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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khwan Heo May 09. 2016

#05.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나에게 2001년의 여름은 가장 조용했었고 가장 화려 했었다.


드디어 내 보드를 가진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송정으로 갔다. 

아침이면 눈뜨기 무섭게 송정행 버스에 몸을 실었고, 

끼니도 거른 체 해가질 때까지 바다에서 나올 생각이 없었다.

파도의 높낮이에 상관없이 단순히 내 얼굴을 스치는 짠 내음만 느껴도 

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듯한 기분이 들었다. 

온몸은 근육통으로 힘들어하고 있었지만, 

이런 기분 때문일까? 

하루하루가 너무 즐겁고 행복한 나날들 이었다.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매번 넘어지고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뭐하는 놈일까? 

하고 손가락질도 하고, 비웃기도 했지만

우리가 가진 공간 안에서 최고의 순간을 만끽하고 있는 나에겐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때 즈음일까? 

서퍼스 파라다이스뿐 아니라 서프 코리아(서프 웹코리아)라는 카페가 생겼었고, 

거의 중복되긴 했지만, 두 카페에 회원수가 꽤나 늘 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드문드문 사람들에게 문의가 있었고, 의외로 서핑을 즐기고 있거나,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종종 우리는 바다에서 만날 수 있었고, 결

국 우린 그때 당시 유행하던 벙개나 정모까지 가질 수 있을 정도의 규모로 성장 해 가고 있었다.


멀리 서울에서 찾아오는 형님들 동생들과 낮에는 바다에서 파도를 부딪히며, 

밤에는 술잔을 기울이며 바다와 서핑 이야기를 하느라 날을 꼬박 새우기 일쑤였다.

그래도 다시 해가뜨면 바다로 향하고 있었고, 파도위에 미끄리지며 그렇게 나의 첫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1992년 기타노 타케시 감독.  

어쩌면 나의, 우리의 시작과도 많이 닮아있는 영화라 마음에 들었다.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주인공이 우연히 서핑을 시작하게 되고 이를 통해 주변 사람들과 그의 인생이 변하게 된다. 차분하고 정적인 영상이 지속되고 엔딩의 슬픔이 전형적인 일본 영화의 한 흐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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