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하늘은 가을비가 흩뿌리고 있다. 정말 가을이 오려나 보다. 며칠 낮동안 그렇게도 뜨겁고 밤이면 잠 못 이루던 날들이었지만, 한 줄기 내리는 가을비에 더위는 그만 꼬리를 감춘다. 지금도 한낮은 아직도 여름인양 더위가 남아있지만 가을은 서서히 오고 있다. 비가 내리니 한결 시원하다. 이제는 정말 가을맞이를 해야 할 듯하다.
오늘 역시 할 일이 가득이다. 학교 도서관에 갔다가 집 근처 전북은행에서 새로 마련한 JB 문화 공간에서 시인의 문학 강연이 있는 날이다. 시간을 맞추어야 해서 서둘렀다. 나는 마음만 내면 되고 나를 이동해 주는 것은 남편의 차다. 참 편리하다. 만약에 남편이 안 계시면 나는 아무 일도 못 할 것 같은 생각에 곁에 있는 남편 옆모습을 바라본다. 그저 곁에서 버팀목이 되어 주는 남편, 오늘도 고맙다.
비 맞은 우산을 털고 들어간 강연장은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이 빗속을 뚫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 시를 좋아하는 문인들이 모였다. 시간을 딱 맞추어 들어가니 언제나 짝이 되어 주시는 재복 시인님이 자리를 잡아 놓고 기다리신다. 어느 곳을 가든 곁에 마음 함께 해 주시는 분이 있어 참 고맙고 따뜻하다. 어느 결에 의자와 팸플릿까지 몫 지어 놓은 내 자리가 마련해 놓았다.
복효근 시인님의 강연이 먼저 시작되었다. 시를 읽으며 마음 안에서만 보았던 시인을 직접 대면하니 친근하다. 복효근 시인은 "시란 생명가치를 드러내는 한 방식"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시면서 아주 소박한 시를 읊어 주신다. 산 딸기. 시를 쓴다는 것은 모든 사물에 대한 감각을 열어놓고 다른 시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산딸기 강소천요, 정세문 곡
잎새뒤에 숨어 숨어 익은 산딸기
지나가던 나그네가 보았습니다
딸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갑니다
잎새 뒤에 몰래몰래 익은 산딸기
귀엽고도 탐스러운 그 산딸기를
차마 차마 못 따가고 그냥 갑니다
이 시는 산딸기라는 짧은 시지만 그 안에는 배려가 있다. 산새들, 풍경과 함께 할 때 보이는 아름다움, 산새들이 따 먹고 씨를 퍼트려 다시 싹을 틔워 번식을 하게 하는 일, 사람이 따 먹지 않고 남겨 놓은 산 딸기는 아름다운 풍경이 되기도 하고 산새들 먹이로 남겨 놓아 다시 살게 하는 배려다. 한 편의 시에 그처럼 배려가 숨어있다니 다시금 사물을 관심을 갖고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버팀목에 대하여 복효근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
그렇듯 얼마간 죽음에 빚진 채 삶은 싹이 트고 다시 잔뿌리를 내립니다
꽃을 피우고 꽃잎 몇 개 뿌려주기도 하지만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
큰바람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허위허위 길 가다가 만져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나는 싹 틔우고 꽃 피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버팀목을 타고 올라가는 오이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를 아니면 어떤 대상에게 기대고 버팀목을 삼고 살아간다. 어쩌면 버팀목이란 살면서 생명을 기대고 사는 구심점이다. 버팀목이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란 얼마나 허허롭고 쓸쓸할까, 그 생각에 마음이 아련해진다.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나의 버팀목을 부모였다가 어느 날부터는 친구가 되기도 했고 어느 날은 남편이 되었다가 어느 날은 자식이 되기도 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 버팀목도 달라지는 걸 알았다.
현대 사회는 사는 일이 너무 복잡해 누군가에게 버팀목으로 기대고 사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가 누군가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고 내가 나를 버티게 해 주는 단단한 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복효근 시인이 낭독해 주신 산 딸기 시와 시인님이 쓰신버팀목 시를 읽으며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본다.
나는 무엇으로 버팀목을 삼고 살아가고 있는지, 누구에게 버팀목으로 살고 있는지. 오늘 두 편의 시에 대한 강연을 든고 비 오는 날, 마음이 포근포근해 온다. 어느 노랫말 가사처럼 가을비 우산을 받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 나는 가을비 우산 속여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