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 어제는 입추였다. 입추는 한자에서 말하듯 가을에 들어가는 시작이라는 뜻이다. 입추라고는 하지만 날씨는 연일 폭염이 계속되고, 휴대폰에는 매일 폭염 주의보 문자가 날아오고 있는 상황이다. 여름은 여름답게 더워야 하기에 그러려니 하지만 더워도 너무 덥다.
이처럼 더운 날씨에도 생활전선에서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 생각하면서 불 펀한 마음을 접는다.
얼마 전에 큰집 조카에게 '8월 7일 '원불교 교당'에서 부모님 49재를 지냅니다'라고 참석하시라는 문자를 받았다. 세월은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와 같다는 말을 실감한다. 세월의 속도는 나이와 비례한다는 말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큰집 형님은 한 달 먼저 가시고 시숙님은 하늘로 가신지 어느덧 49일이 되었다.
갑자기 당한 황망한 일에 우리 가족들은 슬픔에서 헤어 나지를 못하고 나날을 보내왔다. 더욱이 순식간에 부모를 잃고 슬픔 속에 시간을 보내고 있는 조카들 생각에 마음이 처연하다.
어제가 형님 부부의 49재였다. 정말 한낮에는 도저히 외출하기 힘들 정도로 더운 날씨다. 한낮 더위가 조금은 숨을 쉬는 시간 4시에 원불교 교당으로 남편과 함께 발길을 옮겼다. 제일 먼저 도착한 남편과 나는 법당에 들어가니 깨끗하게 정리된 법당 상단에는 아름다운 꽃 속에 웃고 계시는 시숙님과 형님의 사진이 놓여있고 반갑다고 말이라도 금방 할 듯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두 분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울컥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다. " 시숙님, 형님 두 분 하늘에서 만나 외롭지 않게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하고 속 마음으로 목메어 불러도 대답이 없는 두 분, 우리는 영정 사진 앞에 향을 사르고 두 분의 명복을 빌며 합장을 한다.
우리 집안과 원불교의 인연은 남편의 큰 누나로부터다. 큰 누나는 지극 정성으로 원불교를 믿어 왔던 종교다. 그런 연유에서 돌아가신 뒤에도 시누님 부부영정 사진이 원불교 법당 안에 모셔져 있다. 시어머님 시아버님도 위패도 원불교 이곳에 모셔 놓았고 가족들도 짧은 시간이 지만 원불교에 참여했던 인연이 있는 종교다. 젊은 교무님의 안내에 따라 가족들 모두 자리에 앉는다. 다리가 불편한 나는 앉았다 일어나는 일도 쉽지 않다.
내가 일어나는 모습이 불편한 걸 언제 보셨는지, 교무님은 의자를 가져다주시고 의자에 앉도록 배려해 주신다. 말씨도 사근 사근 친절하시고 종교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다 갖추신 듯하다. 그 모든 것이 정신적인 수행에서 나타는 몸짓일 것이다. 법당 안은 정말 정갈한 느낌이 들 정도로 정돈이 잘 되어있다. 노란 방석도 독경집과 안 내지를 놓아줄 맞추어 깔아 놓았다.
조금 후 가족들도 모두 모이고 교무님의 안내에 따라 두 분의 49재가 시작되었다. 49재란 원래는 불교장례 예법으로 장례일로부터 49일 되는 날에 고인의 혼을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의미로 지내는 제사라고 한다. 49재를 지냄으로써 이승에서 떠나지 못하는 영혼이 저승으로 편안히 떠나 도록 바라는 마음에서 자손들이 지내는 제사 의식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시숙님의 예상치도 못한 안타까운 죽음, 그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자녀들이 제사를 지낸다. 막내딸 고사를 낭독할 때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슬픔에 잠긴다. 그러나 보내야 할 사람은 보내고 살아 있는 사람은 또 세상을 향해 발걸음 씩씩하게 걸어가야 한다.
나이 든 남편과 나는 형님부부의 49재를 지내고 남다른 감회에 젖는다. 두 시간 남짓 재가 끝나고 가족들은 마음 한편으로 무거웠던 마음을 내려놓는다. 좋은 곳으로 가시라는 염원을 정성 다해 기도드렸다. 주일마다 7번째 재를 지내고 마지막 재인 49재까지 지내면서 마음 안에 짓눌렸던 서러움을 떠나보낸다.
황망하게 부모를 잃은 조카들은 하나같이 슬픔에 잠겨 살이 빠져 핼쑥한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들도 안타깝다. "이제, 아빠 엄마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이니 너희들도 마음 추스르고몸 돌보며 살거라."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 한마디뿐이었다.
인생은 회자정리, 우리 모두 언제 가는 이별해야 할 사람들, 그러나 슬퍼만 하고 살기에는 우리의 살아야 할 나머지 시간들이 너무 짧다. 가슴에 무엇을 담느냐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그래야 내 것이 되는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