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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Dec 15. 2020

"할머니 나 한글 쓸 줄 알아요"

뉴욕에 살고 있는 손녀가 한글을 배운다고 한다

"따르릉" 휴대폰 전화 벨소리가 들린다. 화면을 켜고 보니 뉴욕에 살고 있는 딸과 손녀다.

" 카일리~~ How are you,  nice meet you" 맨날 딸에게서 전화만 오면 맨 먼저 하는 소리다. 그다음은 말이 막힌다. 또 한마디 " what are you doing?"  그 말은 쉽게 나온다.

" 엄마, 카일리가 엄마에게 보여 줄 게 있다고 전화하라고 해서." " 왜? 무슨 일인데?" 하고 물어보았다.


 휴대폰에 올라온 사진을 보니 한글로 쓴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카 타 파 하'가 쓰여있다. 그 밑에는 감사해요 사랑해 라고 한글이 쓰여있다.

그러고 나서 또 한 번 쓰는 걸 보여준다. 금방 잘 써내려 간다.


                                                           손녀딸이 써준 한글

                                              

"엄마 카일리가 저녁도 안 먹고 엄마에게 보여 주려고 썼어,  아까  한글을 알려 달라고 해서 알려 주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뭉클하다. "아니 금방 그렇게 쓴단 말이야"  깜짝 놀랐다. 그 말을 듣고서. 얼마나 보여 주고 싶었을까. 저녁밥도 안 먹고서. " 니콜라스는 어디 갔니?" 손자도 화면으로 보여준다. 손녀만 부르면 편애한다 할까 봐 나는 두 아이 이름을 꼭 차례로 부른다. 나중에는 사위 이름까지, 모두가 외롭지 않게.


화면에 보이는 손자는 " how are you! l love you. 말하고 화면 속에서 도망을 치고 만다. 한글은 어려워 못쓴다고 엄마에게 손사례를 치면서, 손녀 하고는 성향이 아주 다르다. 느긋하고 여유롭고, 손녀는 부지런하고 도전정신이 뛰어나다. 한 뱃속에서 함께 나왔는데 달라도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코로나 19로 길어진 집콕 생활이 아이들에게 더 성숙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시간들이 주어 지는 듯하다. 코로나 19가 아니었다면 학교생활로 또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여행을 다니며, 밖에 나가서 보내는 시간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집에서 조용히 많은 시간들을 보내면서  자기 삶을 고요히  들여다보며 삶의 근원에 대한 생각들은 또 다른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이들이 바쁠 때는 우리를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더욱이 한글을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집에만 오랫동안 갇혀 지내는 시간은 아이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응원해 주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립고 엄마나라의 말인 한글도 배우려 노력을 한다. 얼마 전부터 손녀는 한국말과 한글에 관심을 가지고 한글을 쓰고 우리에게 더듬더듬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어떠면 코로나 19가 가져다준 효과가 아닌가 싶다. 사람 사는 일은 반듯이 어둠이 있으면 밝음이 있다. 어떠한 어둠 속에서 밝음 찾아내는 것도 현명한 삶의 자세라고 본다. 이 어두운 터널을 내가 어떠한 자세로 뚫고 나가야 하나 나는 날마다 생각한다. 나는 날마다 루틴을 정해 놓고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 한다.


나에게는 손자가 4명 손녀가 1명 있다. 그중에 딸인 손녀가 지금 한글을 쓴 10살 된 아이다. 큰 딸이 이태리 사람인 사위와 결혼하고 마흔이 넘어 시험관으로 낳은 이란성쌍둥이다. 그런데 손녀는 감성이 남자아이들과는 전혀 다르다. 누구도 가지지 못하는 섬세하고 따뜻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 손녀가 하나라도 있어 다행이고 감사하다.


지난번 전화 왔을 때 딸은 이렇게 말했다. " 카일리가 슬프다고 했어, 할아버지 할머니하고 전화를 하면 잘 못 알아들으니까, 카일리는 자기가 한국말을 배워야 할까 보다고 말하던데,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이 드셔 영어 배우기 힘드시니까."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울컥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제 열 살 짤 리 애가 어쩌면 상대를 배려하는 깊은 마음을 가졌을까 놀랍고 고마웠다.


뉴욕에 살고 있는 딸네 아이들은 코로나로 학교도 갈 수 없고 친구 하고도 놀 수가  없다. 지난 일 년 가까이  많은 날을 집에서만 보내는 시간은 무료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누구 하나 찾아갈 친척이나 가족도 없고, 아~ 참 있어도 만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만날 사람이 곁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올 1월부터 발발한 코로나 19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딸네 가족은 자주 다니던 여행도 다니지 못하고 딸도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아이들도 집에만 머문다고 한다. 멀고 먼 낯선 곳 뉴욕에 살고 있는 딸네 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린다. 언제나 코로나라는 감염병에서 해방되어 일상적인 생활을 할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외로움의 연속인 듯하다. 많은 사람들 속에 사는 듯 하지만 결국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고 사는 것은 한정된 적은 숫자이다. 손녀딸은 얼마나 자랑하고 싶고 말하고 싶었을까, 인간의 욕구는 5단계가 있다고 미국의 심리학자 매스 로우는 말했다.


'첫째 생리적 욕구 둘째 안전의 욕구 셋째 소속과 사랑의 욕구 넷째 존중의 욕구 다섯째 자아실현의 욕구' 등 인간은 모두 각자가 생각하는 가치와 욕구가 채워질 때 삶에 보람과 기쁨을 느끼며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군가 자기의 삶을 응원하고 공감해 준다는 사실을 엄청난 일이다. 사람이 먹고 자고 그다음은 사랑과 인정을 받고 사는 소속과 사랑의 욕구일 것이다.


부모가 그런 존재이고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가족은 세상이란 땅에서 발을 굳게 딛고 살아갈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이다. 곁에 있을 때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내 삶을 응원해 주는 무조건 적인 사랑이 없을 때 오는 헛헛함이란 삶의 존재 자체도 의미를 잃어버리는 일이다.


손녀가 써주는 한글을 보며 우리 부부는 손가락을 치켜들고 "good" 하고 손뼉을 치고 응원을 해 준다. 멀고 먼 나라 한국이라는 곳에 자기를 응원해 주는 가족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다는 것이 손녀딸에게는 커다란 위로일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 본다.


나는 내가 굳건히 이 땅에 발을 딛고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음을 생각해 본다. 나는 우리 부부가 지켜야 할 가족들이 있기에, 이 땅에 발들 딛고 열심히 살아야 하겠다고 생각해 본다. 


딸들 사위들, 손자 손녀의 삶을 응원한다. 사랑한다, 고맙다 하고 마음으로 외쳐 본다. 나는 오늘 하루 나를 응원하는 모든 사람의 사랑의 기운으로 하루를 살아낸다. 오늘 하루도 감사하고 소중한  나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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