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자락은 나의 정원이었다

by 이숙자

심윤경 작가 강연


글쓰기를 하면서 다양한 작가의 강연을 들을 수 있어 나의 기억 창고에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가끔씩 꺼내어서 그들의 인생을 대면하는 삶에 방식이 나에게는 또 다른 묘미를 안겨준다.


오늘 만난 심윤경 작가는 특별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분이어서 조금은 놀라웠다. 생물학자의 길을 걷다가 서른을 바라보던 25살, 어느 날 소설이 쓰고 싶어 진로를 변경하고 자기 안에 내재되어 숨어 있던 사연들을 꺼내어 소설을 써야겠다는 갈망이 글 쓰는작가로 살아가게 방향을 돌렸다.


자기가 성공을 한다면 생물학 교수쯤으로 살 거라는 미래를 가늠하며 행복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으로 진로를 바꾼 그 용기가 대단한 일이다. 작가의 부모는 딸이 어느 날 홀연히 잘 가고 있던 길을 멈추고, 부모가 바라지 않는 길을 선택했을 때 허탈한 마음이 컸을 거란 말을 하면서 꾸지람을 많이 들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부모의 반대가 감내하기 어려웠을 일을 굽히지 않고, 꿈을 향 걸어갈 수 있는 당당하고 의연함은 어디서 왔을까? 자신감이었을까? 글을 쓰는 순간 내내 궁금해졌다. 자신의 삶을 주도 적으로 살고 싶은 열망이 더 큰 이유가 되기도 했을 듯하다.


서울 대학교 분자 생물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친 작가는 998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소설 7권과 동화 시리즈 6권을 썼으며 나의 '아름다운 정원' 이란 자전적 소설로 한겨레 문학상을 2005년에 무영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 안에 꿈틀 거리는 문학에 대한 갈망을 발견하고 " 나는 문과였구나" 깨닫는 순간 혼란이 오면서 원하는 길을 택했던 것이었다.


작가가 살았던 동네는 서울 인왕산 자락. 청와대, 정부청사, 3.1 빌딩, 중앙청이 다 보이는 풍경이었다. 항상 생각하기를 나는 우리나라 TV 종합 메인 9시 뉴스에 매일 나오는 동네에 산다는 자부심은 꼭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에 다짐을 했다고 말을 한다.


어느 날 찾아온 12. 12 사태가 일어난 역사의 현장을 광화문 광장에서 탱크를 보게 되면서 더욱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는 역사의 한순간에 놓여 있구나." 그때 있었던 일이 선연 했었고, 잊히질 않아 글을 써야 하는 한다는 사명감이 그에게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 시대적 배경, 작가가 자라난 가정환경이 글을 쓸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장면은 시어머니에게 눌려 살았던 며느리가 고추장 단지를 내던져 피처럼 번져 나가는 모습을 보고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본인이 격은 것을 쓰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가족을 소설 속 인물로 설정을 했으며, 할머니 엄마 아빠 오빠 본인의 이야기를 각본을 하여 작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글을 쓰게 되는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소설이 세상 속에 나오게 됐다고 한다.


항상 부모에게 길들여져 믿는다. 사랑한다, 그 말이 부담이 되어 거부하고 싶었던 반항심은 소설 속 인물들에게 말을 걸도록 해 주었으며, 작가는 할머니를 공기처럼 느끼고 살았다. 같이 자고 같이 숨 쉬며 언제나 할머니는 작가의 삶이었다.


할머니와의 관계는 특별했다. 할머니가 20년간 키우면서 했던 언어의 글자가 그려, 안돼야, 되었어, 몰러, . 너무 단순해서 말이 없던 단어지만 가장 중요했던 말은 '워져, 그 말 이 제일 멋진 말이

구나 느껴졌다. 그 말속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어느 날 기억하게 되는 할머니가 항상 했던 짧은 말들이 "내 삶을 안정되게 지켜주었구나, 내가 다른 구렁텅이에 들어가지 않고 삶을 바로 살 수 있는 길의 원동력을 주었던 것이 할머니의 평소 생활 태도가 내게 말해 주던 언어들이었다."라고 말을 했다.


