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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Oct 31. 2023

가을은 가고

 계절이 지나며  하는 일들

우리가 살아가는 계절은 절기마다 숨어 있는 의미가 있다. 가을이 지나는 계절 가운데 상강은 절기상으로는 한로(寒露)와 입동(入冬) 사이에 있다. 절기는 양력으로는 10월 23일이나 24일 무렵이 되며, 음력으로는 9월 중에 들어 있음을 안

다. 말 그대로 서리가 내리는 시기를 뜻하는 절기다.


이 시기에는 낮에는 가을볕이 따사로운 쾌청한 날씨가 지속되지만 밤에는 기온이 심하게 내려가면서 첫얼음이 얼기도 한다. 상강 무렵이면 단풍이 절정에 이르고 가을 국화도 만개하는 시기가 바로 상강 무렵이다.


이런 날

유난히도 포실한 가을 햇살이 창을 넘어 들어온다. 가을걷이도 끝나가고 있는 지금, 한 해 농사로 수고했을 농부들의 마음도 잠시 헤아려 보며 국화차 한잔 하는 것이 여유롭다. 조금은 쓸쓸해 보이고 조금은 차가워 보이지만 가을에만 느끼는 소슬한 바람과 보송보송한 햇살을  나는 좋아한다. 


상강이 지나면서 주부들 마음은 바빠온다. 서서히 겨울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주부의 몫이다. 고구마를 캐고 줄기를 따서 가을의 포슬한 햇살에 말려 저장해 두는 것도 상강을 지나면서 하는 일이다. 가을 무는 인삼보다 효능이 좋다 하여 무 말랭이도 만들어 놓아 저장해 놓고 다람쥐가 가을이면 먹을 것을 저장해 놓듯 겨울이 오기 전 요것 저것 준비하는 과정을 즐긴다.


무청도 김장 때가 되면 질겨진다. 조금이라도 연하고 아삭한 무 김치를 이맘때 담가 놓는 것도 주부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 주는 일이다. 이렇게 몇십 년을 가족들의 먹거리를 챙기며 살아왔다. 매년 가을을 보내면서 절기에 따라 먹거리를 준비하고 사는 일이 나에게는 작은 행복의 조각들이다.


어제는 틈이 나서 시장엘 갔다. 싱싱한 무청이 달린 무가 한 다발에 만원도 아닌 8천 원, 싼 가격이다. 나는 무 두 단을 사가지고 와서 다듬어 나박나박 썰어 소금 간을 한다. 무청도 다듬어 간절이고 나머지 무청은 커다란 냄비에 물을 가득 부어 삶았다. 무청은 물렁하게 삶아 씻어 자잘하게 썰고 된장과 들깨가루를 넣어 주물 주물 하여 지퍼백에 소분해서 냉동고에 넣어 놓고 먹고 싶을 때 하나씩 꺼내여 된장국을 끓여 먹으며 고기 국보다 맛있다.


나이 든 세대는 예전 먹어왔던 입맛대로 길들여져 있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과는 다른 입맛이다. 나는 아직은 일이 하기 싫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음식 하는 것도 재미있고 살아가는 소소한 일들이 기쁨이다. 나이 팔십이 되어서야 진정으로 사람 사는 재미를 느끼지 않나 싶다. 이 나이에 열정이 식지 않고 하고 싶 일이 많아서 참 감사하다.


무 김치 담기는 의외로 쉽다. 절여 놓은 무청은 따로 절여 놓았다가 무와 함께 버무렸다. 두 단의 무가 양이 넉넉한 양이다. 담가놓은 무김치는 딸들 누구든지 가져다 먹으며 된다. 아직도 내가 만든 음식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무엇이든지 마음까지도, 나로 인하여 누구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냉동고에 저장해 놓은 시래기 된장국 아무라도 찾아오면 된장국에 무김치 한 접시 꺼내 놓고 생선 한 토막 구워 놓으면 따뜻한 밥상이 된다. 특별할 것도 없는 것들, 그것들이 나에게는 작은 행복이다. 나이 들어 달라지는 현상은 작은 일에 행복한 나를 발견하고 내가 나에게 놀란다.


젊어서 그 많던 욕망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나이 듦이 좋은 이유도 있나 보다. 이제는 아주 작은 일, 아주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도 충분히 감사하다. 사랑과 행복은 비처럼 내 마음 안에 쏟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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