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모두 모이기가 어렵다. 큰딸은 뉴욕에 살고 있고 셋째 딸은 중국 충칭에 살고 있다. 여름방학, 겨울방학을 하면 셋째 딸은 손자 둘과 함께 한국에 나온다. 살고 있는 중경이라는 곳은 학교에 가지 않을 때는 아이들이 놀 곳이 없다. 방학만 되면 주위에 몇 가구 살고 있는 한국인도 고향으로 나오니 같이 놀 수 있는 친구가 없고 나올 수밖에 없다. 한동안 먹지 못한 우리 음식도 그립고, 여러 이유가 있다.
딸은 한국에 나오면은 시댁이나 친정인 우리 집에 와서 바쁜 일상을 보낸다, 가족여행을 하려면 서로 일정을 맞추고 계획을 하는데, 올여름휴가는 둘째 딸인 아들이 고3이고 멀리 갈 수가 없어, 서울 호텔에서 쉬기도 하고 서울 주변을 돌아보는 것으로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세쨋 딸은 활발하고 열정이 많아 사람을 모이게 하는 재주가 있다. 같이 있으면 즐거운 기분이 전이된다.
지난달 막내 사위가 신길동에 '키친 오늘'이라는 작은 식당을 개업을 해서 방문을 하려고 남편과 딸 손자와 함께 군산에서 출발해서 서울로 올라가는 서해안 고속도로는 차가 밀리지 않아 시원스럽게 달려 신길동에 도착했다.
빚 줄기가 제법 굵게 내린다. 키친 오늘은 원 테이블 작은 가계지만 오 밀 조밀 젊은 사람들 감각으로 예쁘게 꾸며 놓아 세련되고 아늑했다. 잠실에 사는 둘째 딸과 사위가 도착을 하고, 고3 손자, 중국사는 손자도 분당 학원에서 찾아오고 다 모였다. 요즈음은 주소만 주면 스마트폰 래비 보고 찾아오니 참 신기한 세상이다. 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인데, 사람 사는 게 이리 편리 해 지고 있으니, 삶에 변화에 자꾸만 놀라워진다.
이곳 '키친 오늘' 은 예약 손님만 받고 있다. 인스타 그램에서 쾌나 인기가 있어 예약하려면 기다려야 한다고 하니 잘
된 일이다. 손님이 원하는 메뉴를 해준다고 한다. 가족이 왔으니 맛이 걸 다 내놓는다. 멍게, 연어, 소고기 스테이크, 해물, 맛있는 음식이 잔뜩이다. 어디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특별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가족과 함께하니 흐뭇했지만 불 앞에서 일하는 막내 사위를 바라보는 마음이 짠하기만 하다.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이니 응원을 할 수밖에 없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없고 마음만 애달프다. 하얀 티에 까만 앞치마, 어느 호텔 세프 같다. 멋지다. 아참, 까만 앞치마에 커다란 민들레 꽃 자수는 내가 놓아줬다.
'키친 오늘'
남편은 별로 말이 없으시고 미소만 짓는다. 좋으신가 보다. 자꾸 연세가 들어가니 자녀들을 만나면 좋아한다. 가족은 남편이 살아온 삶의 전부이기도 하다. 키친 오늘은 신길 동 주택가에 상가도 없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막냇사위는 잘 다니고 있던 직장을 그만두고 분당에서 회사 구내식당을 하면서, 도시락 납품 사업을 하기도 했으나 도시락 납품은 회사 사정에 의해 접었다. 지금은 오전에 구내식당 일 끝내고 저녁에는 신길동 키친 오늘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니 피곤도 하겠지만,
젊기 때문에 도전하고 고생은 되어도 어렵게 보낸 시간들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어본다. 잘 될 거다. 부지런하게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 막냇사위는 서울에서 자라고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인지, 나만 보면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고 놀려 댔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돼서 당황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는 친밀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있는 맛집이 많아 우리가 서울에 가면 맛있는 것 같이 먹으러 다니는 기쁨 또한 크다.
호텔에 돌아와 체크인하고 남자들은 쉬고, 나는 딸 들과 호텔과 가까운 남대문 시장을 갔다. 모두가 활기 넘치는 삶에 현장이다. 새로운 물건을 사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다. 이제는 나이 들다 보니 사고 싶은 것도 없고 쇼핑도 신이 나지는 않지만 요즈음 유행하는 예쁜 물건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예전에 딸들이 서울로 대학 들어왔을 때는 남대문이나, 백화점 쇼핑 다니는 것이 큰 즐거움 이었 지만, 지금은 사고 싶은 것도 없어졌으니 사는 재미가 하나 줄었다.
여름휴가 하면서 머물던 호텔
딸들은 "엄마 이것도 사 " "저것도 예쁘다 필요한 건 사세요" 색다르고 예쁜 것들이 많아 구경하기 바쁘다. 시장은 언제나 사람이 많고 활기가 넘친다.
"딸들이에요? 역시 딸이 좋다니까" 상인들이 물어본다.
전에 시댁에서 딸만 낳았다고 환영을 못 받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할 말이 많다. 딸들은 자기 할 일 잘하면서 당당히 사는데, 그 말을 전해 줄 분들은 이젠 다 저세상 사람들이 되었다.
저녁은 간단히 먹고 밤 야간 산책길을 둘째 딸과 사위 우리 부부 네 명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면 걷는 여름밤도 좋다. 덕 수궁 돌담길을 따라 정동교회 뒤쪽으로 걸어가니 조용하고 운치가 있는 이 길은 이문세의 노래 '광화문 연가 ' 노래가 들리는 듯하면서 낭만이 느껴지는 기분 좋은 밤이다.
밤에 보는 정동교회는 더 운치가 있다
덕수궁 돌담길
정동 극장 안에 있는 카페
옛 러시아 공사관
둘째 사위는 이곳 지리를 잘 알아 안내를 잘해주니 편하다. 고종이 아관 파천을 했다는 러시아 공사 관은 그대로 건물이 남아 있다. 우리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남의 나라 공사관으로 피신했을 고종 임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정동 극장길, 미국 대사관 관저, 우리나라 역사의 현장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한 번도 오지 못했던 길도 걷고 카페에서 차도 마시고 여유도 부린다. 멀리 가지 않아도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좋은 사람들과 맛난 것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쩍 괜찮은 일이다. 피서 일일째이다. 딸들 셋은 이야기가 그치지를 않는다. 보기가 참 좋다. 어릴 때 같이 살던 날들 기억이 되돌아와서 기쁨 마음이 가득 채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