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의 병명은 대장암이었다.
1차 병원 소견서에 cancer로 적혀 왔었다고 간호사가 말해주었다.
어머님은 영어를 모르셨기에 소견서 내용을 알 수는 없었지만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을 때 암 일 거라고 예상하고 계셨다고 했었다.
그리고 십여 년이 흘렀다.
"조직검사 결과 갑상선 유두암입니다."
교수님이 모니터를 내 앞으로 돌려주며 마우스로 영어 단어 몇 개를 드래그해주셨다..
'아니, 여기에 cancer가 어딨다는 거야~~'
머릿속이 cancer로 꽉 차 그다음에 어떤 말씀을 해주셨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술을 위한 검사를 해야 하니 오늘 오후에 일부 검사하고 내일 마저 검사하라는 말에 떠밀리듯이 병실을 나왔다.
'내가 암이라고?'
'내가 왜?'
'가족력도 없는데 내가 왜?'
수술 전 검사 접수를 하고 대기실 앞에 앉아 있는데 억울함이 울컥였다. 그리고 곧, 형언할 수 없는 많은 감정들이 몰아쳤다.
이런 내 감정과는 무관하게 나는 간호사의 지시에 이리저리 몸을 맡기며 수술 전 검사를 진행했다.
검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날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이제 정신을 차려야 했다. 당장 출근문제부터 해결해야 했었다.
팀장님께 전화를 해 이러이러하니 며칠 쉬어야겠다고 말씀드리고 병가 규정도 문의를 했다.
팀장님은 우선 몸부터 생각하라고 팀장님 지인 중에도 수술받고 금방 복귀하신 분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해 주셨다.
'이제 뭐 하지? 아니, 누구한테 얘기하지? 어떻게 얘기하지? 지금 내 얘기를 잘 들어줄 사람이 누굴까?'
절대, 가족이 1순위는 아니었다. 가족에게는 이 소식을 전하고 싶지 않았다.
한 달 전 암으로 가족을 잃었는데 내가 암이라고 말해줄 순 없었다. 그래서 병원 간 사실을 알고 있는 회사동료이자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 나 암 맞대~ 내가 아닐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암이 맞았어~"
집으로 걸어오며 지인과 수다 떨듯이 통화하니 흙탕물처럼 희뿌옇던 감정들이 점점 가라앉았다.
지인의 걱정을 되려 위로하며 스스로에게도 괜찮다고 세뇌시킨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 들어오니 다시 암 진단받았다는 현실이 머리를 강타하여 무기력함이 밀려왔다.
그렇지만 계속 무기력하게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무력함에 잠식되고 싶지 않았다.
'이 현실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그래, 정보수집이 먼저야, 네이버 카페에서 정보를 찾아봐야겠어!'
그날따라 가족의 귀가가 늦었다. 덕분에 나는 저녁도 잊은 채 밤이 늦도록 카페의 글들을 훑어보며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 정보들을 수집했다.
갑상선 유두암은 갑상선암 중 가장 흔한 암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발생한 갑상선암의 97% 이상을 차지하며 일반적으로 천천히 자라는 편이었다.
예후도 갑상선암 중 가장 좋은 편이었고 영문으로는 Papillary thyroid carcinoma로 표기되었다.
그랬다, 갑상선 유두암은 cancer라는 단어로 표기되지 않았던 것이었기에 교수님이 보여주시던 모니터에서 나는 cancer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정보 수집을 하느냐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남은 검사를 하러 병원에 갔었다.
갑상선 카페에서 수집한 정보들 덕에 어제보다 좀 더 이성적인 마음으로 검사에 임했다.
간호사가 손목에서 혈관을 제대로 못 찾아 오금에 또 바늘을 찔러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차피 해야 하는 거니 얼른 해치우고 싶었다.
그러다 PET-CT검사 앞에서 다시 감정이 밀려왔다.
암환자에게 최신 기계인 PET-CT로 암 진단의 정밀성을 높인다는 현수막을, 시어머니가 다니시던 병원에서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땐 그 PET-CT검사를 내가 받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