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빈 집 공터에서 만나는 봄 매화
봄이란 어쩌면 기다림의 계절이며 그리움의 계절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계절을 기다리며 좋아하는 것과 조우를 한다. 그 대상이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연 물일 수도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 중에 고유한 자기만의 대상이 있을 것이다. 그 대상은 누구도 모르는 자기 마음 안에 간직하고 사는 그리움의 존재 일 수도 있다.
내가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대상은 여러 자연 물이다. 그중에도 맨 먼저 존재를 알리는 매화. 매화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 안에 차 오르는 그리움, 조선시대 학자 중에 퇴계 이황 선생님은 도산 서원 앞뜰에 매화나무 한 그릇을 심어 놓고 애지 중지 사랑하시며 그 의미와 함께한 고귀한 인품을 알 수가 있다. 돌아가실 때 유언도,
"매화나무에 물 주거라"라는 말씀을 하셨을 정도로 매화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는 설을 알고 있다. 내가 매화를 좋아하기 시작한 시기는 다도를 시작하면서였다. 봄이 오기 전 찬 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 맵싸한 느낌을 받을 때부터 매화는 피기 시작한다. 그 긴 겨울 추위를 이기고 맨 먼저 죽은 듯 서 있던 매 마른 가지에 하얀 매화꽃이 피어난다.
그럴 때면 꽃 잎 몇 송이 따다가 연한 녹차를 우려 찻잔에 띄워 마시는 호사라니, 그 순간은 기다리던 그리움이 찻잔에 고이 피어난다. 매화 띄워 차를 마실 때면 빼놓지 않고 남편에게 맨트를 날리는 말이 있다.
"여보, 이 시간 매화꽃 띄워 차 마시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행여 나이 들어 무료한 당신의 삶이 쓸쓸할 까봐 매화꽃 띄운 차 한잔으로 마음의 위로를 전한다.
인생이 사는 것이 무엇이 있으랴
사람 사는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변하는 건 아닌지,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가야 할 날이 짧은 이때 나는 무엇으로 내 삶을 채우고 살 것인가. 늘 고심을 한다. 채운다기보다는 버리고 살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안다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지만 늘 내 마음 안에서는 채우는 것과 버려야 하는 것 두 문제가 내게는 늘 화두로 다가온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유난히 포근해 보인다. 봄빛의 느낌은 다르다. 밖을 나가 보야야 만나고 싶은 걸 만난다. 매년 내가 아는 비밀의 장소가 있다. 사람도 차도 많이 다니지 않은 골목길 빈집 공터에 내가 기다리는 매화나무가 몇 그루 있다. 지난번 찾아왔을 때는 봉우리가 망울져 피기는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 산책을 하고 그곳에 찾아가니 이게 웬일인가, 매화가 만발해서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겨 주는 것 같다. 나는 매화나무 아래 한참을 바라본다. 너는 그 긴 겨울 매서운 추위를 견디고 피어나기 때문에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인함과 맑고 깨끗한 고귀한 품성 청렴함을 지닌 꽃이 반갑다.
매화의 고결함에 마음 한편이 말랑말랑해 온다. 봄이 오는 기다림, 그리움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워 주는 날이다.
지금은 빈집 공터에 있는 매화나무가 언제까지 그 자리에 있어 내 그리움의 선물이 될지, 그게 궁금하다. 오늘 하루에서 가까이에서 님을 만나 듯 가슴이 가득해지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