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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아온 날들의 여정

결핍과 열정, 인내로 버텨낸 나의 청춘과 내가 살아온 삶의 여정

by 이숙자

설경이 좋아 그린 그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를 성장시켜준 것은 무엇일까 생각을 해 보는 날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 지나온 내 삶을 뒤돌아보게 된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는 10대와 20대였었다. 그 젊은 날 어려웠던 환경 살아오면서 인내를 알게 되고 쉬지 않고 도전하는 창조정신이 항상 머리에서 떠나질 않고 같이 했다. 나는 십 대인 나이에 지독한 결핍으로 많이 힘들고 외로웠다. 고등학교를 마친 후 대학 진학을 할 수 없는 가정 사정으로 혼자서 독립을 하고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살아야만 했 시절이 있었다.


유난히 누구에게 지기 싫고 꿈도 많은 10대 시절은 어둠과 절망의 동굴 속에서 앞이 보이질 않았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지독한 가슴앓이를 견내야만 했으니까.


나는 말이 없고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해 남들에게 나의 힘듬을 보이는 것은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자존감을 가지고 세상을 당당히 살아낼까 늘 고민하면서 공부를 했다. 내 외로움의 출구는 독서를 하는 것이었다. 삭막한 현실을 잊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시를 좋아하고 마음 안에 문학의 꿈은 항상 자리하면서 사색하고 위로를 받았다.


나에게는 고모 아들인 사촌 오빠인 시인이 계셨다. 전북 문단에서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이기반 시인이시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분이지만, 가끔씩 마음에 위로 삼아 시도 아닌 글을 낙서하듯 써서 오빠에게 보여주면서 평을 부탁했다. 내 글을 읽고 웃으시며 "계속 써보고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 한마디 던져주시는 말에 위로가 되었다. 나에겐 출구가 필요했었다.


하지만 세상살이는 생각과는 달리 만만치 않았다. 얼마 후 동생 둘을 데리고 삶을 살아내야 하는 현실은 항상 숨 가쁘며 힘들었. 내가 추구하 좋아하는 삶을 살 수 없음을 부모에게 원망하면서..


어느 날 부모님에게 "나는 결혼하면 자식 많이 낳지 않고, 고생 안 시킬 거야. 왜 이렇게 자식을 많이 낳고 고생시키는 거야" 하면서 원망의 말을 던진 날이 있었다. 어린날 철이 없어 부모님을 많이 아프게 했다. 부모가 돼서 생각하니 알 것 같다. 부모가 자식 힘들게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었을까.. 그때는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운 때였다. 시대가 그랬다. 하고 싶은 건 많고 꿈꾸는 건 마음대로 안되니 원망의 화살은 부모님에게 돌아갔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다.


우리 집은 딸 이넷 아들 셋 모두가 칠 형제다. 그중에 나는 맡이라서 책임감이 강하고 동생들에게 도움되어 주고 싶은 마음이 떠나질 않고 항상 노심초사 종종거렸었다. 하지만 내 능력밖에 일이었다. 세월은 무심히 흘러가고 결혼 적령기가 오면서 여러 가지 고민이 되었다. 친오빠처럼 잘해주는 큰집 사촌오빠가 남편과 만나도록 소개를 해주었다.


"꿈이 많고 성실하고 퍽 괜찮은 사람이야"

한번 보고 결정 해 보라는 오빠의 말을 듣고 만나게 되었다. 처음 만나고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며칠 후 다시 한번 만나고 대화를 해보니 아주 진중하고 진실함이 보이는 사람으로 신뢰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평생의 인연이 되어 내 운명이 되었다. 몇 번 만날 시간도 없었다. 지금처럼 자가용이 있는 때도 아니고 각자의 생활에 메여 있어서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다. 전주와 군산은 버스로 한 시간 거리이다. 어쩌다 전주 군산을 오고 가면서,


우리는 만난 지 4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 서로 알아 가는 시간도 없이 짧은 시간 안에 결혼하고 그냥 그렇게 사는가 보다 하고 살아갔다.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세월은 흘러 흘러갔다. 시댁일에 자녀들 교육에 정신없이 사는 나날들이었다. 나를 돌아보기에는 힘겨운 순간들, 어쩌면 당연히 그렇게 사는 거라 믿었다. 자녀들은 잘 자라주어 그 애 들을 바라보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아이들을 잘 키워내야 한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 신경을 썼다. 나의 결혼 생활은 평탄했다. 남편의 성실했던 지난날들이 역경을 이겨내며 살아갈 수 있었다.


딸들이 하나 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을 가고 난 후에야 제대로 된 나만의 시간 속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살다가 어느 날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나?' 이렇게 살면서 나이를 먹게 되고 나는 잊힌 채 살게 되는 건 아닐까... 시간들이 아까웠다.


나는 공부하는 걸 즐겨하고 좋아한다. 그 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없다. 미지의 세계를 알게 되는 기쁨이 오면서 충족감으로 에너지가 샘솟는다. 사람이 원하는 꿈과 목표를 가지고 살아갈 때에 살아 있음의 존재 실감하며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되고 있음을 절감한다.


아이들이 떠난 뒤 그 허전함을으로 차 공부를 시작했다. 내 나이 57세 때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딸의 갓 태어난 아들을 데려다 7년을 돌보면서 대학을 들어가 차문화 경영학과를 4년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다. 배움에 허기로 목말라했던,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을 해 주었다는 마음이 흡족했다. 손주를 키우는 시간은 멈추어진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 과감하게 도전했으며 얻어낸 결과이다. 쉽지 않은 날들이었다. 수많은 날 같이 공부하고 나의 어려운 부분을 나누었던 각별한 친구가 곁에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내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귀한 인연이다.


자녀들이 모두 대학을 나오고, 사회에 나와 직장인이 후 모두 결혼까지 하고 나니 나에게는 깃털처럼 가벼워진 날들이 찾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의무를 다 해낸 듯 마음이 가벼워졌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면서 변화에 발을 맞추려면 배우고 노력을 해야 했다.


뒤돌아 보면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나를 쉼 없이 성장하도록 도와주었던 일이 되었구나! 하고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결혼 후 자녀들을 교육하면서 배우고자 하는 갈망이 더 많았고 옆에서 남편의 이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차 공부를 하면서 수없는 행사를 하고 경험했던 일들이 멋진 예술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계기도 느껴보았다. 모든 일은 혼자 다 해내기는 어렵다. 선택과 노력은 오로지 자기만의 몫이지만 주변의 도움이 없었으면 성장될 수 없음을 나는 안다.


어느 날 생각해 보니 내가 왜 이렇게 정신없이 살고 있지? 되돌아보면서, 사는 동안 해보지 못했던 일이 너무 많았고, 하고 싶어도 상황 때문에 할 수 없이 지나온 과거들이 도전하고 배우게 만들었다


딸들이 모두 내 곁을 떠난 홀가분해진 날들은 나에게 주어진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마음을 다해 내가 걸어온 길고 긴 삶의 여정이다.


이젠 조용히 나이 들어가기를 소망한다. 내면의 나 자신과 만나고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즐겁다.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일, 오래전부터 꿈꾸어 왔던 문학의 세계 안에 여유를 부려본다. 마음이 말랑말랑 해지며 모든 걸 바라보는 시선이 초연해진다. 이제는 사람과의 만남이 번거롭고, 깊은 마음의 만남이 아니면 공허하고 시간이 아까울 뿐이고, 고요한 시간을 즐기고 싶다. 그동안 내 안에 채워놓은 놀이 저장고가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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