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마트에서 문자가 왔다. "배추 한 망 3 포기에 4800원 무 5개 한 다발 3500원" 김장이 거의 끝난 지금 남아있는 배추와 무를 떨이를 하려는 모양이다. 얼마나 싼가, 사고 싶지만 무거워 들고 오지 못하는 나는 남편눈치를 본다. 때때로 오지랖 넓은 마누라 때문에 남편조차 성가신 일이 많다.
남편은 우린 많이 먹지도 않은 김치를 자꾸 담아 누구를 주려고 그러냐고 할까 봐 핑계를 댔다. "김치 양념이 남아서요"
얼마 전 큰집 김장하는 날 갔을 때, 김치 버무리고 남은 양념이 남아 가지고 왔다. 배추 세 포기를 사다가 밤에 소금에 절였다. 찹쌀도 담갔다. 이런 일들을 하면서 내일 만날 분들을 생각한다. 다음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어른과 한 동안 소원했던 가까운 친구를 만나려 가는데 빈손으로 가는 게 섭섭해서 건네주려 한다.
코로나가 오면서 그랬고, 내가 공부하던 다도일을 멈추면서 만남이 줄었다. 그리움의 간극은 만남이 오래되고서야 느꼈다. 같이 했던 세월의 덮개는 내 마음 안에 웅크리고 앉아 그리움을 불러냈다. 오늘 만나기로 한 어른은 연세가 많으셔 언제 세상 떠날지도 모르는 상황, 나이 들어 가족이 없으면 언제 고독사를 할지 몰라 그 점이 제일 염려되었다.
가족도 모두 떠나보내고 홀로 살고 계시는 분이다. 오늘 만남을 하고서야 알았다. 염려하지 않아도 잘 살고 계신다는 것을. 다행히 요양 보호사가 거의 매일 오시어 도움을 받고 생활이 불편하지 않으시는다는 말씀에 새삼 우리나라 복지가 잘 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이 들면 섭섭했던 사람, 내가 주었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불편한 생각을 한들 나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기에 '내 탓이요'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마음의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노인의 삶 중에서 가장 으뜸이 마음이 편안한 것이다. 모든 분주한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아침 일어나서 바로 배추를 씻어 놓고 무는 깍둑 썰어 간하고 팥도 꺼내 삶고, 찹쌀은 씻어 찜 솥에다 넣어 밥을 짓는다. 마음부터 바쁘다. 아직은 일이 무섭지 않아 다행이다. 밥은 익어 가고 배추김치, 깍두기 담고 머리 감고 아침 한 나절이 정신없이 바쁘다. 잊지 않고 용돈도 챙겼다. 나이 든 어른이라 쓰시기 편하게 만 원권으로 은행에서 바꾸어 놓았다.
사람이 사람을 챙긴다는 것은 정성스러운 마음의 전달이다.
며칠째 겨울비가 오고 있다. 날씨가 흐리고 비 오는 날은 마음이 왠지 쓸쓸하다. 사람의 마음을 무엇으로 채우고 살 것인가, 늘 생각하는 주제다. 사람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온전한 사랑이다. 사랑을 위해 늘 갈망하면서 우리는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랑이 끝나고 이별을 마주하면 슬프고 아프고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하지만 나이 듦이란 고통도 우리 삶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찰나를 살고 있는 우리, 이별뒤에 후회보다는 살아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생각을 어느 날 부터하게 되었다.
혼자 걸음을 잘 걷지 못하는 어른은 지팡이를 짚으셔 남편차로 픽업해 식당까지 모시고 갔다. 오랜만에 만나는 어르신은 생각보다는 괜찮은 모습이다. 나이 90이 넘는 분이 지금도 멋쟁이 시다. 식당에 도착해 기다리는 친구도 반가워한다. 밥을 먹고 즐거웠던 지난 세월을 회상하고 나이 듦의 쓸쓸함을 이야기하신다.
나눔을 하기 위한 찰밥과 김치
젊어서 한때는 우리도 보람된 삶을 살기 위해 많이 애쓰고 살아왔지만 모두가 한때였다. 이제 노인은 노인답게 살아야 한다. 갈곳 아닌 곳도 가리고 말도 줄여야 하는 게 노년의 삶이다. 우리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건강과 노년의 삶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마무리한다.
친구가 밥도 사고 어른 용돈도 챙기고 고마운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 부부는 친구에게도 찰밥을 전하고 헤어졌다. 연말 이 되면서 마무리하고 싶었던 일을 친구의 제안으로 등에 메고 있던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아 너무 홀가분하고 마음 또한 가볍다. 친구 덕에 한해를 잘 마무리하게 되어 고맙다.
어르신은 댁까지 모시고 온 후 겉절이 김치 깍두기 찰밥 한 보따리를 차에서 내린다 제법 무거워 아파트 입구에 내려 드리고 호주머니에 슬쩍 용돈 봉투는 넣어들였다.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그만하면 됐다. 소중한 마음이 없었다면 그리움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을 사람들, 그분들과 한 해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