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 읍성은 주민들이 옛날 생활 방식 그대로 살고 있다
하루 일정이 꽉 짜인 우리는 선암사에서 숙소로 돌아가 전 가까운 거리에 있는 낙안 읍성으로 향한다. 여름은 장장하일이란 말이 있듯 하루해가 길다. 비올 거란 예보와는 달리 구름만 낮게 깔린 날씨는 걷기에도 아주 안성마침이다. 햇살이 따가우면 걷기 힘들었을 것이다.
적은 인원이 차로 이동하니 편리하고 편안하다. 나이 든 우리는 아직은 딸들과 보폭을 맞추며 함께 할 수 있어 이 또한 다행이고 감사하다.
낙안 읍성 이곳저곳
이 읍성 성곽은 태조 때 왜구 침입을 막기 위해 김빈길 장군이 토성으로 축조한 성곽이라 한다.
낙안 읍성은 조선시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마을이다. 초가집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고 매년 가을 추수가 끝나면 초가지붕에 이엉을 역어 덮는 일을 하는 것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옛 우리 조상들의 생활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한 지자체와 주민들의 노력이 있어 가능한 일 것이다. 지금까지 전통을 이어 오고 있는 그분들의 손길이 존경스럽다.
낙안 읍성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지방 계획도시며 대한민국 3대 읍성 중 한 곳으로 CNN에서 선정한 한국에서 가야 할 곳 50에도 선정되었다고 한다. 마을에 들어서면 타이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 아직도 주민들이 선조들의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 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많이 불편할 텐데도 불구하고.
낙안 읍성 초가집 마을
마을 길을 천천히 걸어 보다가 쉬기도 하고, 어느 집은 빨래 줄에 빨래가 널려 있고 어느 집 마당에는 자가용이 있는 것이 구 시대의 초가집과 신 시대의 차가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초가집 돌담 넘어 훌쩍 키 큰 접시꽃이 예쁘고 정겹다. 고개를 위로하고 바라보니 노란 황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반갑다. 사람이 사는 곳은 자연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이 그림 같다.
이번 여행은 짧은 일정으로 마치 수박 겉 할기 같다. 여행지를 깊이 느끼려면 하루는 시간을 할애하면서 천천히 음미해야 함에도 우리는 바쁘다. 해가 지기 전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낙안 읍성을 나와 순천 시내 예약해 놓은 맛집을 찾았다. 여행도 좋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남도에는 맛있는 음식이 많다고 한다. 우리가 예약해 놓은 식당도 사람이 줄을 서야 한다. 식당 분위기도 고급지고 음식도 맛있고 남편은 무척이나 좋아하신다. 이런 날 이 음식에 막걸리 한잔은 해야겠다 하시며 막걸리를 주문하신다. 사람들에게 인기 있고 유명하다는 ㅇㅇ막걸리 한잔을 따라 놓고 남편은 한마디 하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처럼 행복하자." 그 말이 오늘에 딱 어울리는 건배사다. 맛있는 음식이 있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고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정말 오랜만에 먹어 본 막걸리 한잔에 금방 취기가 올라온다. 모두가 화기애애 한 분위기,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날이다.
"아빠 엄마 건강만 하세요 우리들이 자주 모실게요." 그 보다 더 감사한 말은 없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포만 감과 약간의 알코올기운으로 마음이 가득해 온다. "그래, 인생 뭐 있어. 이렇게 살다가 가는 거지."
식당 밖 벤치에 말없이 잠시 숨을 고르며 앉아 있으려니 바람이 살며시 얼굴을 간지럽힌다. 기분 탓일까. 바람에게도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나 잘 살고 있는 거지?" 낯선 곳이지만 남편과 딸들과 함께 하는 이 밤이 훗날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올 것이다. 또 어느 날은 그리움으로 가슴이 아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