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부터 책을 읽으며 느끼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책은 나에게 아버지의 술주정, 폭력에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은신처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다락방에 올라가서 《소공녀》를 읽으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래에서 들리는 아빠의 고함 소리도, 그 순간만큼은 이겨낼 수 있었다.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도 틈만 나면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책 냄새에 홀리듯 높은 책장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무모한 자신감으로 대학교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였다.
취재와 새벽 시간에 기사를 작성하는 일에 피가 마르기도 했지만 그때는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고 느끼던 시기였다.
대학 졸업 후 직장인으로 살면서 글을 쓰는 일에 완전히 손을 놓았다.
내 꿈은 기자나 글 쓰는 작가였지만 현실에선 실현하기 요원해 보였다.
퇴근 후 집에 오면 또 다른 지친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독립을 할 생각이었지만 상황에 떠밀려 결혼을 선택했다.
결혼 전에 뵌 시아버지는 인자해 보이셨다. 나는 내심 기대했다. 친정아버지에게 받은 상처와 눈물을 시아버지에게서 사랑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 기대도 처참히 깨졌다. 도망가다시피
한 결혼 생활에는 더 큰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삶에 지쳐갈수록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은 커졌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회피하였다. 재능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그래도 책이 좋아서 2년여 정도 독서 논술 지도를 하였다. 수업 준비를 하느라 잠잘 시간이 많이 부족하였지만 보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첫째 아이의 홈스쿨을 시작으로 그마저도 접게 되었다.
그 후로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면서 내 안의 소리에 집중했다. "그동안 많이 참고 살았으니 이제 네가 원하는 일을 해"라는 울림
아마도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실행은 빨랐다.
행동하지 않았으면 아직도 무기력하고 몸의 통증으로 씨름하고 있었을 것이다.
글감과 초고와 퇴고를 반복하고 있는 이 순간이 꿈만 같다.
이상하게도 글을 쓰면 곳곳에 돌아다니는 몸의 통증이 잦아드는 것 같다. 잠깐이라도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다시금 날카로운 통증으로 괴롭지만 말이다
적어도 글을 쓰는 동안에는 통증을 잊어버린다.
써지지 않는 불안감을 갖고 왜 글을 쓰는 일을 놓지 못하는지, 선명한 이유를 모르겠다.
다만 써야만 나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