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지어 꽃 선물을 받고
때론 주변에 내 근황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알고 싶다. 떠 벌리닌 일도 없었는데 어느 사이 소문을 돌아 몸이 아파 수술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주변 지인들의 걱정과 위로가 쏟아진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다. 나로 인해 주변에 조금이라도 불편 주지 않고 살라 했는데 세상사는 마음대로 살아지는 건 아닌가 보다. 내가 의도치 않아도 다 알게 된다.
죽을 끓여 오고 반찬을 만들어 오고 몇 분의 수고에 고맙고 감사하다.
서울에서 내려온 후 며칠이고 몇 날을 집안에서 보내고 있지만 별로 지루하지 않다. 얼마를 지내고부터는 습관처럼 편안하다. 이러다 집순이가 되려는지, 나름 날마다 시간표를 만들 놓고 지내고 있다. 아침 먹고 난 후 걷기 운동 오천보 목표를 세워놓고 실행을 하고 있다. 어찌 되었든 내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에 우선순위를 정한다.
지금은 몸을 살펴야 하는 일이 우선순위다.
되도록이면 사람들과 전화 통화도 삼간다. 아니 별로 말이 하기 싫어진다. 사람과의 관계는 적당한 거리가 매우 중요하다. 적당한 거리가 적절한 온도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관계, 세상에서 가장 가깝다는 부부관계도 마찬 가지다. 너무 가깝게 대화를 많이 하다 보면 흠결이 있을 수 있고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마음을 다 쏟아놓고 나면 마음이 헛헛해진다. 적당히 비밀 스런 부분이 있어야 사람이 산뜻하다. 남들은 본인 이야기 아니면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요즘 사회의 분위기다. 누구와의 대화보다 침묵하며 글을 쓰며 보내는 나와이 대화 시간이 편하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적당히 고요한 시간을 즐긴다.
어제는 낭송을 같이 하는 젊은 회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에 계시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을 하니 잠깐 집에 들르겠다고 아파트 호수를 물어본다. 곧바로 초인종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보니 내게 늘 응원을 보내는 시 낭송 젊은 회원이다. 웬일이냐고 물으니 수줍게 내게 내미는 프리지어 꽃과 부드러운 카스텔라라고 쇼핑백을 내민다. 단단한 걸 못 먹는 나를 위해 준비했다는 말과 함께.
이게 웬일인지, 무어라 표현을 못 하겠다. 잠시 들어와 차 한잔 하자는 말에도 일이 있다고 사양하고 돌아선다. 마음이 뭉클해 온다. 몸이 아프면서 의도치 않게 자꾸 주변 사람들에게 신세을 진다. 삶이란 언제 어떤 상황과 마주 할지 모르는 안갯속과 같다. 누군들 몸이 아파 주변인들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살고 싶었을까, 나도 몸이 아프고 원하지 않았던 일이다.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마음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겁다. 나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눔을 하고 살고 싶다. 내 무거운 사랑의 짐을 마음 안에 쌓아 놓기만 한다. 살다 보면 어느 날인가는 나도 나누어 주고 살날이 있지 않을까 하고 희망해 본다. 주는 것이 행복하다.
사람과의 관계는 배려와 존중이라 했다. 그 마음이 없으면 어찌 집까지 찾아올 수 있을까, 오히려 젊은 사람에게 나는 배운다. 나도 좀 더 따뜻한 배려와 사랑으로 마음을 나누고 살아야 함을, 부드러운 쌀 카스텔라는 남편이 더 좋아하고 잘 드신다. 기분 좋을 때 나온다는 도파민이 마구 나올 것 같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프리지어 꽃은 유리병에 꽂아 거실장 위에 올려놓으니 마치 봄이 온 듯 화사하고 기분이 좋다. 향기마저 그 꽃을 주고 간 그 분과 닮았다. 꽃을 보면서 사람의 향기도 느낀다.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에 공감한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결국 함께 일 때 모든 것에 의미가 있고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