한때는 할머니가 엄마를 힘들게 하기 때문에 할머니에 대한 원망이 무의식 적으로 엄마 편을 들어주고 싶었다. 그때의 순간들이 마음 안에 쌓여 글을 쓸 수뿐이 없었다. 소설의 주인공 모델로 가족을 중심으로 썼다. 나이차가 6살이나 되는 오빠는 동생을 별로 챙기지를 않고 예뻐하지도 않았고 사이가 나빴다가 아니고 사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 시절은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게 오빠였다. 밥만 먹으면 밖에 나가는 오빠의 세계가 부러워서 그 소망이 소설을 쓰게 되는 자료가 되기도 하고, 작가의 어린 시절이 경험화되어 소설화됐다고 말했다. 작가는 인왕산 산동네 살던 때는 어려운 시절이지만


행복했었고, 화장실을 가서 보면 인왕산 골짜기가 보이는 곳이지만, 살던 집은 산비탈이었고 커다란 바위가 뒤뜰에 있어 좋았다고 말을 했다. 어려 뒀지만 어찌 보면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소박한 삶에 모습들이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부모가 보내준 학교는 서울에서 가장 좋은 초등학교였다. 작가는 자기가 다른 세상에 던져진 느낌으로 경험하게 되는 생활 들이 글을 쓰는 자료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가정의 자녀들이 다녔다는 초등학교, 대통령 자녀와 삼성 이재용 이 부진 회장도 같은 학교에 다닌 동창이라 했다.


그 엄청난 환경 속에 던져진 듯 작가는 어린 나이에 훌쩍 철이 든 생각이 많은 어린아이로 자라는 과정을 거친다. 작가의 부모님은 자식을 좋은 교육을 받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항상 자부심을 느꼈다.


한때는 가정이 불행했는데 그 이유가 할머니 때문이 아닌지 싶어 할머니를 원망도 했지만,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가정의 불행의 이유가 할머니 잘못이 아님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후회를 하, 그 뒤, 분노가 엄마로 바꾸어졌다.


너를 잘 키운다는 것은 사랑이라 말하고, 너를 믿는다는 말이 부담이 되면서. 나의 부모님은 비정했다고 말을 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사랑과 욕심이 분별이 안됐다. 결혼 후 딸을 낳아 기르면서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되고, 엄마에 대한 원망도 이제는 그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작가가 찾고 싶던 문제가 체념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마음에 평온이 오면서 잊었던 할머니를 기억하며 가슴이 아팠다. 어려서 할머니에게 무식하다고 대들던 생각이 잘못됨을 깨닫게 되면서 설이라는 소설을 쓰게 되는데 그 속에 나오는 인물 이모로, 할머니 인생을 형상화해서 썼다. 사람은 누구가 흑 역사가 있다. 하지만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는 보여 주기 싫어지는 게 누구나 가지는 마음이다.


글을 쓰면서 사납게 날뛰던 마음을 평화로 이끌어 주었다. 작가는 자기 인생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끌어내고 마음으로 쓰는 소설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고, 덕분에 작가는 정신 병원행을 막았고 글쓰기가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을 했다.


소설이 객관화하고 리플리를 해서 바라보면서 인생을 여러 번 살아보고 인생 다시 살기를 소설이 해 주었고 독자를 만나는 것도 축복이다. 작가는 특히 아이들을 만날 때 본인의 어린 시절을 바라보며 상처를 치유하고 본인의 많은 일들을 모눈종이 수만 개를 찢어 내서 소설화했다고 말을 마쳤다.


사람마다 행복에 기준을 다르다, 현실 속에 비치는 출세가 행복이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작가는 순박하고 자기만의 확고한 삶에 가치를 세우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어려서 힘들었던 상처를 글로 치유를 했으며 아직도 인왕산이 자락에 있는 동네 근처에 살고 있다는 작가는 내가 만난 작가 중에 따뜻함이 전해지는 포근하고 글의 문장을 멋지게 구사하는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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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경 작가 서점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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