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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아 버리기

한 번은 시처럼 살아야 한다

by 이숙자

입춘에 장독 깨진다는 말이 있듯이 절기상으로는 입춘과 우수가 지났건만 날씨는 여전히 춥다. 2월도 자취를 감추려는 끝자락인데 이곳 군산은 어젯밤 아무도 모르게 흰 눈이 내렸다. 겨울을 보내기 아쉬운 눈이 아닌지, 그렇지만 아무리 추워도 봄은 곧 찾아올 것이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설렘이다. 꽃이 피고 나뭇잎도 피어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자연의 축제다.


수술과 입원을 하고 퇴원 후 딸네집에서 머물다 내가 사는 군산집으로 돌아온 지 벌써 10일이 훌쩍 지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니 그렇게 좋은 수가 없다. 별스럽지 않은 내 물건들 내가 머무는 공간이 아늑하고 편안하다. 퇴원하고 집에 머물지만 아직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몸이 이끄는 데로 하루하루 살아낸다.


해야 할 일이 있어 움직이다가 순간 내가 지금 수술한 환자라는 것을 잊고 일을 하면 금세 알아차리고 몸은 어느 사이 눈치를 채고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쉬라 한다.


"아 그렇지! 나는 아직 환자지, 몸이 이끄는 데로 해 주어야 해" 잠시 잊었던 생각들이 현실을 직감한다. 몸이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면 잠시 침대에 면 금세 잠이 든다. 아프지 않았을 때와 다른 변화다. 잠시 수면을 취하고 나면 피로가 풀리고 몸이 괜찮아진다. 우리 몸이란 참 신기하다. 내가 먹는 만큼 내가 돌보고 사랑해 주는 만큼 변화를 느낄 수 있다.


80이란 나이가 되도록 지금까지는 그걸 모르고 살았다. 그냥 사는 거니까 하면서 무심히 바쁘게 살아왔다. 내 몸이 아프고 나서야 신경을 쓰며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무엇을 먹고 어떻게 몸을 대할지 집중하게 된다. 세상과 이별할 때는 할지언정 살아있는 날 까지는 고통 없이 살다가 가기를 소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즐기고 있는 중이다.



살아 있는 이 소중한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면서 보낼까, 다행히 좋아하는 놀거리가 많다. 시 필사도 하고 어반스캣치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고 글도 쓴다. 그동안 혼자서 놀 수 있는 일거리를 만들어 놓아 전혀 외롭거나 쓸쓸할 겨를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집중해서 할 때면 무념무상 상태다. 잡념이 없어 그 또한 편안하다.


하던 일이 힘에 부치면 잠시 거실 소파에 앉아 창너머로 들어오는 햇볕을 즐기며 차도 마신다. 하루 시간 중 거실로 들어오는 햇살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살아있음이 축복이라는 생각에 젖는다. 음악도 듣고 지극히 작은 것에 마음이 평화롭다. 지금은 자꾸 놓아버리는 연습을 해야 하는 때다. 손안에 움켜쥐는 것보다 버리는 게 더 마음이 가볍다.


삶이란 언제나 한결같지가 않다. 좋았다 나빴다 그렇게 흘러간다. 시련 없는 삶이란 없다는 의미다. 간절함이 없는 삶은 기쁨도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평탄하게 살아온 것도 감사하다. 80대인 이 나이에 아직 살아 있어 감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 감사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 그 또한 감사하다.


신은 분명 내게 준 시련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나는 내게 온 시련과 아픔을 잘 견뎌 낼 것이다.


군산에 내려온 지 며칠 동안은 몸이 좋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10일이 지난 후에야 조금씩 몸의 상태가 좋아져 컴퓨터 앞에 앉았다. 다른 작가님들 글도 읽고 오늘은 몇 자 글을 쓰는 중이다. 그중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 주는 양광모 시인의 시를 여기 옮겨 놓으며 그 의미를 새김질하면서 나도 한 번은 시처럼 살아야 함을 느낀다.



한 번은 시처럼 살아야 한다 / 양광모


나는

몰랐다


인생이라는 나무에는

슬픔도 한 송이 꽃이라는 것을


자유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펄럭이는 날개가 아니라 펄떡이는 심장이라는 것을


진정한 비상이란

대지가 아니라 나를 벗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인생에는 창공을 날아오르는 모험보다

절벽을 뛰어내려야 하는 모험이 더 많다는 것을


절망이란 불청객과 같지만

희망이란 초대를 받아야만 찾아오는 손님과 같다는 것을


12월에는 봄을 기다리지 말고

힘껏 겨울을 이겨내려 애써야 한다는 것을


친구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내가 도와줘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떤 사랑은 이별로 끝나지만

어떤 사랑은 이별 후에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시간은 멈출 수 없지만

시계는 잠시 꺼 둘 수 있다는 것을


성공이란 종이비행기와 같아

접는 시간보다 날아다니는 시간이 더 짧다는 것을


행복과 불행 사이의 거리는

한 뼘에 불과하다는 것을


삶은 동사가 아니라 감탄사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인생이란 결국 자신의 삶을 뜨겁게

사랑하는 방법을 깨우치는 일이라는 것을


인생을 통해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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