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부터 마음이 바빠온다. 금요일 강의받는 강의 실은 목소리 마저 활기가 넘친다. " 내일은 쉬는 날 일이라 좋으시죠"? 강사님들이 묻는다. 그 말에 모두가 함창을 하듯 대답을 한다. "네"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날마다 8시간씩 강의 듣는 일은 쉽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경험해 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직장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요일이 금요일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토요일, 일요일 쉴 수 있어 그럴 것이다.
강의받는 날은 무엇 보다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이 제일 힘든다. 날마다 아침이면 동당 거리면 일하러 가야 하는 직장인들은 얼마나 힘들까? 산다는 일은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새벽같이 일어나 사람 속에 밀리는 지하철에 몸을 맡기고 출근하는 사람들, 정말 고생이 많다. 하지만 그 고통은 살아 있기에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토요일, 직장인도 아닌데 나는 요즈음 토요일을 기다린다. 시간 맞추어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주말은 느긋하게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있어 그 자유로운 시간이 좋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왜 그렇게 빨리 가는지, 하루해가 너무 짧아 아쉽다. 딸들은 날마다 택배를 보내온다. 엄마 공부하는데 힘든다고 음식 택배를 보내 주고 있다. 세상사 모든 일은 당연 한건 없다. 자식이지만 부모 마음 헤아려 주니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토요일, 시어머님 기일이었다. 코로나가 오면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금지되어 몇 년 제사를 멈추었지만, 코로나가 풀린 지금 다시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양 명절을 빼고 다른 제사도 묶어 예전보다는 간결하게 지낸다. 오랫동안 제사를 지내 오던 큰집 형님은 몸이 아파서 요양원에 계신다. 큰집 형님이 안 계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큰댁 며느리는 혼자지만 막내 동서와 내가 음식 준비를 해서 다시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세상일 이란 영원할 수 없다. 그리고 그에 맞게 시간이 흐른다. 큰집 형님 없으면 집안일이 안 돌아갈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내가 만약 세상에서 사라져도 모든 세상 일을 그대로 흘러갈 것이다. 그게 사람 사는 삶의 질서인 것이다. 우리는 살아 있을 때 누리고 잠시 머물다 떠나는 소풍객이다.
내가 없어도 세상일을 잘 돌아간다. 그러니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자.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차도 마시고 시간을 보낸 다음 11가 다 되어 큰집엘 갔다. 다른 날 같으면 조카며느리 혼자 있을 텐데 큰집 딸들 4명이 모두 서울에서 내려와 있었다. " 웬일일까"? 깜짝 놀라 물어보니 엄마가 요양원 들어가신 뒤 한 달에 한 번씩 딸들이 서로 교대해서 엄마도 보고 아빠도 볼 겸 찾아온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흐뭇하다. '그래 그게 사람 사는 거지' 다른 때 오면 빈 집 같던 큰집이 모처럼 북적북적 사람 사는 집 같다.
마음 안에 사랑이 없으면 쉽게 실행할 수 없는 일이다. 요즈음은 각자 사는 게 바빠 부모 챙기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막내네 집 아들은 그 밤에 서울에서 아내와 함께 할머니 제사를 지내려고 찾아왔다. 매년 그런다. 시어머님이 키워준 정을 못 잊어서다. 그러기 쉽지 않은 일인데 참 기특하다. 제사하고 저녁 먹고 다시 서울로 올라간다.
남편 살아왔던 시댁 가풍이 화목이라서 그 점이 좋다. 부자는 아니지만 사람을 서로 귀하게 여기고 사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편이 따뜻해 온다. 다른 때 같으면 무침 전은 내 몫인데 딸들이 많아 나는 나물만 하고 부엌에는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나이 많아지니 달라지는 역할도 있다.
큰집 마당에서 보아도 보이는 요양원에 큰 집형님이 누워계신다. 우리 부부와 동서네 부부는 형님 누워 계시는 요양원을 찾았다. 언제나 24시간 누워만 계시니 얼마나 답답할까? 사람은 아직 다 알아보시는데 기억력이 떨어져 누구 생일인지, 제사인지 기억을 못 하신다. 아프지 않을 때는 집안들 제사까지 기억하던 분인데 몸이 아프니 이처럼 달라졌다. 아프지 않은 사람도 24시간 누워 만 있으면 환자가 될 것이다.
손잡아 주고 이야기하고 뒤돌아 나오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다. 사람의 일생, 아니 여자의 일생이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살아왔지만 나이 들고 늙으면 병상에 누워 있다가 세상과 하직하게 되니 얼마나 허망한가. 지금의 현대인들은 다르겠지만 예전 우리 시대 여자들을 거의 가정 안에서 가족을 위해 희생하다가 생을 마친다. 마음으로 안타깝지만 어찌할 수 없어 바라만 보고 있다.
산다는 것은 늘 고통이 수반한다. 가족을 위해 온몸으로 생을 사셨던 시어머님, 기일은 우리가 살아있는 한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며 추억하며 기릴 것이다. 남편의 어머님 소중한 분 이기에...... 토요일 이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