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첫날, 비가 오기 전 딸들과 함께 선암사 고찰을 찾았다
오후 3시가 넘어가는 시간, 구름은 낮게 드리우고 있다. 여름날이라고는 하지만 비가 올듯한 날씨는 얼마 가지 않아 저녁 어스름이 찾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는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곧바로 선암사로 향했다. 선암사는 순천시에서 30분 정도 거리다. 2박 3일 여행을 알차게 하려면 프로 그램을 잘 짜야한다. 우리 부부는 딸들이 권하는 데로 따라 하면 된다.
딸 셋이서 금방 의견을 맞추어 움직인다. 다행히 운전을 하는 딸이 두 사람이라서 교대하면서 운전을 하기에 편리하다. 선암사는 차의 성지이기에 내가 좋아하는 사찰이다. 선암사에는 야생 차 밭이 있고 차를 덖는 차 부뚜막도 있고 '야생차 이야기' 책을 출간하신 지허스님이 계셨던 곳이기도 하고 언제 한번 선암사를 찾았을 때 지허 스님은 뵙기도 했었다.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선암사까지 오르는 흙길을 걷고 있노라면 사바세계에서 힘들었던 마음을 마저 사라지는 듯 마음이 고요해진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남편은 걷다가 피곤하신지 잠시 앉아 쉬고 계신다. 오래된 탑도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뒤란 전각들 풍경이 있는 처마
주말도 아닌 목요일에 찾은 산사는 조용하다. 주차장에서 선암사 절 마당까지 오르려면 꽤 많이 걸어야 하지만 걷는 길은 초록의 나무 터널과 길 옆에서 들리는 계곡 물소리가 걷는 발걸음을 상쾌하게 한다. 딸들은 여자들이라서 그런지,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참, 좋다." 소리를 연달아하면서 걷는다.
인적도 거의 없다. 우리 가족만이 울창한 나무 그늘 아래 걷고 있으니 별세계다. 얼마를 걷고 나서야 도착한 선암사는 말 그대로 고요하고 적막할 뿐 관광객도 몇 사람 모습만 보인다. 절 집 누각은 많은데 사람의 기척은 하나도 없다. 선암사는 차 생활을 하면서 가끔씩 왔던 절이라 친근하다. 지금은 여름철이고 주중이라서 찾아오는 사람도 많지 않고 고요와 적막 만이 절집들을 감싸 안고 있다.
대웅전이며 다른 전각들도 단청이 남아 있지 않아 세월의 덮개를 말해 준다. 나는 단청이 화려한 사찰보다 오히려 묶은 나무 색 그 자체로 단아함을 좋아한다. 선암사에 가면 잊지 않고 생각나는 시가 있다.
정호승 시인의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어라>라는 시다. 나는 그 시를 음미하면서 다시금 해우소를 바라본다. 사는 것이 답답하고 서러웠을 마음을 헤아려 시인은 시를 썼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슬픔과 고통의 무게가 있다. 그 마음을 아셨을 시인,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어라 보라고 말하지 않았나 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
해우소는 단순한 화장실이 아니라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딸들은 사진 찍기에 바쁘다. 봄이면 그리 곱게 피던 홍매화 나무는 푸른 잎이 무성한 체 의연히 서 있다. 전각 이곳저곳을 보면서 사진을 찍는다. 선암사는 차의 성지이며 천년세월을 살아온 차 나무만큼이나 스님들이 자랑으로 여긴다. 선암사 차는 무쇠솥에서 엄격한 전통 방식으로 차를 덖는다.
차 부뚜막 4단 석조
차는 또한 물이 중요하다. 물은 생명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살아 움직이는 생물에게 필요한 물은
곧 생명이고 시작과 끝이다. 천년고찰 선암사에는 가장 맑고 정결한 물이 산에서 흘러 내려와 층층 4단 돌확에 차례대로 담기며 맑은 거울을 만들어내는 곳이 있다.
선암사에서 고요한 마음을 담고 우리는 선암사를 내려간다. 언제 다시 찾게 될지 모르지만 마음 한 자락은 이곳 선암사에 남기고 다음 행선지를 향해 발길을 재촉한다.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