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흔히 백세 시대라고 말한다. 삶의 질이 많이 향상되었다는 방증이며 장수하는 노인들이 늘어났다는 현상이다. 의료 기술이 발전하고 노인 복지가 좋아진 만큼 노년기 삶의 질도 많이 향상됐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진 환경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시대의 변화만큼 노인의 삶에 대한 욕구도 많아졌다. 지금은 사회 풍조가 이전과는 달라 무조건 자식만을 위한 삶을 사는 것보다 내 삶의 질이 어떤지 먼저 고민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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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경제력과 건강이다.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민간 사업자들 또한, 최근 장수하는 노인 세대가 늘어남에 따라 여러 사업을 고민하며 실행하고 있는 걸로 안다. 자산관리 서비스, 몸에 착용하는 웨어러블 헬스케어 등이 그것.
노인 세대들은 보통 '어떻게 건강하게 행복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할 것인가' 하는 생각들을 한다. 나이 들어가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건강과 삶의 질이다. 경제력이 허락되는 세대는 경치 좋은 곳, 시설 좋은 곳, 골든 빌리지 같은 멋진 곳에서 케어를 받으며 살겠지만 그런 노인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만큼 많은 경제적 지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노인들 중 그만큼 경제력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자식에게 내 인생을 기대고 살기는 어려운 여건이다. 부모가 부자가 아닌 다음에야, 모두가 본인들 삶도 살아가기 벅차기 때문에 언감 생신 자식들에게 도움을 받으려는 생각은 애초에 내려놓는 게 보편적일 것이다.
차 마시는 다실 내 손길이 묻어있는 소품들, 우리 집 베란다 풍경
우리 부부도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거주지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골에 갈까도 고민했다. 그때 남편 나이 칠십이었다. 적은 나이가 아닌 그때, 남편 대답은 "내가 나이 60대만 됐어도 그렇게 시도해 볼 여지가 있겠다. 그러나 지금은 시골 살다가도 도심으로 나와야 할 때"라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그 말이 맞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 시골 생활이 불편한 점이 많다. 첫째는 병원에 다녀야 할 일이 많아서다. 둘째로, 70대가 넘으면 힘에 겨운 일은 하기가 어렵다. 쉬어야 한다.
가끔은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나이 들면 살고 싶은 곳이 어디예요? 하고 물으면 일반적인 보통사람들 대답은 한결같다. 한때는 시끄럽고 분주한 도심을 떠나 전원주택에서 자연과 벗하며 살기를 원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방법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이다.
실제로 시골 큰집에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시골이 얼마나 조용한지, 마치 마을 전체가 외로움으로 둘러싸인 섬 같은 느낌이다. 처음에는 기쁜 마음으로 시골 생활을 시작하지만, 통상 시골 생활이라는 것이 집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여건이 못 된다. 작은 텃밭도 집 주변을 가꾸는 일도 나이가 들수록 힘에 부치게 되는 일이다. 몸이 힘들면 모든 것이 귀찮아지는 현상이 오기도 한다.
노인이 되면 몸의 균형이 깨지면서 아프게 된다. 어느 순간 찾아오는 몸의 신호를 잘 알아차려야 한다. 그렇기에 시골 생활의 불편한 점은, 가장 첫 번째가 병원이 멀다는 점일 것이다.
보통은 나이 들어가면서 몸이 아프기 시작하고 여기저기 병원에 다녀야 할 일이 많아진다. 차가 있으면 편리하겠지만, 사회에서는 노년의 운전을 달가워하지 않는 문화도 있다. 때문에 나이 들어 운전하는 일이 괜히 주변눈치를 보게 되면서 마음이 불편해진다(그런 현상은 피할 수 없는 사회분위기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나이 들면 전원주택에 사는 것이 호감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나이가 들면 어디에 사는 것이 좋을까,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즈음 서울에서는 골드시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서울 집값이 워낙 비싸 정년을 하고도 꼭 서울에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지 고민해 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경제력이 허락되고 서울에 살고 싶은 이유가 있다면야 문제가 될 수 없을 것이지만.
선택은 각자 몫이다.
비싼 아파트를 매매하고 여유로운 자금으로 서울 근교, 병원과 문화 시설이 잘되어 있고 교통이 좋은 곳이라면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확률이 놓다. 그래서인지, 오세훈 서울시장은 싱가포르 출장 당시 사업모델 고민을 지시했다고 한다.
'인생 2막', '골드시티' 등 은퇴자, 고령자들 위한 주거지 모델을 고민하라고 했다는 것. 그 인구가 얼마나 될지가 관건이다. 여러 시설 좋고 살기 좋은 환경이라면 선호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문제는 경제력이므로, 나와 조건이 맞을지가 보통 고민되는 부분일 것이다.
우리 부부가 사는 아파트는 지은 지 벌써 30년이 넘었다. 나는 진즉에 새 아파트로 한번 옮겨 살기를 원했지만, 남편이 요지 부동이었다. 오랜 세월 익숙함과 편안함에 길들여진 탓이다. 아파트에서 내려가면 각종 편의 시절이 다 근거리에 있고, 병원과 마트와 시장, 문화시설, 산책할 수 있는 인근의 산 등등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면 사람은 외롭기에, 적적할 때 창 너머 대로변 사람들 구경도 해야 한다. 가끔은 '사람 볕'을 쏘여야 하는데, 그러기엔 지금 이곳 환경이 좋다. 그게 여기 거주를 지속하는 데 한 몫하는 것 같다.
대다수 일반적인 사람들은 살기 편한 아파트에서 살다가 몸이 아프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가서 생을 마치는 것이 보통의 삶의 형태다. 물론 경제력이 허락한다면 럭셔리한 주거 형태에서 한번 살아 보고 싶은 욕망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여건이 되지도 않고, 그런 소망을 일찍 접은 지 오래다. 나는 내 삶이 녹아 있는 소박한 지금의 아파트가 좋다. 내 삶이 녹아 있는 공간이며 수많은 사람들과 만났던 사연이 담긴 다실, 남편의 세심한 손길이 닿아있는 아파트 베란다가 그렇다.
남편이 가꾸는 베란다 식물
'나이 들면 어디에 살고 싶으세요'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건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른, 답하기 어려운 질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생각과 형편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오래된 아파트, 우리 가족의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 빛과 어둠이 녹아 있는 곳, 지금 내가 사는 자리가 내 삶이 끝나는 곳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