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용산과는 아무 연고도 없는 곳이었다. 어쩌다 2년 전부터 둘째 딸이 용산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부터 버스 아닌 기차를 타고 용산을 오고 갈 수 있어 여행 다니는 기분이다. 딸 가족이 용산에 살게 되면서 가장 혜택을 누리는 것이 우리 부부다. 내가 처음 서울을 올라 다닌 것은 1990년부터 큰 딸이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부터다.
그때부터 무수히 서울을 올라 다녔다. 비행기 마일리지를 계산하면 아마 많은 숫자가 될 거라고 사위는 말한다. 어느덧 34년이란 세월이 흘러갔으니 그런 말도 할만하다.
딸들이 하나, 두울, 막내까지 서울로 대학을 오면서 나는 서울에 올라오는 횟수가 더 잦아졌다. 손에는 늘 음식 보따리를 들고 고속버스로 올라와 지하철을 타고 또 갈아타고 그러면서도 고생스럽다 생각할 겨늘도 없이 서울 다니는 걸 즐겨하며 신 바람이 났었다.
왜냐 하면 지방에서는 누리지 못하는 서울의 문화답사와 쇼핑과 눈으로 즐길거리를 찾아 딸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좋았다. 자식이 아니면 어찌 그 일을 해 냈을까 싶었지만 나는 여행하듯 서울 올라 다니는 일이 즐거웠고 삶의 활력소였다. 일 없이 지방에만 묻혀 살았을 나를 딸들이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또 다른 세상을 살게된 것이다.
지금은 내가 사는 군산에서 기차를 타고 여행하듯 유유자적 서울을 올라오고 예전 고생했던 날들 생각을 하면 너무 신나고 즐거운 일이다. 기차에서 내리서 길만 건너면 딸이 살고 있는 아파트다. 처음 올라온 날 나는 낯설고 놀라서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서울에 올라 다닌 지 30년이 넘은 후에야 이런 변화를 맞이했다. 세상 사는 일은 모른다. 살면서 어떤 변화가 내 앞에 놓이게 될지.
다만 안타까운 것은 나는 이제 나이 들고 호기심이 줄어들어 사고 싶은 물건도 없고 가고 싶은 곳도 줄어들면서 삶의 열정이 사라지는 내 모습이 서글퍼지는 심리 상태다. 예전에는 서울에 올라오면 수없이 많은 곳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사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았다. 지방에서는 못 누려보는 서울의 문화와 볼거리를 찾아다니면서 신바람이 났었다.
나이 들어 노년이 된 지금은 모든 의욕이 떨어져 예전과는 다르다. 그래서 예전 어른들이 한 말이 머리에 떠오른다. 먹는 것도 젊어서 맛있게 먹고 노는 것도 다 때가 있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나이와 함께 느끼는 시야가 다르다.
세상만사 우주의 모든 일은 시간이 흐르면 변화게 되어있다.
나는 지금, 서울에 와도 음식을 만들어 주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아직도 딸은 직장 생활은 하고 있지만 그들도 생활 패턴이 달라졌다. 내 몸이 예전과는 달라 일을 하면 무리가 따른다. 다행히 지금은 아파트 내에서 점심 저녁을 사 먹기 때문이다. 사는 일이 얼마나 편리 해졌는지 손님이 와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런 편리한 환경이 생경하면서도 놀랍다.
아직은 용산의 많은 곳을 다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차차 가보지 못한 곳을 찾아 여행하듯 즐겨보려 한다. 이제는 물건을 사는 것보다 자연을 접하고 자연 속에서 더 많은 행복의 씨앗을 찾아 걷는 걸음걸이가 일상의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걸 알았다. 노년이 되면서 별로 부러운 것이 없다. 다만 건강만 하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것 안다.
용산 도착 후 이튼 날 사위와 남편 딸과 같이 아침 일어나서 바로 딸네집 아파트 결에 있는 용산 가족공원 산책을 했다. 새소리, 매미 우는 소리 자연 속에 들어서면 마음부터가 정화되는 느낌이라서 "좋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평소에 감정 표현을 잘하지 않는 남편도 "좋다" 소리를 하니 같이 다니는 사위와 딸이 더 좋아한다. 무엇이던 좋은 사람과 함께 하면 느끼는 행복이 배가 된다.
용산 가족 공원에서 만난 풍경들
풀숲에서 만난 이름 모를 버섯
지금 막 피어난 백일홍꽃도 아름답고 오랜 세월 그 자리에서 지켜 왔던 나무들. 야생화 풀들까지도 아침 산책길 마음의 평화를 느끼게 해 준다.. 비 온 뒤 누가 보아 주기를 기다리듯 풀숲에 올라온 작은 버섯을 사진 찍는 중년의 아줌마를 보았다. "무얼 찍는 거예요?" 물으니 이름 모를 작은 버섯이란다. 너무 작아 줌을 키워 사진을 크게 해서 찍어 인스타에 올린다고 한다. 오, 그런 방법이 있구나 혼자서 자연을 관찰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고 말하는 그분이 멋져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마타리 꽃들
어름덩굴들 우리나라 꽃 무궁화 꽃이 선명하다
지고 있는 핑크 장미꽃 여름 수국 꽃
연못의 오리가 한가롭다 물이 있는 풍경
그래, 사람이 물질에서만 만족한다면 사람 사는 일이 아름답게 보이질 않지만 자연에서 작은 걸 느끼고 즐기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 삶이란 자기가 창작하며 즐기고 그 과정에서 행복을 찾으면 더 값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는 아파 절뚝이지만 자연을 바라보는 시간이 즐거워 5 천보를 훨씬 넘도록 걷고 딸이 사는 주변을 함께 즐긴다.
아침은 밥 할 필요도 없이 간편하게 샐러드 바에 가서 샌드위치와 샐러드 차와 함께 아침을 먹는다. 내가 젊어서 누려 보지 않았던 세상을 딸 덕분에 즐기고 있다. 아침시간 잠깐이지만 하루 관광을 하듯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 마음이 뿌듯하다. 좋아하는 마음은 온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리게 해 주는 안전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