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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Jun 21. 2024

왜? 글을 쓰세요

사람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많을 거란 생각

다리를 다쳐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니 많이 갑갑하다. 사람은 자기가 겪어 보고서야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있나 보다. 어쩌다 무릎인대가 찢어져 마음대로 움직 일 수 없어 생각이 많아진다. 사고는 의도치 않아도 순간 일어나는 걸 알았다.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어 갑자기 장애인이 된 것 같다. 내가  잘 걷지 못하게 되니 걷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힘들까, 나도 그 사람 마음이 된다. 


누구나 한순간 장애는 찾아올 수 있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면서 살고 있는 것이 우리네 인간사다.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거라서 행복이 영원할 수도 없고 불행도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삶의 시간 흐르고 때가 되면 다 지나간다. 행복과 불행이 찾아오면 슬퍼할 일도 기뻐할 일도 아니다. 


담담히 내 삶을 지켜보면서 위로를 보낸다.


아픈 다리로 보행이 어렵지만, 그래도 더 많이 다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가, 자칫 뒤로 넘어져 머리를 다쳤거나 고관절이 나갔으면 그때는 더 많은 고통과 아픔에 힘들었을 것이다. 다행이다 다행, 하면서 자신에게 위로를 한다.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을 것이다. 내게 주어진 결과에 대해선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세가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힘든다고 말한 듯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살면서 의도치 않아도 수많은 일과 마주하며 살고 있다. 내게 찾아오는 변화를 수용하는 자세는 삶을 더 성숙하게 해 준다. 나는 원래 밖에서 노는 것보다는 집안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 내향적인 성격이지만 밖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과 외출을 할 수 없어 집 밖을 나가지 못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느끼는 차이는 크다.


답답한 마음의 상태이거나 기쁜 일도 글로 쓰면서 탈출구를 찾는다. 내가 글 쓰는 일을 몰랐다면 얼마나 어둡고 막막했을까. 우리 육체를 운용하는 것도 모두 마음 안에 있다. 사람 사는 일은 누구도 모르는 체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내 인생에서 오랫동안 다도 공부했던 일로 나의 배움은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브런치와 오마이 뉴스에 글을 써서 올리는 것,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내면 깊숙이 고여있던 아픔, 슬픔까지도 내 마음을 토해 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것이 글쓰기다. 때론 오타가 있어도 어떤 경우에는 틀린 문장이 있어도 누구 하나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마음 놓고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갖는다.      


                 컴퓨터 컴퓨터는, 글도 쓰고 나와 함께 하는 친구다


 참 고마운 일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공감하고 위로가 되어주는 글 쓰는 공간은 나의 또 다른 세계다. 세상과 소통하는 내 마음의 창과 같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은 나는 안다. 아직도 내 글이 다른 분에게 감흥을 줄 수 없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솔직한 고백이다. 


 완벽함이란 있을 수 없기에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 해 마음을 모아 집중하며 살고 있다.  


글 쓰기는 칠십 대 후반에 시작했지만 지금도 헤맬 때가 많다. 이게 옳은가, 저게 옳은가 글쓰기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다. 사람은 각기 다른 성향과 가치 그 사람만의 삶의 궤적 있다. 나는 나 만의 사고와 가치,  살아왔던 경험에서 느끼는 일, 소소한  일상을 그냥 이야기하듯  글로 쓰고 있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세대별로 삶을 구분한다. 아마도 같은 세대가 느끼는 동질감과 공감하는 자기들만의 가치관이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나이 팔십을 넘긴 노인세대다. 그렇지만 마음은 아직도 노인이란 말을 거부를 하고 있으니 이런 모순이 어디 있을까 싶어 때론 혼자서 웃음을 짓는다.


나는 거부할 수 없는 노인이다


누군가 나를 노인이라고 부를 때는 화들짝 놀라니 참 어이없는 일이다. 아직 중년처럼 마음은 파란 꿈을 꾸고  있으니 말이다. 누가 인정을 해 줄 건가. 사회에서 바라보는 팔십 대는 노인이란 말이 맞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최고령 사회로 진입을 하고 있다. 나는 노인이지만 부정적인 면을 버리고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 주변에 선한 영양력을 주는 어른이고 싶다.


왜, 글을 쓰세요?라고 묻는 다면,  내 글을 읽고 노년의 삶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면서 살았으면 하는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삶이란 내가 도전한 만큼 넓고 깊은 세계를 마주 할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전하는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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