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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khwan Heo Jul 12. 2016

#14. 그리고 터닝 포인트

Aussie

호주인을 부르는 말, 뉴질랜드 사람을 키위라고 하고 미국인을 양키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


어쨌든 그렇게 나의 Aussie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시드니 공항에서 숙소로 넘어오는 도중에 하버브리지 아래에서 먹었던 Aussie 버거는 내 인생 버거가 되었고,


이곳에서 처음 숏 보드를 시작하였고,


브라질 친구들과 함께 했던 미친 11ft 의 파도도 타 보았고,


Deewhy의 멋진 포인트 브레이크도 볼 수 있었고,


Curl Curl에서 마주친 여자 월드 챔프도 만날 수 있었고,


꿈에 그리던, 골드코스트 "서퍼스 파라다이스" 로 서핑 트립 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명한 사우스 스트라디 브록 아일랜드에서 "No taxi"도 볼 수 있었고,


그리고 여자친구, 지금은 사랑하는 나의 부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곤, 천성에 안 맞는 공부를 이때 제일 재미있게 했던 거 같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 예기들을 하나하나 쓰자면 아마도 끝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호주에서의 이야기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그냥 이때부터 지금까지의 내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써보려 한다.




Surfing=Life


호주에서의 기본적인 생활은 아침 일찍 일어나 파도가 있는 날은

1시간 정도 서핑을 하고, 학교를 갔다.

아주 가끔 점심시간에도 서핑을 했고,

학교가 마치면 해가질 때까지 서핑을 했다.

그러곤 집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숙제와 필요한 일들을 하고 일찍 잠이 들었다.

그렇게 주중에는 서핑과 학교 생활만이 내 대부분의 일과였고,

주말은 거의 풀타임으로 바다에서 생활을 했다.

어차피 집에서 해변까지 걸어서 1-2분 거리였기에 가능한 생활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내 귀가 트이고, 입이 트일 때쯤  사람들의 생활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핑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


부동산을 하는 사람

피자 배달부

베이커리에 일하는 친구

그냥 학생

글라스 블로워

은퇴한 회사 고위간부

자기 사업을 정리하고 여행을 하며 떠돌아다니는 사람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조금 부럽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난 저렇게 하지는 말아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한 번씩 내 모습을 뒤돌아 봤다.

난 뭘 하고 있지? 난 앞으로 뭘 할 거지?

진짜 서핑 쪽으로 목숨을 걸 거야??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꽉 채웠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고민으로 밤을 하얗게 세운적도 꽤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계속 시간은 흘러갔고, 큰 변화 없이 내 호주에서의 생활은 서서히 마무리되었다.

IELST시험도 꽤 높은 점수를 받고, LCCI 비즈니스 코스도 LV2 까지 가고.

마지막으로 발리로의 또 다른 트립을 떠나고, 난 호주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돌아온 한국.

한국에서의 생활은 이제까지 꿈꿨던 내 모든 상상을 여지없이 깨 부셔 주었다.

적어도 이때까진 서핑으로 무언가를 이루어 보고 싶었던 거 같다.

하지만

아직은 서핑 인구가 너무 적었다.

아직도 미개한 서핑 시장에 사업성은 전혀 보이지 않고,

누군가 과감하게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난 서울로 올라와 서핑 관련 쇼핑몰을 만들어 볼까 생각했다. 그렇게 실제로 움직여 보았지만,

상황은 녹녹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생각을 접었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작은 옷가게를 시작했다.

그 옷가게에서 시작해 이일 저 일을 거쳐 지금의 안티도트와 고사우스를 함께 이끌어 갔고,

몇몇 회사들로 옮겨 다니다가 지금은 간다서프와 시골에서의 생활을 하고 있다.


분명 서핑을 좋아하고 즐기고는 있지만,

나에게는 나만의 무언가가 있었고,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를 찾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각 직장들을 통해서 브랜드를 알리고 마케팅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일들도 해 봤고,

스노우보드 쪽도 일하고

인터넷 관련된 일도 이것저것 해보고,

사람도 가르쳐보고

......


서핑으로 무언가를 이룬다는 건 나에겐 너무 버거운 일이었거나,

너무 빨리 시작해 버렸던 거 같다.

그래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이거든지 저거든지 닥치는 대로 해 봤던 거 같다.

그렇게 나의 20-30대 시절은 지나갔고, 지금은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슬슬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지금은

간다서프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디자인과 간단한 홍보일을 하고 있다.

아니 간다서프의 전반적인 업무를 전부 다 하고 있으니 1인 기업이라고 해 두자.

쉽지 않은 시장이지만,

9년째 유지를 해 오다 보니 아주 가끔 나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다.


또, 최근에는 유기농으로 농사를 배우고 있다.

오디 뽕을 키우고 있는데, 의외로 힘은 들지만 보람은 있는 일이다.

올해 유난히 힘든 일이 많아 앞으로 어디서 뽕나무 심어라 하시면, 진짜 잘 심어 잘 키울 자신이 있다.


목공과 도자기를 시작했다.

목공은 집에 필요한 물건과 가구들을 만들기 위해서 시작했는데 의외로 성취감도 높고 작지만 돈도 벌 수 있다.

도자기는 어쩌면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의 정점이 아닌가 싶다.

대학교를 지원할 당시 난 미대에 무척 가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뭔가 만드는 일에 흥미가 많았고,

실제로 프라모델과 과학상자 조립 등에 꽤나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 후 가정 형편상 미술은 접어야 했고,

대학교도 형편에 맞춰 당시 유행하던 경영정보학과에 가야만 했다.

이 시기의 나는 너무나 무료했고, 정말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싶은 순간이 많았다.

언젠가는 미술을,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다시 시작해야지 하고 항상 생각해 왔었는데,

이제야 그 꿈을 슬슬 이뤄 가고 있는 듯하다.


얘기가 길게 돌아왔지만, 난 서핑을 시작하면서, 서핑을 계속하기 위해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고,

비록 실패도 많고, 고생도 꽤 했지만, 지금은 내 손이 움직이고 땀을 흘려 뭔가 만들어내는 일.

정말 하고 싶었던 일들이 내 천직이 아닌가 생각되어 좀 더 그쪽 방향으로 열심히 움직여 보고 있다.

아직은 미약한 시작이지만, 지금까지 쌓아왔던 간다서프의 값어치와

더욱 발전된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작업들을 주변 사람들과 접목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 일과 더불어 더 많은 작업을 할 수 있게 조용한 곳에서 공방을 만들어,

진짜 서퍼들에게 필요한 실용적인 물건들이나, 지인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어떻게 글을 쭉 써 내려가다 보니 이번에는 내 인생을 뒤돌아보는 이야기와, 앞으로의 다짐을 써 놓게 되었다.

 두서없이 막 써 내려간 점 이해해 주시길 바라며,

앞으로 나의 길에 작은 응원의 박수 세 번만 쳐주시길 바란다.

간다서프의 초창기 로고가 들어간 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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