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처 없이 걸어도 서방정토에 닿을까 04
우리가 간신히 떨쳐낸 현재가 돌아온 현재의 과거이기만 할까 찰나에 불과한 순간을 채우지도 못하는 시간은 대(大)과거가 그리던 미래다
발언권을 박탈당한 과거는 그 자체로 어떤 변명도 못 하고 눅눅하게 압착된다 질척하고 싱싱한 물살에 어긋나고 다져지고 깊은 지하에 파묻힌다 발에 채는 돌멩이와 밟히는 암석이 그러했듯 현재의 우리는
검게 그을린 과거를 꺼내 온통 태워버리면서 춤을 춘다 이것이야말로 문명의 이기입니다 죽은 자와 죽어가는 자의 뼈를 발라내 세운 발전의 숭고함을 찬양하며
우리가 간신히 떨쳐낸 현재는 오직 돌아온 현재의 과거로 남아 입 벌린 미라로 발굴되어 실어증을 앓다가 화상을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