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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khwan Heo May 16. 2016

#06. 2001.09.11

First Impact pt.1

그 해의 여름은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다.


항상 반복되는 일상에 약간의 슬럼프

난 수프에서 미끄러지고 대각선으로 좀 갈 수 있는 정도였다. 

어떻게 하면 옆으로, 멋지게 파도를 탈 수 있을까? 

항상 고민이었다. 

더군다나 리쉬는 이미 망가져서 청테이프로 둘둘 감아서 타고 있었고, 

심지어 누구는 아예 리쉬가 끊어져 나일론 빨랫줄로 리쉬를 대신해 발목에 

항상 붉은 멍자국이 남아있었다. 

왁스는 이미 시커멓게 변해 제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고, 

그나마 Ricky 형이 보내준 몇 개의 왁스를 아껴가며 

덧방에 덧방을 칠해가며 그렇게 서퍼로서의 삶을 연명 해 가고 있었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때는 단 하나의 서프 샵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나마 SJSC가 보드는 있었지만, 나머지 필수 장비는 꿈도 못 꾸는 시기였다. 

그나마 카페를 통해서 외국에 거주하시는 분들을 통해 몇몇의 장비를 부탁해 보기도 했었지만, 

그것 조차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었다.

지금이야 양양이다 부산이다 심지어 온라인으로 전국, 전 세계의 모든 필수장비를 구할 수 있지만,

그때는 환경이 열악 수준이 아니고, 최악 이었다.


가을이 오자 드디어 복학을 하게 되었고, 학생 신분으로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었다.

화려한 꽃무늬의 보드숏에 늘어진 나시티 (싱글렛), 쪼리(플립플랍)를 신고 학교를 다니니 

간혹 교수님 중 

"넌 학교를 오는 거냐 바캉스를 오는 거냐?"

라고 물으시는 분이 계셨다.


그래도 난 그런 내 모습이 좋았다. 언제든 바다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


.


뭔지 모를 원론 수업 시간이었다. 

그날 꽤 괜찮은 파도가 들어오고 있는 날이었는데, 

수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의실에 앉아있는 나는 

늦여름을 아쉬워하는 매미의 울음소리에 취해  졸려워하고 있었다.


그때 짧은 메시지가 왔다.


"일본 프로 서퍼들 송정에 왔다 감. 만나보길 바람"


서미희 대표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좀 전에 송정에 일본에서 온 프로 서퍼들이 다녀 갔다고 한다.

지금 해운대와 청사포 쪽을 돌아보고 있을 것이란다.


왠지 모르게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프로 서퍼라니!"


장현이와 그들을 쫓아가기로 하고, 곧 장현이가 학교에 도착했다고 한다.


"교수님 저 좀 나가보겠습니다."


"왜?"


"파도 타러 가야 해요!"


"미친놈"


그러고는 가방을 들고 뛰어나와 차에 올랐다.


"야, 일단 청사포로 빨리 가보자!"


풀 액셀을 밟아 달리는 차의 진동과 나의 심장박동수가 묘하게 동조되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학교에서 청사포 까지는 20-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고, 

우리는 청사포 어귀에서부터 두 눈을 크게 뜨고 서퍼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닷가에는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고, 우린 어쩌면 해운대로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차를 돌려 골목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당시의 청사포는 아직 개발의 손이 닿지 않은 작은 어촌 마을 이었고, 

좁은 골목을 겨우 차 두대가 왕복이 가능했다. 

그렇게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자주색 20인승 미니버스가 스쳐 지나갔고, 

거기에 시커먼, 딱 봐도 서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사람들이 우르르 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거다! 저거! 저 차야!"


스쳐 지나가는 1초 찰나의 순간에 우리가 찾는 사람들임을 직감한 우리는 

재빨리 차를 돌려 그들을 쫓았다.


그들을 쫓아 청사포 한쪽에서 먼발치에서 차에서 내리는 그들을 보았다.


검게 그을린 피부, 예사롭지 않게 파도를 바라보는 눈빛.

100% 리얼 서퍼였다. 

우리 같은 초짜가 아닌 진짜 서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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