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 일은 궁극적으로 먹고살기 위해 날마다 수고를 해야 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삼시 새끼를 먹어야 하는 일은 쉬운일이 아니다. 가족의 밥을 책임 짓는 주부는 매끼마다 무얼 먹을까, 메뉴를 선택해야 하고 수많은 날 음식을 만들어 가족의 밥상을 차려야 한다. 한국사람 밥상에는 김치가 빠지는 일이 거의 없다. 그 만큼 김치는 우리 밥상에서 빠지면 안되는 음식이다.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 할 수 없는 현실이 먹고사는 일이다. 나는 나이 들어가면 치아도 부실해지고 김치를 먹는 일도 쉽지가 않다. 요즈음 치과 치료 중이라서 봄나물이 한참인데 나물조차 마음대로 먹지 못해 아주 불편하고 우울하다. 사람이 먹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인데 그 마저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참 딱할 뿐이다. 그러니 젊어서 먹고 싶은 것 실컷 먹으라는 옛 어른 말씀이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은 나는 김치냉장고를 한 번씩 점검을 한다. 묵은 김치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봄이면 항상 김치찜을 만들기 위해서다. 김치찜은 오래된 김치가 더 맛있다. 김치를 꺼내어 씻어 하루쯤 담가놓고 짠맛을 뺀 다음 된장과 갖은양념( 마늘, 식용유, 들깻가루, 멸치, 양파)을 넣고 손으로 주물럭주물럭해야 손맛이 난다. 그런 다음 불위에 올려놓고 오래 끓인다.
한번 만들 때 되도록이면 김치찜을 큰 냄비로 가득 만든다. 그래야 나누어 먹는다. 우리 부부는 사실 조금만 있으면 된다. 김치찜을 좋아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여자들은 물론 남자분들도 좋아한다. 우리 가족도 모두 좋아하는 음식이다. 별것 아니지만 묵은 맛은 깊고 개운하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 묵은 김치를 씻어 된장을 넣고 끓여 놓으면 밖에 외출 갔다 집에 돌아와서 배고플 때 먹으면 그 이상 맛난 것이 없을 정도로 맛있게 먹던 음식이었다. 가족들에게 자주 해 주셨던 김치 찜이다. 입맛 없을 땐 밥을 물 말아 김치 찜 하나만 있으면 밥 한 그릇 뚝딱이다. 별것 아닌 음식이 때론 인기가 있다.
물에 담가 놓은 묵은 김치는 2년 된 김치다. 나는 김장을 할 때 김치를 넉넉히 담근다. 그래야 나누어 먹고, 딸들에게도 보내준다. 남은 김치는 씻어 여름에 살짝 참기름에 무쳐 먹어도 개운하고 맛이 있다. 또 김치찜을 하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나는 가끔 여자들이 모여 밥 먹을 때 꼭 만들어 가는 음식이다. 코로나 전에, 별것 아닌걸 그렇게 나누어 먹는 즐거움이 크다.
내가 더 나이 들어 움직일 수 없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지금은 움직일 수 있어 다행이다. 며칠 전 있었던 일이다. 내가 성당에서 성경 공부할 때 만난 자매님이 있다. 그분 남편은 묵은지 찜을 제일 좋아하신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한번 만들어 주었더니 엄청 맛있다고 좋아하셨다. 어머니가 해 주는 음식 같다고. 그런 모습을 보면 내가 더 즐겁고 신바람이 난다.
그분은 나중에 알고 보니 시내 병원 방사선과 의사 선생님이셨다. 그 사실을 알고 나도 다른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다가 그 병원으로 옮겨서 검진을 받으니 너무 좋다. 아주 섬세한 부분까지 자세한 설명을 해 주시고 도움을 받는다. 사람은 서로 돕고 산다. 나는 마치 주치의를 만난 듯 든든하고 의지가 되어 기쁘다.
시루에 찐 찰밥
지난 일 년 전부터 코로나로 자매님을 못 만났다. 코로나 이전에는 가끔 만나 식사도 하고 사는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코로나가 오면서 집에서 꼼짝도 못 하고 있다. 남편이 손님을 대면하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이 답답할 것만 같아 나는 항상 고마운 마음에 선생님이 좋아하는 김치찜을 만들고 찰밥을 쪘다.
사람은 시절 인연이라는 게 있다. 하루만 안 보면 죽을 것 같았던 인연도 어는 날부터는 연락이 끓어지고 생각지도 않은 인연은 만나 서로 정을 나누고 살아간다. 가까이 지내왔던 인연이 멀어지는 것은 마음이 아프지만 생각하면 사람 사는 일은 계절이 바뀌면 새로운 계절이 오듯 가면 오고, 오면 가는가 보다. 모든 일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야 마음이 편하다.
김치찜을 하고 찰밥을 해서 남편 차로 그 자매님 아파트 입구까지 가져다주었다. 말 그대로 드라이브 스루라고, 코로나가 오면서 생겨난 새로운 용어다. 우리도 그렇게 했다. 좋아하는 음식을 나누는 것은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것이다. 별스럽지 않은 음식을 받고 많이 행복해하며 자매님은 말했다. 마치 "군산에 친정이 있는 듯해요"라는 말을 들으니 내 마음이 더 따뜻하다. 친정이란 말처럼 따뜻한 말은 없다. 모든 것을 다 포용하는 곳.
누군가에게, 내가 조금 수고하고 따뜻함을 전하고 살 수 있음이 기쁘다. 사람은 살면서 서로가 위로가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진실함이 있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