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 _윈터 레드

패션 드로잉 다이어리

by 서숙희

타인의 취향 04_윈터 레드





얼마 전 pcr 검사받으러 동네 병원을 방문하던 길에

독특한 옷차림의 할머니? 할줌마? 한 분을 만났었다.

이후 시간이 꽤나 흘렀지만 그분의 이미지가 제법 강렬해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그분은 요즘 유행한다는 트레이닝 룩 셋업을 입고 계셨는데

벨벳 느낌의 윤기나는 옷감에 색상은 빨간색, 군데군데

반짝임 장식이 더해져 멀리서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맨발에 신은 까만색 슬리퍼에도, 머리까지 뒤집어쓴 조깅 점퍼

모자에도 달려있는 반짝반짝 반짝이 장식.

그런 반짝임은 모자 아래께로부터 이마 위로 흘러내린 흰머리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조거 팬츠 주머니에 무심히 찔러 넣은 손, 바닥 어느 한 곳을

응시한 시크한 눈빛으로 평범한 동네 아스팔트 길을

런웨이로 만들던 할줌마.

요즘 시니어 패션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드는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유튜브에서도 동네 마트며 은행 앞에서도 눈에 띄게 패셔너블한

시니어 선배님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치곤 하는 요즘이다.

이제 곧 시니어 세대로 본격 진입하게 될 내겐

무척이나 흥미로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아직 룩에 대한 철학 같은 걸 가지지 못한 나.

지금이야말로 나만을 패션 철학을 세울 절호의 기회는 아닐까.

앞선 시니어 선배들의 당찬 패션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는

묘한 절박함과 동경심 비슷한 무엇이 섞여 들었는지 몰랐다.

그래!

패션 뭐 있나.

내가 좋아하는 것 입으면 되지… 하다가도

하지만 소심한 난 저렇게 주목받음 되게 불편할 텐데…

하며 금세 꼬리를 내리고 마는 것.

겨울이면 유난히 빨간색이 끌리는 건 크리스마스 때문일까.

빨강과 초록만큼 12월을 잘 표현해 줄 컬러도 없는 것 같다.

빨강을 입으면 뭔가 마음 깊은 곳에서 불끈 이상한 자신감이

생겨나던걸 20대 언젠가 느꼈던 기억.

그래서 난 종종 빨강 옷을 골라 입곤 했다.

쿨톤이라 빨강이 그다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요즘도 난 종종 빨강이 입고 싶어지는데

꽁꽁 얼어붙은 날 조금 데워줄 에너지가 내겐 필요한 건지도.

그날 만난 패셔니스타 할줌마도 그런 의미에서

강렬한 빨강이 필요했던 걸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빨간색을 좋아하게 된다는 말의 의미에도

나이 들어갈수록 사그라드는 내면의 불꽃을 외부에서 채우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나의 노년엔 얼마큼 더 많이 윈터 레드가 필요할까.

조금 궁금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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