을 지켰다. 이 역시 '꾸준히 쓰자'는 내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쓰인 글들은 벌써 18개가 모였고, 나의 글을 꾸준히 읽어주시는 소중한 구독자분들도 15명이 되었다. 순간순간 무슨 글을 쓸지 글감을 생각하는 것도, 노트북 앞에 앉아 커피와 차를 잔뜩 마시며 글을 쓰는 것도 익숙해졌다. 더 이상 글쓰기는 숙제 같은 마음의 짐이 아닌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오는 일상이 되어 있었다.
브런치를 잊고 있던 그 몇 년 동안 사실은 가끔 블로그에 글을 썼었다. 하지만 늘 몇 번 쓰다가 관두기 마련이었고 그렇게 관둔 내 글들은 어느새 흑역사가 되어 나만 볼 수 있는 비공개로만 남아있다. 나는 더 이상 같은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부족한 글이라도 꾸준히 써서, 가끔 생각날 때 보는 나 혼자만 보는 비공개 글이 아닌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글쓰기에 대한 내 열망을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18개를 넘어 더 많은 글이 쌓여서 15명 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글 쓰는 사람이고자 한다.
수카: 사실 에세이를 읽을 때면 가끔 볼 수 있는 작가의 말, 그 짧은 한 문장을 에세이보다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도 이번 글부터 아무도 물어보지도 않았고 (아마) 궁금하지도 않으실 TMI들을 써보려 합니다. 오늘의 한 마디는 역시,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가 되겠네요. 정말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