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마감하며 생각하는 단상
12월 한 해를 보내면서 하고 있는 일들이 마감된다. 겨울은 한 달 동안 쉬면서 다음 해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한다. 무엇이, 내게 지금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일일까?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고민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잘 산다는 것은 늘 어렵고 , 어딘가엔 절절한 아픔이 있다. "사람은 아프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란 말처럼 시린 겨울을 견디며 또 새로운 봄이 올 것이다. 그렇게 희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 해야 한다.
며칠 동안 날씨는 봄처럼 포근하다. 12월 중순이면 눈보라가 치고 얼음이 얼어야 하는 기후인데 웬일인지 알 수가 없다. 봄이라면 바람이라도 불 텐데 바람조차 미동도 하지 않는다. 창문 밖 하늘은 회색구름이 잔뜩 깔리고 저녁인가 낮인가 구분이 안 간다. 눈은 오지 않고 봄비처럼 비만 보슬보슬 내리고 있다.
계절은 겨울이건만 봄비가 내리는 까닭은 무슨 영문인 모르겠다. 월요일은 항상 바쁜 요일이었다. 12월이 오면서 하고 있던 일들이 이 끝이 난다. 도서관 사서일도 며칠 전에 끝났고 오늘은 오전 오후 시 낭송 수업이 끝난다. 일 년 동안 종종걸음을 하면서 마음이 분주했다. 결석을 하지 않으려고 늘 긴장을 해야 했다.
알 수 없는 사람 마음
오늘 일이 끝나고 나니 마음 또한 홀가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허전하고 섭섭한 생각이 든다. 이 무슨 조화 속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나는 나를 위로해 본다. 한 해 동안 무탈하게 하고 싶은 일을 잘 해냈다. 참 수고했다. 80이란 나이의 무게를 등에 짊어지고 열심히 잘 살아냈다.
밤, 시 낭송 수업은 저녁 7시에 시작해서 밤 9시쯤 끝난다. 나는 오전, 오후 두 수업을 다 결석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참 열심히 살아왔다. 일과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와 약속을 한다. 못 지킬 것 같으면 시작을 하지 않는다.
결석을 하지 않는 것이 그 일에 대한 애정이다. 한두 번 결석을 하기 시작하면서 마음도 멀어진다. 그런 연유에서 되도록 결석을 하지 않는다. 물론 아주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지만.
시 낭송 수업은 늘 재미있었다.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종강 시간, 선생님은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주신다. '개근상'이다.
학교 다닐 때 받던 상을 시 낭송 수업을 하면서 받는다. 다시 학생으로 돌아온 듯 기쁘다. '김 종철' 시인의 시집. 시 낭송 공부를 하면서 시집에 관심이 많아진다. 80세 학생은 시집 한 권에 함빡 웃으며 더없이 기뻐한다. 혼자 놀 때도 시집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하다.
지금 이 나이에 무엇이 갖고 싶을까?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실은 아무것도 없다.
아프지 않은 몸,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경제력,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좋아하는 사람 그것이면 그저 만족한다. 어두운 밤 수업을 끝내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온다. 별빛이 없는 밤은 더욱 까맣다. 비 오는 밤은 쓸쓸함이 몸속으로 파고든다.
누군가 나를 기다려 준다는 것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오며 "여보 나 왔어." 하니, 남편은 언제나 그렇게 그 자리에 앉아서 나를 기다린다. 이런 날 남편이 불 켜놓고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나 마음이 따뜻한지, 남편이란 존재를 다시 생각한다.
나는 남편옆에 앉아 "여보 비 오는 쓸쓸한 밤 당신이 기다려 주어 너무 고맙고 감사해" 아낌없이 남편에게 따뜻한 말을 전한다. 이처럼 나를 기다려 주는 존재,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게 새삼 무척 감사하다. 그 덕에 평안하다. 행복하다.
노년의 삶이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사랑과 행복은 비처럼 내려오는 감정이 아닐까. 오늘도 내가 감사를 되뇌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