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장 어릴 때 기억들

가장 어릴 때 큰 집에서 있었던 추억들

by 이숙자


내가 아주 어렸을 때, 5 살, 아님 6살 때쯤으로 생각한다. 살아온 날 중에 가장 어렸을 때 기억이다.


나의 어릴 적 큰집은 산골인 시골집이었다. 그곳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큰집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왜 나는 가끔 큰집에서 놀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도 엄마 아빠를 떨어진 체 며칠씩, 내가 기억하는 큰집은 뒤란에는 감나무 몇 그루와 단풍나무, 앵두나무가 있었고 집 둘레는 돌로 쌓은 돌담 집이었다. 부엌 뒷문을 열면 뒤란과 바로 연결되고 장독대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늑하고 예쁜 시골집 풍경이다.


내가 기억하는 큰집 뒤란은 이야기들이 많이 숨겨진 곳이었다. 어린 날도 그렇고 내가 자라면서 큰집에 갔을 때도 제일 좋아하는 공간도 큰집 뒤란이었다. 봄이면 앵두나무 꽃 흐드러 지게 핀 그곳, 앵두꽃도 나는 좋아했다. 앵두가 익어 빨간 열매를 따다가 입에 넣었을 때 느끼는 달콤한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생각만으로도 추억이 아련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다.


특히 할머니 방 작은 창문으로 바라보는 뒤란 풍경은 지금도 잊지 못하는 아름다운 추억들이다. 가을이면 작은 돌담 축대 사이에 피어있는 향기로운 국화, 단풍이 든 감잎이 수북이 떨어져 있어 보기가 아주 좋았다. 나는 뒤란으로 나가 예쁜 감잎을 주워서 놀았다. 그때는 공해가 없어서 그랬다. 감잎이랑 다른 나무 단풍이 얼마나 예쁘고 고왔는지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할머니가 주무시는 안방은 부엌과 가장 가까이 있어 불을 때면 아랫목이 따뜻했던 것 같았다. 방 아랫목 벽에는 횟대 ( 굻은 대나무로 옷을 걸어 놓는 용도)에 할머니 옷들이 걸려 있고 또 꼭 시렁이 방안에 있었다. 지금처럼 수납장이 없는 그때는 시렁이 대신했다. 그 위에는 바구니에 요것 저곳이 담겨있고 할머니의 보물들이 숨겨 놓은 곳이었다.


큰집 돌담 주변에는 그릇 깨어진 사금파리들이 많았다. 눈만 뜨면 동네 아이들과 사금파리를 주워 소꿉놀이를 했다. 나무 막대기에 긴 풀을 뜯어 각시를 만들고 큰 엄마 반짇고리에서 가져온 헝겊으로 치마를 입혔다. 풀과 열매로 음식을 만들고 마치 집에서 살림을 하듯 소꿉놀이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놀던 기억이 또렸하다. 지금은 예쁜 인형과 소꿉놀이가 많아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지만.


또 한 가지 추억은 큰집 윗집에는 아이가 없는 젊은 새댁이 살고 있었다. 새댁은 때때로 심심하면 어린 나를 데리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많이 예뻐도 해주었다. 산으로 들로 데리고 다니며 봄에 빨간 매화가 피었을 때 꽃을 따서 머리에 꽂아 주고 집으로 데리고 와 간장에 계란 넣어 밥을 비벼 먹여 주었던 일. 가끔이면 그 기억이 아련히 생각이 난다.


다 잊고 살았던 기억들이 나이 들어 삶이 한가롭고, 예전 가장 어렸을 적 추억이 아스라이 떠올라 메 말라가는 내 감성을 촉촉이 적셔준다. 지금과는 너무 먼 이야기 아날로그 시대, 그때는 그렇게 놀아도 날마다 재미있었다. 목화 농사를 지었던 큰집은 일이 많았다. 할머니는 목화로 물래를 돌려 실을 뽑고, 누에를 키워 번데기를 만들어 주었던 추억, 큰 어머니가 베틀에서 베짜던 기억도 또렸하다. 정말 아득한 먼 옛날 일이다.


옛날 사람들은 그 어려운 시절을 잘 견뎌내며 살아냈다. 그 세월의 강을 건너 지금 우리가 있는 것이다. 불과 70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세월의 변화가 엄청났다. 사람들 사는 게 많이 편리하고 사람들도 변했다. 예전 생각을 하면 놀랍고 경이롭다. 세월 흘러 나이 들고, 옛날을 추억하니 격세 지감이 느껴진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된 기억 속의 할머니, 큰집 가족인 언니와 오빠들, 그분들이 내 어린 날 삶의 파편처럼 남아 있다. 지난날 추억이 포근한 밀어들로 속삭여 준다. 따뜻하고 지난날이 아름다웠던 삶의 한 조각이다. 내 가장 어린 날 기억을 되 살리며 나는 오늘 아날로그 감성에 젖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가끔이면 지난 세월의 흔적을 찾아 추억여행을 한다. 나이 먹으면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도 맞다. 조용히 말없이 지내는 시간 살아왔던 지난 시절로 돌아가 나를 다시 만난다. 어느 날, 마음이 시리면 내 어렸을 적 예뻐해 주셨던 할머니도 그립고, 그 시절 어린날 추억을 만들어 주고 사랑을 주었던 사람들도 그립다.


글을 쓰는 일은 내면에 나를 만나는 일이다. 글을 쓰고 지난 내 어린 날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아련하면서 감성이 촉촉이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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