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새해 풍경... 반가운 이웃을 만나다
몇 년 전만 해도 한 해가 저물면 해넘이, 다음 날 새해는 해돋이를 보기 위해 마음이 분주하고 들떠있었다. 그랬던 날들의 기억이 아직도 잊히지 않고 뚜렷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지금, 80 이란 나이가 넘고 서야 모든 것이 시들하고 귀찮아진다. 그때처럼 설렘은 사라지고,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른 느낌이 없다.
티브이에서도 올해 세모 풍경은 맛있는 음식을 가족과 나누어 먹으며 집에서 영화를 볼 예정이라는 시민들의 인터뷰가 나온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 힘들고, 돈 드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사람들 생각이 달라졌는지, 아니면 경기가 좋지 않아 소비를 줄이려는 현상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적막을 깨는 반가운 벨소리
노인 세대인 우리 부부는 특별한 날이 오면 쓸쓸하다. 내 생각인지 모르겠다. 다른 날은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가 명절이나 가족이 모여야 하는 날 모이지 못할 때 찾아오는 공허감은 숨길 수 없다.
잠시 후 전화벨 소리가 집안의 적막을 깼다. 딸들 가족들이 차례로 새해 인사를 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사는 일은 물 흐르듯 관망하는 것이 더 편하다. 가족이란, 힘든 세상 속에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가장 튼튼한 울타리다.
새해 첫날, 아침 떡국을 끓여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셋째 딸에게 전화가 온다. "엄마 우리 지금 집에서 출발해서 군산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전화가 온다. 늘 바빠 시간이 없다는 말에 군산에 오리라 생각도 못했는데 오고 있다고 한다. 그때부터 하는 일도 없으면서 마음이 바쁘다. 잠자리부터, 오면 쉴 수 있도록 집안을 살핀다.
점심은 외식하자는 말에 아무 준비도 없이 딸네 가족을 기다렸다. 만나면 언제나 반가운 가족, 곁에 살고 있는 동생까지 불러 외식을 하려 갔다. 새해, 쉬는 날이라서 식당은 가족끼리 밥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편은 막걸리 한잔 하시더니 기분이 많이 좋은가 보다. 신년 건배사도 하고 옛날 일도 회상했다. 누군가와 말할 사람이 없다가 가족을 만나고 할 말이 많으신가 보다. 나이 들면 이래 저래 외롭다. 만나야 할 사람도 없고 더욱이 대화할 사람도 줄어든다.
점심을 먹고 큰 마트로 향했다. 마트 가는 길에 남편이 처음으로 집을 지어 우리 가족이 살았던 옛날 집이 있다. 아이들 키우며 추억이 많은 곳, 오랜만에 찾아왔다. 길 건너 우리 앞집에 사시던 분은 살아 계시는지 궁금해 대문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그 집에 젊은 남자분이 있어 남편이 물었다.
새해에 겪은 놀라운 일
"우리가 30년 전에 이 앞집에서 살던 사람인데..."
"아, 그럼 A씨세요?"
그분의 그 말을 듣고 소름이 쫙 돋았다. 남편 이름을 기억하다니, 우리는 그 젊은이를 몰랐다. 남편은 내 이름이 맞다고, 그 말에 깜짝 놀란 젊은이는 앞집 아들이라고 말하며 아버님에게 말을 많이 들어 이름을 기억한다는 말에 다시 놀랐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우리가 옛날 살던 곳을 가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들. 동네에 살던 분들 중 누구는 돌아가시고 누구는 살아 계시고 소식을 다 들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젊은이는 아버님 살아 계신다며 집안으로 들어가 모시고 나왔다. 이게 웬일인지 두 분은 이산가족이나 만난 듯 얼싸안고 눈물을 훔치신다. 몇 년 전 보고 싶다 전화를 하셔 한번 들렀는데 그때 보다 더 많이 노쇠해지셨다. 지금은 97세, 몸은 마르셨지만 기억력은 또렷하다. 남편은 88세, 이제 세상과 이별할 날이 멀지 않은 두 분은 옛날을 회상하며 감회가 새롭다고 말하신다.
88세 남편과 이웃이었던 97세 어르신
새해 이런 일이 있다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도 마음이 먹먹했다. 이제 언제 살아서 만날 수 있을지, 인생이란 참 무상하다. 젊어 그리 활발하게 살았던 날들이 떠오르며 애달파하신다.
두 분의 모습에서 인생의 연륜 같은 깊이가 느껴지기도 했다. 참으로 인생은 드라마와 같다. 살아가는 동안 사연이 많기도 하고.
헤어짐이 아쉽지만 우리는 마트로 향했다. 무거운 걸 들 수 있는 가족들이 있을 때 필요한 생필품을 사기 위해서다. 마트 안은 웬 사람들이 그리 많은지 새해 첫날 모두가 장 보러 온 날인가 보다. 멀리 여행보다는 맛있는 것 사다가 집에서 즐기는 새해 풍경이 아닌지. 우리도 먹을 것을 이것저것 많이 샀다. 긴 줄이 서 있어 계산하는 데 30분은 족히 걸린 것 같았다.
병오년 새해 첫날, 잊히지 않은 특별한 날을 보낸다. 올 한 해도 말처럼 힘차게 뛸 준비를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